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미대화, 과거와 ‘닮은 듯 다른 꼴’

미국 오바마 행정부가 추진 중인 북.미 직접대화는 과거 1차 북핵위기 당시의 북.미회담과 `닮은 듯 다른 꼴’이라는 외교가의 관측이 나오고 있다.

북한의 ‘벼랑끝 전술’이 연출된 이후 대화의 장(場)이 펼쳐지는 모양새는 비슷하지만 내용을 들여다보면 북핵 문제를 바라보는 미국의 태도와 국제사회의 분위기, 그리고 게임의 구도와 양상이 근본적으로 달라져 있다는 것이다.

1차 핵위기는 북한이 1993년 3월 핵확산금지조약(NPT) 탈퇴를 선언하면서 시작됐다. 국제원자력기구(IAEA) 특별이사회는 이 문제를 유엔 안보리에 회부했고 미국은 북한에 대해 안전조치협정 이행을 촉구하는 유엔 안보리 결의 825호 채택을 주도하며 대북 압박에 나섰다.

수세에 내몰린 북한은 IAEA 탈퇴를 강행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았고 탈퇴 발효시한(6월12일)에 쫓긴 클린턴 행정부는 급기야 한발 물러섰다.

당시 미국은 중국 외교부를 통해 북한과의 고위급 회담을 제의했고 6월2일 뉴욕에서 미국 로버트 갈루치 국무부 차관보와 강석주 외무성 제1부상(부부장)간 회담이 성사됐다.

이번에도 큰 흐름은 비슷하게 읽혀진다. 북한은 4월 장거리 로켓을 발사하고 5월 2차 핵실험을 감행하는 도발카드를 꺼내들었다.

이에 미국과 국제사회는 유엔 1874호 결의를 통해 제재국면을 전개해나갔고 이에 맞서 북한은 유화공세와 강경카드를 병행하는 특유의 벼랑끝 전술을 펴며 미국에 직접 담판을 요구했다.

교착상태가 장기화되자 미국은 결국 제재일변도 전략 궤도를 수정, 6자회담 관련국 5자의 ‘양해’를 얻어 북.미 양자대화를 수용하기에 이르렀다.

1993년 당시와 현재 북.미를 이끄는 정치적 지배구조도 미묘한 공통점을 갖고 있다. 오바마 행정부와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1993년 당시 빌 클린턴 대통령이 이끌던 민주당 행정부와 북한 김일성 주석의 `발전적 계승자’로 볼 수 있다.

여기에 제네바 합의의 당사자인 강석주 외무성 제1부상(부부장)이 여전히 북핵문제에 관여하고 있고 클린턴 전 대통령이 막후에서 당시와 현재를 잇는 ‘가교’역할을 하고 있는 것도 주목해볼 대목이다.

이렇듯 외견상의 흐름에 공통점이 적지 않지만 내용상으로는 차이가 크다는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무엇보다도 북한을 바라보는 미국의 시각이 근본적으로 바뀌었다.

북한이 그동안 합의와 파기를 번복하는 협상패턴을 보여온 데 대한 ‘학습효과’로 미국 조야에서는 “더이상 속지 않는다”는 인식이 강한 것으로 관측된다.

한 소식통은 14일 “1993년에는 서로에 대해 잘 모르는 관계였지만 지금은 서로를 알 만큼 알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 점에서는 국제사회의 대북 상황인식도 다르지 않다.

게임의 구도와 양상도 달라졌다. 클린턴 행정부 당시에는 북한이 게임을 시종일관 주도했으나 이번에는 미국이 게임을 주도해나가고 있어 보인다.

이는 미국이 제재의 칼자루를 쥐고 있기 때문이다. 1993년 당시에는 유엔이 선언적 의미에 그친 대북 결의안을 채택했지만 이번에는 제재가 실제로 작동하고 있고 북.미 대화여부와 관계없이 지속돼야 한다는 게 국제사회의 광범위한 컨센서스다.

물론 미국이 북한의 ‘우라늄 농축 성공’ 카드에 다소 밀린 듯한 측면도 없지는 않지만 북한이 일관되게 요구해온 제재철회에 대해서는 요지부동의 스탠스를 견지하고 있다.

한국의 역할도 차이가 있다. 1993년 당시 김영삼 대통령은 “핵무기를 가진 자와는 악수할 수 없다”는 논리로 대북협상을 미국에 넘겼다가 이후 협상에서 배제되는 결과를 초래했지만 이번에는 한국 정부가 일정 정도 상황을 관리해나가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외교가에서는 이번 북.미 직접대화를 2007년 1월 베를린에서 열린 북.미 양자회담과 비견하는 시각도 나오고 있다.

방코델타아시아(BDA) 문제로 인해 13개월간 6자회담이 공전하던 가운데 당시 크리스토퍼 힐 미 국무부 동아태 차관보와 북한 김계관 부상이 베를린에서 극비리에 만나 협상의 물꼬를 텄다는 점에서다.

이는 제5차 6자회담 재개로 이어져 결국 9.19성명 이행 설계도라고 불리는 2.13 합의를 도출하기에 이른다./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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