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미관계 개선…’2000년 vs 2007년’

북한과 미국이 베를린 회담과 ‘2.13합의’를 계기로 관계개선을 위한 발빠른 움직임을 전개하면서 이번에는 2000년 빌 클린턴 당시 미국 대통령의 임기말에 추진되다 정권 재창출 실패로 물거품이 된 관계정상화가 이뤄질 수 있을지 주목된다.

특히 이번 북미간의 해빙무드는 2000년과 유사한 측면을 보이고는 있지만 다른 부분도 많아 ‘이번에는 무엇인가 이뤄내지 않겠느냐’는 기대를 높이고 있다.

우선 북한과 관계개선이 미국 최고정책결정권자인 대통령의 강한 의지에서 출발하고 있다는 점은 닮음꼴이다.

클린턴 전 대통령은 1994년 북미 고위급회담을 통해 제네바합의를 이끌어냈던 만큼 대북 무시나 봉쇄정책으로는 북한을 변화시킬 수 없고 개입정책(engagement policy)만이 유일한 선택이라는 점을 확고히 했었다.

반면 부시 대통령은 취임 초기 신보수주의의 강경한 외교정책노선에 따라 북한을 ‘악의 축’으로 규정하고 ‘정권교체'(regime change)를 추구했지만 이라크 전쟁에서의 실패와 중간선거 패배 등을 겪고 현실주의 외교로 전환하면서 북한에 대해서도 협상을 통한 문제해결방식을 선택한 것으로 보인다.

중간선거 이후 도널드 럼즈펠드 국방장관과 존 볼턴 유엔대사를 교체하고 대북정책에 대한 딕 체니 부통령의 입김을 차단한 것이 이러한 변화를 반증하고 있다는 후문이다.

최고결정권자의 정책적 의지를 반영한 북미관계 개선 움직임이 행정부 고위인사의 방북으로 이어지는 것은 자연스런 현상이다.

2000년에는 북한에서 조명록 국방위원회 제1부위원장의 방미와 메들린 올브라이트 국무장관의 방북에 이어 클린턴 전 대통령의 평양 방문까지 추진됐었고 이번에는 대북협상을 총괄적으로 지휘하고 있는 야전사령관인 크리스토퍼 힐 국무부 동아태 차관보와 이를 지시하는 콘돌리자 라이스 국무장관 등의 방북 가능성이 거론되고 있다.

여기에다 북한의 대량살상무기(WMD)를 매개로 북미관계 정상화가 논의되고 있는 현재의 상황도 유사하다.

현재 협상에서는 핵실험으로 위기지수가 더욱 높아진 북한의 핵문제가 주요 쟁점인 반면 2000년에는 북한의 대포동 장거리미사일이 핵심 이슈였다.

2002년 10월 불거진 북한의 고농축우라늄(HEU) 프로그램 속에서 대북 경수로 건설이 중단된 가운데 북한이 작년 10월 핵실험을 통해 핵무기 보유를 과시하면서 핵프로그램의 해체 문제가 논의의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반면 1994년 제네바 합의로 북한의 핵동결을 이끌어낸 클린턴 행정부는 1998년 북한의 대포동 미사일 발사를 계기로 운반수단에 관심을 가졌고 1999년부터 북미간에는 수 차례의 미사일협상을 통해 거의 해결 직전까지 도달했었지만 북한의 과도한 욕심으로 합의에 이르지 못했고 결국 미국의 정권이 교체되면서 이전의 협상내용은 모두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북한의 태도가 관계정상화의 관건이 될 것이라는 이유는 결국 미국의 정책변화를 과신하고 작은 성과에 집착하다 오히려 판을 깰 수 있다는 2000년의 교훈 때문이다.

힐 차관보도 7일 북한과 관계정상화 워킹그룹회의를 마친 뒤 북미관계 정상화를 위해서는 북한의 핵포기가 선행돼야 한다는 입장을 재차 강조한 것도 이러한 맥락이다.

또한 북한의 입장에서 올해와 2000년 대미협상은 이른바 ‘벼랑끝 전술’이 ‘약발’이 통한 결과라는 점도 동일한 맥락에서 볼 수 있다.

클린턴 행정부 시절의 대미협상이 경수로 공사의 지연과 관계정상화 문제가 진전이 없는 가운데 1998년 미사일 발사라는 극약처방으로 이뤄냈다면 올해 대미협상은 작년 7월 미사일 발사와 10월의 핵실험의 결과로 받아들일 것이기 때문이다.

이 같은 유사한 맥락에도 불구하고 이번 북미관계 정상화 논의는 2000년과는 전혀 다른 성격과 양상을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기대를 높이고 있다.

우선 2000년 북미간의 논의가 주로 양자의 틀 속에서 이뤄졌다면 이번에는 다자외교라는 무대양식의 변화 속에서 전개되고 있다는 점이 다르다.

이번에도 김계관 북한 외무성 부상과 힐 차관보의 베를린 접촉과 7일 뉴욕에서 끝난 북미 관계정상화 워킹그룹 등 양자채널이 발빠르게 가동되고는 있지만 6자회담이라는 다자외교를 통한 추인을 통해 북미 양국의 실천을 강제하는 힘이 강해진 셈이다.

‘2.13’합의를 이끌어낸 제5차 6자회담 3단계회의에서 합의문 초안이 ‘힐-김계관 메모’에 기초했다는 것도 이러한 점을 반영하고 있다.

여기에다 6자회담이라는 다자외교를 통한 해결을 추구하면서 2000년에는 한국 정부의 역할이 중요했다면 이번에는 중국 정부의 역할이 빛을 발하고 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클린턴 대통령을 설득해 북한과의 협력정책을 강조했고 2000년 남북정상회담으로 시작된 한반도 화해무드는 북미 양국간 고위급 교류로 이어지는 촉매제 역할을 했다.

반면 이번에는 중국 정부가 북한과의 동맹관계를 이용하면서 미국에 대해 북한과 협상을 권고하면서 부시 행정부의 변화를 이끌고 있다.

작년 10월9일 북한의 핵실험 이후 중국 탕자쉬안(唐家璇) 국무위원은 후진타오(胡錦濤) 국가주석의 특사자격으로 12일 미국을 방문해 부시 대통령을 만나 북한과 크게 주고 받는 방식의 대북협상을 제안했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탕 국무위원은 이어 러시아를 거쳐 18일 평양을 방문해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면담을 가졌고 이 자리에서 김 위원장은 추가 핵실험 유예 의사를 밝히면서 “문을 열어 달라”며 미국과 대화하고 싶다는 의사를 보인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중국은 1998년 북한의 미사일 발사 이후 대북결의안에 반대했던 것과는 달리 2000년에는 7월의 미사일 발사와 10월 핵실험 이후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결의안에 찬성의사를 보임으로써 무조건 북한편만 들지는 않을 것이라는 과거와는 달라진 실용적 태도를 보였다.

미국 부시 대통령은 10월25일 백악관에서 핵심 인사들이 참여하는 회의를 갖고 중국측의 이 같은 태도를 평가한 뒤 ‘통 크게’ 북한과 협상을 하겠다는 쪽으로 정책을 선회하고 라이스 국무장관에게 전권을 일임했다는 이야기도 나오고 있다.

이어 조지 부시 대통령은 11월18일 베트남 하노이 한미정상회담에서 북한의 핵폐기시 한국전 종전선언은 물론이고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을 위해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종전 문서에 함께 서명할 용의가 있다는 뜻을 밝혔다.

이와 더불어 북미간의 대화가 본격화된 현재의 시점에서 부시 대통령의 임기가 2년 정도 남았다는 점도 2000년과는 사뭇 다르다.

클린턴 행정부 시절 북미간 논의는 실무급에서 미사일 논의를 거쳐 북미관계가 논의되면서 북미관계 정상화 문제 논의가 본궤도에 오른 것은 2000년 하반기에 이르러서였고 결국 클린턴 행정부는 임기에 쫓기면서 결과물을 만들어내지 못했다.

반면 현재 부시 대통령은 2년이라는 비교적 긴 잔여임기 속에서 ‘행동 대 행동’의 원칙하에 핵폐기와 관계정상화를 병행해 논의하고 있다는 점에서 2000년과는 다를 것이라는 전망을 낳고 있다.

더군다나 이라크 전쟁 등으로 외교정책의 실패를 비난 받아온 부시 대통령이 북한의 핵문제를 통해 성과를 과시하려고 한다면 북미간의 관계 진전은 더욱 가속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임원혁 한국개발연구원 연구위원은 “2.13합의는 미국의 악의적 무시정책과 북한의 벼랑끝 전술이 ‘갈 데까지 간 뒤에’ 이뤄져서 갑자기 좌초될 가능성은 일단 낮아 보인다”며 “미국과 북한 모두 현실적으로 쓸 수 있는 카드는 다 써 봤고, 상대방의 카드가 공갈.협박인지 여부를 서로 확인해 봤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부시 대통령에게 북한문제는 이라크 문제와는 달리 클린턴 행정부 때부터의 문제를 물려받은 측면이 있고 북한도 상황 악화에 대한 책임이 있어 적당한 명분만 찾는다면 해결의 실마리를 찾기가 어렵지 않다”며 “1994년 제네바 합의 때와는 뭔가 다르다는 인상을 심어주면서 북핵문제를 타결하면 부시 외교의 성공사례로 선전할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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