북미 강경 대치..반전 계기 없을까

북한과 미국 양측이 핵 검증을 놓고 물러설 수 없는 기싸움을 벌이고 있다.

특히 이번의 경우 북한의 과거 핵활동 전모를 파악할 수 있는 검증의 실질적인 내용과 관련된 대치라는 점에서 그 결과가 주목된다. 북핵 사태의 본질인 ‘진실게임’의 향방과도 직결된 문제이기 때문이다.

북한은 26일 외무성 대변인 성명을 통해 핵 신고서를 전달했음에도 미국이 자국을 테러지원국 명단에서 삭제하지 않음으로써 10.3 합의를 위반했다고 미국을 맹비난했다.

그리고 대응조치로 북한은 영변 핵시설의 불능화 조치를 중단하고 원상복구도 고려할 것이라고 천명했다.

미국도 맞대응했다. 북한이 자국을 테러지원국 명단에서 삭제하는데 필요한 조건을 충족시키지 못했다는 것이다.

데이너 페리노 백악관 대변인은 26일(워싱턴 현지시간) 북한이 핵 프로그램을 포기했다는 것을 입증하기 위해 국제 사회가 수용할 수 있는 계획을 제시해야만 할 것이라며, 북한이 약속을 지킬 경우 미국도 약속을 지킬 것이라고 말했다.

결국 10.3합의에 규정된 ‘불능화와 신고’를 이행한 만큼 미국도 약속을 지키라는 북한의 논리와 ‘신고와 검증은 동전의 양면인 만큼 분리할 수 없다’는 미국의 입장이 정면으로 충돌한 것이다.

특히 미국은 ‘완전하고 정확한 검증’이 전제돼야만 북한과의 핵협상을 신뢰할 수 있고 궁극적으로 북한과의 관계정상화도 가능하다는 확고한 입장을 갖고 있다.

이는 과거의 경험을 통해 체득한 교훈이라는 게 북핵 외교가의 시각이다. 북한은 1992년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사찰과정에서 영변 5MW 원자로에서 꺼낸 연료봉의 재처리를 통해 얻어낸 플루토늄 추출량을 놓고 첨예한 신경전을 벌인 바 있다.

북한은 당시 80g에 불과한 미미한 양의 플루토늄만 추출했다고 신고했으나 IAEA와 미국은 적어도 kg단위의 플루토늄을 추출했을 것으로 추산했다. 일각에서 핵무기 1-2개 정도를 만들 수 있는 무기급 플루토늄을 추출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결국 북한은 자신들이 제시한 ‘최초보고서’에 따라 IAEA가 사찰활동을 펼치는 과정에서 의문의 미신고 시설 2곳이 문제되자 ‘군사시설’이라는 이유로 사찰을 거부했고 이것이 이른바 1차 핵위기로 증폭되는 핵심 계기였다.

북한이 접근을 철저하게 막은 시설은 바로 폐기물저장소로, 당시 북한은 이곳을 흙으로 덮고 나무를 심어 위장하거나 아예 다른 건물을 추가로 지어 은폐하려 했으나 미국의 첩보위성은 이를 처음부터 파악하고 있었다.

IAEA가 이 폐기물저장소에 접근해 첨단장비를 이용, 샘플을 채취해 분석하면 마치 나무의 나이테를 보듯 북한이 언제부터 몇차례에 걸쳐 재처리를 했으며 이를 통해 얼마나 많은 플루토늄을 추출했는 지를 고스란히 파악할 수 있다.

또 이른바 2차 위기의 핵심현안인 고농축우라늄(HEU) 문제도 샘플채취의 다양한 기술을 통해 파악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따라서 미국은 검증 이행계획서에 미국이 원하는 샘플채취를 포함하려 하고 있고 북한은 이를 극력 회피하려고 애를 쓰고 있다.

미국과 북한간 검증협의에서 가장 중요한 대목이 샘플채취와 관련된 내용인 셈이다.

그러나 북한은 완강하다. 26일 북한 외무성 성명에서 “(미국이) 우리나라의 아무 곳이나 마음대로 뒤져보고 시료를 채취하고 측정을 하는 것과 같은 사찰을 받아들일 것을 강박했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미국의 자유아시아방송(RFA)는 27일 미국이 테러지원국 지정 해제를 영변 핵시설에 대한 시료(샘플)채취와 연계하고 있다고 워싱턴 소식통의 말을 인용해 보도했다. 샘플채취의 중요성을 재확인한 대목이라고 할 수 있다.

과거 북한이 펼친 핵활동의 전모를 파악할 수 있는 문턱에서 북한과 미국이 다시 물러설 수 없는 대결을 펼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양측이 끝없는 대치를 지속해나갈 지는 두고봐야 한다. 임기말에 몰린 부시 행정부나 테러지원국 해제를 원하는 북한이 중간지점에서 절충을 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RFA는 또 다른 워싱턴의 외교소식통을 인용해 “미국 행정부의 목표는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라기보다는 클린턴 행정부 당시보다 진전됐다는 평가만 받으면 된다는 입장”이라고 전했다.

1994년 당시 미국이 관철하지 못한 샘플 채취만 이뤄진다면 이를 북한 핵문제 해결의 진전이자 부시 행정부의 업적으로 간주하고 북한을 테러지원국에서 해제하는 것으로 북한의 ‘성의’에 답을 주려 한다는 내용도 전했다.

북한도 미국의 입장을 감안해 수용할 수 있는 수준과 제한된 시설에서 샘플채취를 허용하는 선에서 타협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견해가 제기되고 있다./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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