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자는 왈렌끼 신고 소풍가는데 난 풀뜯어…”

“로임(임금)도 배급도 안주는 직장이지만 오늘도 무거운 발걸음을 옮긴다. 할 일은 없지만 단련대에 끌려가지 않으려면 도리가 없다.”(평성 주민) “싹이 나오는 시기여서 산에는 아이들이건 늙은이건 풀을 뜯으려고 바글바글 하다.”(함남 주민)


해마다 이맘 때(보릿고개)가 되면 북한의 취약계층은 굶주림과 치열한 사투를 벌인다. 만성적인 경제난에 화폐개혁 후유증까지 겹치면서 올해는 더욱 힘든 나날을 보내고 있다. 세계식량계획(WFP) 현지 실태조사를 통해 긴급 지원을 권고한 43만 톤의 식량이 필요한 사람들이다. 


일부 대북지원 단체에선 1990년대 중·후반 대(大)아사 참상이 재판(再版)되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데일리NK 내부 소식통들은 시장을 통해 식량이 공급되고 있고 가격도 안정화 됐기 때문에 과거와 같은 기아 상태가 벌어질 가능성은 없다고 말하고 있다.


다만 극빈층의 식량사정은 악화일로를 걷고 있기 때문에 이들 중 일부에서 영양실조로 인한 사망 가능성이 있다고 전해왔다. 


북한에서 4인가족의 월 최저생계비는 5만 원 정도로 추산된다. 식량 및 부식비용이 3만 5천원, 의류 등 생필품 구입에 1만 원 가량이 든다. 나머지는 각종 준조세 성격의 국가 헌납 비용과 잡비다. 극빈층은 월 5만원의 생계비가 없는 세대를 의미한다.  


한 탈북자는 “북한 주민들 중에도 극빈층에 해당하는 사람들은 봉급이 없는 노동자가 상당하고, 자식이 없는 노인, 부모 없는 고아도 있다. 여기에 생활 의욕을 상실한 사람들도 꽤 있다. 또 장사를 하다가 망하거나 사기를 당한 사람들도 있지만 식량을 계획적으로 먹지 않거나 얻어 먹는데 익숙한 사람들도 상당하다”라고 말했다. 


이 탈북자는 “한 동에 100가구가 산다면 이런 가구는 1, 2가구 였는데 화폐개혁 이후 4, 5가구 정도로 늘어났다”라고 말했다. 북한의 취약계층에는 로임(임금)도 배급도 안 주는 직장에 출근해야만 하는 노동자 가정이 많다. 할일이 없어도 직장에 출근해야 한다. 그렇지 않을 경우 단련대(6개월 노동교화)에 보내지거나 사상비판을 받는다.


공식적인 승인을 받고 출근을 하지 않으려면 한 달 수익료를 내야한다. 북한 돈으로 3만원 (약 10달러)이다. 장마당에 고정 (판)매대가 없는 사람들은 이 돈을 마련하기가 어렵다. 그렇다고 돈을 빌릴 수도 없다. 극빈층의 ‘빈곤의 악순환’이 벌어지고 있는 셈이다.


북한 노동자들의 평균 월급은 4000원선이다. 현재 북한 장마당에선 입쌀은 1500원, 강냉이는 600원에 팔리고 있다. 4인 가구 기준으로 한사람이 하루에 500g(북한 당국 하루 700g 규정)을 먹는다고 할 때 2kg을 사려면 쌀은 3000원, 강냉이는 1200원이다. 강냉이로 연명한다고 하더라도 3일이 고작이다.     
 
함경북도 온성 소식통은 19일 “정말 먹기 바쁜 사람들은 나물 등을 캐기 위해 하루 종일 산을 헤맨다”며 “하루 한 끼 먹을 쌀이 없어 곰취, 민들레, 더덕, 칡뿌리 등을 갈아 강냉이 가루와 섞어서 죽을 쑤어 먹고 있다”고 전했다. 


무산 소식통은 “태양절 전날에도 사람들은 강냉이 밥이라도 먹으려고 밤에 불을 켜놓고 음식 장사를 했다”고 말했다. ‘음식 장사’는 장사 밑천이 적은 사람들이 주로 한다. 이 소식통은 “사람들은 차라리 명절이 없었으면 좋겠다고 말한다”며 어려운 식량사정을 표현했다.


장사 대금조차 없는 이들 극빈층의 경우엔 시장에서 식량을 구입할 수도, 그렇다고 국가의 배급도 기대하기 어려워 산나물 채취, 유랑 걸식, 도둑질 등으로 목숨만 연명하는 상태라고 볼 수 있다. 때문에 이들 사이에서는 ‘살아있는 것이 고난’이라는 말이 유행한다고 한다. 


함경남도 신포 소식통은 “고난의 행군이 끝이 없다. 싹이 나오는 시기여서 산에는 아이들이건 늙은이건 풀을 뜯으려고 바글바글 하다”며 “며칠 전 역전에는 풀을 잘못 먹어 죽은 남매(14세 女, 11세 男)의 시체가 발견돼 사람들이 혀를 찼다”고 전했다.


그나마 장마당에서 소규모 장사라도 하면서 생계를 유지해왔던 주민들도 최근 시장거래가 줄어들어 어려움에 놓여 있다. 화폐개혁 후유증으로 보유자본이 줄어 전반적으로 구매력이 떨어졌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주민들은 비싼 쌀보다는 강냉이를 섭취하는 비중이 커졌다.


양강도 혜산 소식통은 “그나마 돈이 좀 있던 사람들도 화폐개혁 때 몽땅 물을(쓸모없게) 만들어 너도나도 돈을 모으려고 장마당에 나오니 사는 사람보다 파는 사람이 더 많다”며 “장마당에 들어가기 전 200m 앞에 장사꾼들이 줄을 서 앉아 있는데 안전원들이 단속하면 물건을 들고 달아나는 것이 참 눈 뜨고 볼 수 없다”고 말했다.


이 소식통은 “계속되는 비사회주의 검열과 시장단속으로 주민들의 생활은 다시 악화되고 있다”면서 “고난의 행군 시절처럼 거리에는 꽃제비(노숙자)들이 많아지고 있고 혜산 역전에는 눈이 녹아 질퍽한데도 누워서 빌어먹는 사람들이 부쩍 많아졌다”고 덧붙였다.


이어 “요즘 사람들의 사구팔구가 예전 같지 않아 주민들이 돈쓰기를 아까워한다”며 “그나마 장사를 조금하는 사람들이 강냉이 쌀에 입쌀을 섞어 하루세끼 먹고 장마당에 나가지 못하는 사람들은 순수 강냉이밥을 하루 두 끼도 겨우 먹는다”고 전했다.


또한 “작년에 비해 집값도 갑자기 많이 내렸다. 중국 인민폐로 1만5000위안에 샀던 집을 6000위안에 내놓아도 팔리지 않는다”며 “전체적으로 가격이 다 내렸지만 물건이 팔리지 않아 저녁에 쌀도 못 사고 빈손으로 들어가는 사람들이 많다”고 말했다.


함북 소식통은 “장마당에 쌀은 예년 수준으로 있지만 사는 사람이 없다. 그래서 장사꾼들이 쌀 가격을 많이 내렸다”며 “지금은 입쌀보다 묵은 강냉이를 많이 산다. 장사가 잘 안되지만 먹고는 살아야 하기 때문에 강냉이를 사간다. 이밥을 먹던 잘 나가는 장사꾼들도 입쌀과 강냉이를 5대 5로 섞어먹기 시작했다”고 전했다.


북한을 오가며 장사를 하고 있는 중국 창바이(長白)현의 조선족 이 씨도 “북한 사람들이 화페개혁 이후 물건을 전처럼 사질 않는다”며 “공업품(의류, 신발, 화장품 등)을 가지고 들어가던 사사여행자(중국 장사꾼)들이 물건이 팔리지 않아 애를 먹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새것보다 입던 중고가 값이 눅어(싸) 사람들이 중고를 찾는 경우가 많아졌다”면서 “요즘은 한국 중고옷을 밀수로 넘기는 사람들이 돈을 번다”며 “사람들이 전체적으로 돈이 없고 아끼는 분위기다”고 전해왔다.


그러나 부유층들의 사치 행각은 여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부터는 간부집 여자들을 중심으로 밍크털이 유행했다. 이런 집 자제들은 중국에서 생산된 리닝(중국 스포츠웨어 브랜드)파카와 운동화를 신는다.


이처럼 전반적인 경제 상황 악화와 빈부 격차가 커지는 현상에 대한 불만의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북한에서는 이러한 부익부 빈익빈 현상을 두고 “가진 집 여자들은 왈렌끼(러시아어에서 유래된 말로 여성용 긴부츠를 지칭) 신고 소풍나오는데 우리는 풀죽 쑤려고 풀 뜯으러 나온다”는 말이 유행한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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