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미 `일정한 합의’ 이후 쟁점과 전망

“베를린에서 거둔 성과가 현실적으로 실현될 지는 차기 회담을 지켜봐야 한다.”

정부의 한 고위당국자는 지난 16~18일 독일 베를린에서 진행된 북미 회동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면서도 여전히 신중한 입장을 유지했다.

북한 외무성이 19일 이례적으로 ’일정한 합의’라고 공개 발표하고 크리스토퍼 힐 미 국무부 차관보도 “북한과 여러 이슈에 대해 합의했다”고 밝히는 등 베를린에서 ‘중요한 접점’이 도출된 것으로 보이지만 아직은 여러 가지 변수가 남아있다는 뜻으로 해석됐다.

베를린 합의의 골간은 지난달 베이징(北京)에서 열린 6자회담에서 미측이 제시한 이른바 ‘패키지안’에 담긴 양측의 요구사항을 절충한 것일 가능성이 가장 크다.

핵폐기를 위한 초기이행조치와 이에 상응하는 조치로 묶인 패키지안의 내용을 놓고 양측이 집중적인 논의를 거쳐 ‘원칙적인 합의’에 도달했다는 것이다.

사실 지난달 6자회담에서 미측은 핵폐기 의지를 확인하는 최초단계의 조치로 영변 원자로 가동중단을 포함한 핵 동결과 추가조치(신고와 사찰)를 원했고 북한은 선(先) 금융제재 해제 원칙을 고수했다.

이 때문에 양측의 협상은 결실을 보지 못했다. 그러나 북측이 핵 폐기 초기이행조치를 수용할 경우 미측이 제시할 상응조치에 궁극적으로 수교를 전제로 한 북미 관계정상화는 물론 에너지-경제 지원 등까지 포함된 것으로 알려진 데다 이 제안이 워싱턴 수뇌부의 뜻이 담긴 것이라고 미측이 강조하면서 미국의 ‘제안’은 형식상으로나 내용상으로 ‘쉽게 거부할 수 없는 안’으로 평가됐다.

당시 김계관 부상은 “평양에 돌아가 검토한 후 답을 주겠다”며 시간을 벌었다. 그러다 북측 수뇌부로부터 1차 반응을 들고 회동을 제의했고 결국 힐 차관보와 베를린에서 협상을 벌이게 된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핵폐기와 관련된 협의에서 양측이 이제는 뭔가 ‘절충할 수 있는 단계’로 협상을 진전시킨 것으로 봐야 한다는 게 외교가의 중평이다.

힐 차관보가 ‘절대적(Absolutely)’이라는 표현까지 동원하며 베를린 성과를 평가하면서 “차기 회담에서 진전의 기회를 가질 것으로 본다”고 말한 것도 이런 맥락에서 이해된다.

또 BDA(방코델타아시아) 문제에 있어서도 접점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일단 북측은 선(先) 제재해제 요구라는 기존의 입장을 탄력적으로 바꿔 미국측이 제시한 ‘불법증거’에 대한 내용성을 검토하면서 재발방지 약속을 내놓았을 것으로 분석된다.

그러면서 1년 3개월이 넘도록 진행중인 미 재무부의 BDA 조사 조기종결 또는 조사가 끝난 계좌에 대한 조속한 처리를 종용하는 ’현실적 조치’를 제시했을 가능성이 높다는 게 외교가의 시각이다.

이에 대해 미국측도 절충안을 내놓았을 가능성이 있다. 그동안 진행된 조사결과를 토대로 합법.비합법 계좌를 구분하고 합법 계좌 중 조만간 최종적인 확인을 거쳐 조치를 취할 것이라는 원칙을 제시했을 가능성이 높다.

특히 북한 입장에서는 ’미국측의 성의’를 계기로 BDA 뿐 아니라 다른 나라 은행의 북한계좌에 까지 취해진 거래제한조치를 완화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된다는 점에서 미국의 제안이 무시할 수 없는 무게로 다가갔을 것으로 보인다.

베를린 회동 이후 김계관 부상의 표정이 밝았던 점이나 북한이 ’일정한 합의’ 운운하며 베를린 회동을 적극적으로 평가하는 것도 이런 흐름과 무관치 않아보인다.

하지만 ‘베를린 합의’가 앞으로 문제의 시발점이 될 가능성도 있다. 지난해 10월 말 베이징에서 열린 북미간 회동에서 6자회담 재개원칙에 합의하면서 양측이 BDA 문제와 관련된 입장을 정리했으나 서로 엇갈린 주장으로 시간을 끌기도 했었다.

당시 미국은 ’BDA문제를 논의하기로 한다’고 해석했지만 북한은 ’해결한다’는 쪽으로 주장했다.

19일 송민순 외교부장관을 만나고 나온 힐 차관보는 기자들과 만나 “나는 베를린 회동을 통해 다음 번에 좋은 회담을 가질 수 있는 기초를 만들었다고 확신한다”면서도 “실질적인 협상과 합의는 다음 회담에서 이뤄질 것”이라고 현 상황을 ‘명료하게’ 설명했다.

또 핵폐기 이행조치와 상응조치의 내용면에서도 약간의 차이로 인해 전체 국면이 흐트러질 가능성이 언제나 존재한다.

이렇게 보면 베를린 합의는 ‘몇가지 이슈에 대한 합의’에 불과할 수도 있다. 합의를 보지 못한 다른 이슈에서 양측이 충돌할 경우 전체 협상국면이 와해될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하지만 전반적인 흐름은 현재로선 긍정적이다. 북한측이 어떤 메시지를 베를린에서 던졌는지 알 수 없지만 적어도 BDA라는 아킬레스 건을 잡힌 북한이 이 문제 해결 전에 도발을 강행할 가능성이 많지 않다는게 외교가의 시선이다.

따라서 내주 초 BDA 회의를 시작으로 다음달 초에는 6자회담이 재개돼 다시 본격적인 협상국면이 조성될 것으로 예상된다.

정부 당국자는 “곧 재개될 BDA 실무회의에서 북한이 어떤 자세로 나오느냐가 베를린 회동 이후 북한측이 전략적으로 어떤 판단을 하고 있는 지를 가늠할 수 있는 잣대가 될 것”이라면서 “북한이 ‘과감한 결단’에 나섰을 경우 북핵협상은 급물살을 타면서 중대한 이벤트로 연결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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