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미 `팽팽’..해법 있을까

18일 개막한 제5차 북핵 6자회담 2단계회의에서 이뤄진 6개국 대표의 기조연설 내용이 드러나면서 이번 회담이 최소치의 결과물이라도 내놓을 수 있을지 주목된다.

기조연설로 본 북한과 미국의 입장은 간극이 너무 심했기 때문이다.

특히 서로 원하는 행동의 내용에 거리감에 있는데다 행동의 시기를 놓고도 입장 차이가 확연한 만큼 이번 회담에서 실질적인 진전을 보기에는 어려울 것이라는 부정적 전망이 적지 않게 나오고 있다.

김계관 외무성 부상의 입을 통해 나온 북한의 입장은 회담 전부터 전문 가들 사이에서 제기됐던 우려가 그대로 현실화된 것으로 풀이할 수 있다.

실제 이날 제시된 북한의 입장은 선(先)제재 해제, 후(後) 비핵화 논의로 집약될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결과적으로 지난 해 9.19 공동성명 탄생에 즈음해 방코델타아시아(BDA) 문제로 촉발된 대북 금융제재 문제를 먼저 해결해야만 `9.19 공동성명’이라는 본론에 들어갈 수 있다는 입장인 셈이다.

북한은 또 한.미.일 3국이 강한 거부감을 보인 핵 군축 문제도 꺼냈다.

김 부상은 “(조건이 성숙되지 않은 단계에선) 핵무기 문제를 논의하고자 할 경우에는 핵군축 회담 진행 요구가 불가피하다”고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문제는 이날 김 부상의 연설을 11월말 북미 베이징 회동에서 크리스토퍼 힐 미 국무부 차관보가 조지 부시 대통령의 의지가 실려 있다며 던진 여러 제안에 대한 회답으로 친다면 `노’에 가깝게 보인다는 점이다.

당시 힐 차관보는 북핵 폐기가 이뤄지면 경제적 보상과 종전 선언, 북미관계 개선 등까지 검토할 수 있다며 북한에 초기 행동을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이번 대답은 미국에 먼저 행동을 요구하는 형국이기 때문이다.

이런 흐름은 이날 힐 차관보의 기조연설을 봐도 확연히 드러난다.

힐 차관보는 9.19 공동성명에 따라 미북 관계 정상화를 추진할 준비가 돼 있지만 이는 완전하고 불가역적인 한반도의 비핵화를 달성할 때에만 가능하다는 입장을 편 것으로 전해졌다.

이런 입장은 다소 북한의 신속한 행동이 선행돼야 한다는 뉘앙스가 강해 보이는 만큼 김 부상의 주장과는 너무 동 떨어져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는 게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실제 힐 차관보는 더이상 참기 힘들다며 이젠 빠른 행동이 필요한 때라고 북한의 초기조치 이행을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주목할 만한 점은 김 부상이 예시한 비핵화 논의를 위한 조건이다.

북한은 미국 내 대북 적대시 차원의 법률적, 제도적 장치를 철폐할 것을 요구하는 데 그치지 않고 유엔 제재를 포함한 모든 제재를 해제해야 한다고 주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 내 법률적, 제도적 장치 철폐에는 재무부가 돈세탁 우려대상으로 지목한 BDA 문제는 물론 테러지원국 명단에서 북한을 빼고 다른 경제제재까지 포괄하는 것으로 분석된다.

이에 비춰 사실상 모든 대북 제재를 비핵화 논의를 위한 전제조건으로 망라했다는 해석도 나오고 있다.

이 경우 BDA라는 `특정’ 제재의 철폐가 아니라 `포괄적’ 제재의 해제로 북한의 요구사항이 극한까지 확대된 것으로 봐야 한다는 게 중론이다.

이런 북한의 움직임은 김 부상이 지난 16일 베이징에 도착하면서 “제재 해제가 선결 조건”이라고 밝힐 때부터 감지됐다.

북한은 그 동안 북한이 BDA 문제를 지칭할 때 `금융제재’라는 표현을 썼지만 이번에는 계속 그냥 `제재’라고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은 BDA 문제에 대해서는 법률적 문제라며 6자회담과 거리를 두면서도 이번에 금융 협상단을 베이징에 보내 비교적 신속한 해결의지를 내비친 반면 나머지 제재의 경우 중장기적 과제로 여기고 있다.

즉, 당장 해결하기 보다는 북한의 동결, 신고, 검증, 폐기 등 단계적 핵 포기 과정에 따라 상응하는 조치로 검토할 수 있는 것들로 분류하고 있다는 게 대체적인 관측이다.

특히 북미 관계개선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다뤄질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지난 10월 북한의 핵실험에 따라 취해진 유엔 제재도 3개월마다 점검하도록 돼 있지만 북한이 핵폐기를 위한 실천적 조치에 들어가지 않을 경우 쉽게 풀릴 수 없는 상황이다.

예컨대 유엔의 대북 제재 결의안에는 “다른 대량살상무기와 탄도미사일 프로그램을 완전하고 검증가능하며 돌이킬 수 없는 방법으로 포기할 것을 결의한다”는 높은 수준의 내용까지 들어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북미 간 입장이 평행선을 달리면서 이번 회담은 한 치 앞을 내다 볼 수 없는 상황으로 접어들었다.

협상의 여지 유무는 북한의 기조연설 내용이 요구사항의 최대치인지, 아니면 실익을 극대화하기 위한 협상 전략 차원에서 나온 것인지에 달려 있는 것으로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일단 북한이 사실상 모든 제재의 해제를 비핵화 논의의 전제조건으로 고수하면서 이런 조건이 충족되지 않을 경우 핵 군축 협상이 돼야 한다고 몰고갈 경우 협상이 깨질 가능성이 높다는 게 대체적인 관측이다.

이런 상황이 가시화될 경우 북한이 시간을 끌기 위해 이번 회담에 나왔다는 비난을 피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버릴 것은 버리고 챙길 것을 챙기는 `선택과 집중’을 통해 그동안 집착했던 BDA 해법에 협상력을 모을 경우 북미 금융제재 워킹그룹 협상과 6자회담이라는 2개 트랙의 상승작용을 기대해 볼 수 있을 전망이다.

게다가 활발한 양자회동을 통해 기조연설의 행간에 담긴 뜻을 파악하며 접점 찾기에 나서고 중국과 우리 정부가 창의적인 아이디어로 돌파구를 모색한다면 긍정적인 협상 환경을 만들어볼 수 있다는 관측도 적지 않다.

특히 우리 정부가 낸 `단계별 패키지 딜’이 힘을 발휘할지도 관심이다.

이행조치의 순서를 놓고 북미 간 입장이 팽팽한 상황에 비춰 전체 핵폐기 계획을 몇 단계의 패키지로 나누고 그 중 첫 패키지에 담을 행동을 뽑아내는 작업이 이뤄진다면 접점을 찾는데 효과적일 수 있어 보이기 때문이다.

외교 소식통은 “양자 접촉을 통해 진의를 파악하는 작업이 이뤄질 것”이라며 “핵군축이나 모든 제재 해제 주장을 북한이 고수한다면 이번 회담에 난항이 예상되지만 접점을 찾으려는 노력은 계속될 것”이라고 말했다./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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