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녁에 고향을 둔 기업인들, 정상회담으로 ‘주목’

남북 정상회담이 이달 말 다시 열리게 됨에 따라 북녁에 고향을 둔 기업인들이 주목을 받고 있다.

어릴 적 월남해 고향을 그리는 마음을 달래며 국내 경제 발전의 한 축을 담당해 온 1세대 북녁 출신 기업인들은 대부분 세상을 떠났거나 경영 일선에서 물러났지만 아직도 고향에서 기업가의 꿈을 펼칠 날을 기다리는 이들도 적지 않다.

대표적인 이북출신 기업인으로는 고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이 꼽힌다.

2001년 별세한 정 명예회장은 지금은 북한 땅이 된 강원도 통천군에서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어렸을 적 가출, 상경해 사업에 뛰어 들어 수많은 신화를 만들어 내며 ‘현대’라는 국내 굴지의 기업을 일으켜 세웠다.

자신의 아호를 고향 마을인 ‘아산리’에서 따와 ‘아산’이라고 지었을 정도로 고향에 대해 각별한 정을 가졌던 정 명예회장은 1989년 70세가 넘는 고령에도 한국 기업가로서는 처음으로 북한을 방문해 ‘금강산 관광개발 의정서’를 체결, 남북한 민간 교류의 물꼬를 텄다.

가출 당시 선친이 판 소 1마리 값을 훔친 것을 잊지 못한 그는 우여곡절 끝에 첫 방북 9년 만인 1998년 전 세계 언론의 주목을 받으며 ‘통일소’ 500마리와 함께 판문점을 통해 방북, 금강산 관광개발에 대해 북측과 기본적인 합의를 이끌어내면서 본격적으로 남북경제협력사업을 추진했다.

그는 이어 그해 10월과 이듬해 10월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두 차례 면담을 통해 금강산 일대에 대한 장기독점개발이용권을 확보하고 서해안공단건설사업(지금의 개성공단사업)에 대한 합의서를 체결하는 등 괄목할 만한 성과를 거두었다.

정 명예회장은 1999년에 ‘현대 남북 경협 사업단’을 ‘현대아산’이라는 별도의 회사로 만들어 남북경협 사업을 총괄케 하면서 수십차례에 걸친 방북을 통해 금강산 관광, 남북통일농구대회, 평양 류경정주영체육관 건설 등 남북한 경제협력 및 민간교류에 정력적인 활동을 벌였다.

대북사업을 기업가로서 필생의 사업으로 여겼던 정 명예회장이 개척한 금강산 관광사업과 개성공단 개발사업은 남북 경협사업의 대표적인 사례로 손꼽히고 있다.

개성이 고향이어서 ‘마지막 개성상인’으로 불렸던 동양제철화학 이회림 명예회장도 지난달 90세를 일기로 별세했다.

이 회장은 비단을 파는 점원으로 일하며 받은 개성상인의 도제식 경영 수업을 토대로 1937년 건복상회를 세워 사업가로서 여정을 출발했다.

이후 개풍상사 설립, 대한탄광 인수, 대한양회 설립, 서울은행 창립 등에 이어 1959년에 동양제철화학의 전신인 동양화학을 세운 뒤에는 40여년간 오로지 화학산업에만 매진했다.

교육, 문화예술 발전에도 관심을 보여 1979년에는 재단법인 회림육영재단을 세워 학술 문화부문 연구비 지원 활동을 했으며 1982년에는 인천 송도학원 이사장으로 취임해 송도 중고등학교를 운영했다.

또 1992년 인천공장 근처에 송암미술관을 건립해 인천 시민들에게 문화예술공간을 제공한데 이어 2005년에는 평생 모아온 문화재 8천400여점과 송암미술관 일체를 인천시에 기증했다.

그는 고향을 늘 그리긴 했지만 사업과 관련해서 북한에 관심을 갖지는 않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장치산업의 특성상 진출이 쉽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회사 관계자는 전했다.

2006년 초 세상을 떠난 김복용 매입유업 회장은 함경남도 이원 출신으로 한국 낙농산업의 기틀을 다졌다는 평가를 받는다.

북청공립농업학교를 졸업한 뒤 1946년 월남해 서울 방산시장에서 담배 좌판을 벌이면서 사업 기반을 닦은 김 회장은 1956년 공흥산업, 1964년 신극동제분 등을 설립하며 무역과 제분업으로 돈을 모았다.

1971년 정부 투자기업 한국낙농가공을 인수해 매일유업으로 이름을 바꾸고 대표이사 사장에 오른 뒤 정부와 세계은행의 지원으로 초지를 조성하고 우수한 젖소를 도입해 낙농산업 발전에 이바지했다.

장치혁 전 고합 회장과 박승복 전 샘표식품 회장도 이제는 경영일선에 물러났다.

장 회장은 평북 영변출신으로 1966년 고려합섬을 창업하고 1992년에는 한국섬유산업연합회 회장을 맡는 등 섬유산업발전에 기여했다.

장 회장은 특히 2001년 일선에서 은퇴하기 전까지 북한관련 사업에 깊숙하게 발을 담궜다.

2000년 남북 정상회담 때는 전경련 남북경협위원장 및 이산가족기업인 자격으로 대통령을 수행하기도 했으며 고향에 투자할 의사가 있는 북한출신 기업인들과 모임을 만들기도 했다.

그러나 지난 2001년 분식회계 문제 등이 불거지면서 장 전 회장은 35년만에 경영에서 완전히 물러났고 이와 같은 활동도 모두 접었다.

박승복 회장은 함경남도 함주 출신으로 함흥공립상업학교를 졸업한 뒤 최고 인기 직장이었던 식산은행(산업은행 전신)에서 일한 은행원 출신이다.

해방 후에는 서울로 와 근무를 계속하다 은행에서 모셨던 송인상씨가 재무부 장관으로 간 인연으로 1959년 재무부에 발을 들여놨고 1973년에는 국무총리 행정조정실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이후 재무부 기획관리실장과 국무총리 정무비서관 및 행정조정실장직 등을 거치면서 소양강댐 건설, 민속촌 설립, 환율 변동제 실시, 주민등록번호 도입, 타자기 자판 통일 등 국가 대사의 현장에서 쉴 틈 없이 일했다.

그러다 1976년 김종필 총리가 물러나면서 공직을 떠난 뒤 7개월간 ‘백수’ 생활을 하던 중 샘표식품공업(현 샘표식품)을 운영하던 부친이 별세하자 회사를 물려받아 기업인으로 진로를 바꿨다.

박 회장은 1997년 장남 박진선 샘표식품 사장에게 경영을 맡기고 일선에서 물러났지만 1990년대 후반부터 맡아온 한국식품공업협회장과 한국상장회사협의회 회장으로 계속 일하고 있으며 작년에는 유니세프 한국위원회 부회장직을 맡기도 했다.

박 회장은 북한과 관련한 사업을 추진하지는 않았지만 남북경협 초창기인 2000년 중견기업연합회 회장으로 일하면서 북한진출을 꾀하는 업체에 도움을 주기 위한 특별위원회를 구성하는 등 관심을 기울여왔으며 북한출신 기업인 모임인 고향투자협의회에도 꾸준히 참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아들인 박진선 사장에게도 이같은 관심이 이어져 지난 6월 샘표에서 생산된 간장과 된장, 고추장 등 전통장류 200상자가 대한장류협회의 ‘북한 장류제품 보내기 운동’을 통해 북한에 소개되기도 했다.

이밖에 강성모 린나이코리아 회장은 함남 북청이, 함태호 오뚜기회장은 함남 원산이 고향인 이북출신 기업인이며 귀순가수로 더 많이 알려진 김용씨는 북한음식 전문점인 모란각, 식자재 유통업체인 오성물산, 식자재 가공회사인 모란각종합식품 등을 잇따라 만들었으며 이들 회사를 계열사로 둔 오성에스에스 회장에 오르는 등 기업인으로 변신했다./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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