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녘 맏딸의 사모곡

“언니, 절대로 시집 안 간다고 하더니 북쪽에서 결혼도 하고 딸도 있던데요.”

9일 서울 대한적십자사 화상상봉실에서 북측 언니 최숙자(북측명 최숙.75)씨를 만난 남측 동생 영숙(73)씨는 상봉 전 대기실에서 “언니가 왜 결혼을 했는지 꼭 따지겠다”고 말했다. 이렇게 말하던 영숙씨는 어릴 적 언니에게 어리광을 부리던 새침데기 시절의 모습 그대로였다.

영숙씨 기억에 다섯 자매 가운데 제일 나이가 많았던 언니는 힘도 세고 일도 잘 했던 여장부였다. 그는 “초등학교 다닐 때 달리기 시합에서 늘 1등만 했어요”라며 엄지손가락을 치켜 세우며 자랑했다.

하지만 막상 상봉실에서 언니를 만나는 순간 조금 전까지 의기양양한 모습은 사라지고 상봉의 벅찬 감격이 가슴으로 차오르는 듯 눈가에는 눈물이 촉촉이 맺히기 시작했다.

55년 만에 화면에 등장한 큰언니는 훤칠한 체격에 걸걸한 목소리, 화통한 성격이 변하지 않은 채 그대로였다. 예쁘장하게 생긴 조카딸과 깔끔한 외모의 조카 사위가 호기심에 가득 찬 표정으로 화면에 모습을 나타냈다.

영숙씨가 “언니, 나 영숙이야. 내 모습 알아보겠어요”라고 묻자 숙자씨는 걸걸한 목소리로 “야, 몰라 보겠는데..”라고 농반 진반으로 되받았다. 영숙씨가 다시 “우리 언니 아닌 것 같아”라며 어리광 섞인 목소리로 톡 쏘아 붙이자 상봉장은 이내 웃음바다로 변했다.

어머니의 안부를 묻던 숙자씨는 남측 가족들부터 “오늘이 어머니 제삿날”이라는 말을 듣고는 얼굴에서 시종 활달했던 표정이 사라지고 이내 슬픈 빛이 감돌았다.

이어 “위병을 앓으셨던 어머니를 위해 미음 한 그릇 제대로 대접하지 못한 불효를 생각하면서 지금까지 한시도 잊을 수 없었다”며 반세기 이상 쌓인 회한을 털어놓았다.

걸핏하면 학교에 가기 싫다고 투정을 부리고 밥먹기 싫다고 숟가락을 팽개치고 친척집으로 도망치듯 달려가던 철없는 행동이 모두 어머니의 속을 태웠을 것이란 생각에 자책감이 드는 것도 같았다.

막내 동생 남숙(59.여)씨가 “어머니가 생전에 언니가 3남매들 두었는데 언젠가 고기를 잔뜩 사들고 집으로 찾아오는 꿈을 꾸었다고 얘기하곤 했다”고 전해주자 숙자씨는 “그게 다 나 잘 살라는 어머니의 심경이 아니겠니”라며 안타까워했다./연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