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미, `불능화-신고’ 순서싸고 신경전

북핵 6자 수석대표회담 개막을 하루 앞둔 17일 이례적으로 상대방 대사관을 교차방문하며 연쇄 회동한 북한과 미국의 수석대표들이 핵시설 불능화와 핵프로그램의 신고를 어떻게 추진하느냐를 놓고 신경전을 벌인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북한은 “신고를 먼저 하고 불능화하는 것이 좋다”는 뜻을 강하게 피력했다는 후문이다. 이런 북한의 입장은 당초 초기조치에서 했어야 할 ’목록협의’를 방코델타아시아(BDA) 문제로 인해 제대로 하지 못했다는 현실론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다시 말해 핵시설 폐쇄에 이어 불능화를 하려고 하더라도 어떤 시설과 프로그램을 불능화할 수 있는 지 그 대상을 분명히 하기 위해서는 신고를 먼저 하는 것이 순서상 맞다는 논리이다.

하지만 북한의 속내는 따로 있다. 즉, 가급적이면 2.13합의 이행을 보다 많은 단계로 나눠 자신들이 취할 보상조치를 극대화하려는 전략에서 비롯됐다는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특히 북한이 미국에 요구하는 테러지원국 명단 삭제와 대적성국 교역법 적용 해제 등 ’정치.안보적 조치’에 대한 미국의 양보를 이끌어 내기 위해서는 여러 단계로 협상을 쪼개는 것이 유리하다는 계산이 깔려있는 것으로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6자회담에 정통한 외교소식통은 “원래 북한은 협상의 단계를 잘게 쪼개 고비고비마다 요구조건을 거는 일종의 살라미전술 구사에 능하다”면서 “불능화와 신고를 구분하는 것도 이런 전술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북측의 이런 요구에 당연히 미국측은 단호한 거부입장을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여기에는 한국측도 입장을 같이한다.

정부 당국자는 “북한의 입장과 달리 우리는 신고와 불능화를 합쳐서 가급적 빠른 시일내 2.13합의를 종료하는게 좋겠다는 입장”이라면서 “하나의 조건이 지연돼 2.13합의 이행이 늦어지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했다.

특히 초기조치에서 BDA 문제로 인해 제대로 하지못한 ’핵 프로그램의 목록협의’도 신고 조치를 논의하면서 자연스럽게 조속히 이행하면 큰 문제가 없다는 것이 한국과 미국의 판단이다. 핵 목록협의를 충실히하면 ’품질좋은 신고’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연내라는 특정시점에 불능화를 완료하자면 단계를 잘게 쪼개는 것은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입장을 미국과 한국은 고수하고 있다.

정부 당국자들은 “결국은 북한이 비핵화를 얼마나 빨리 이행하느냐는 의지의 문제”라면서 “북한도 미국의 단호한 입장을 잘 이해한 만큼 끝까지 자신들의 논리를 고집할 것으로는 보지 않는다”고 말했다.

힐 차관보가 이날 북한과의 연쇄 회동을 마치고 이번 회담에서 핵시설 불능화를 비롯한 2.13합의 2단계 이행을 위한 로드맵 마련을 희망한다고 밝히면서 “현재로선 장애물이 없다”고 말한 것도 이런 분위기와 무관치 않다는 소식통들의 전언이다./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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