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시 평화체제 언급, ‘先비핵화’ 쐐기 박은것”

지난 7일 APEC 한미정상회담에서 노무현 대통령과 부시 대통령이 북한이 비핵화 조치를 성실하게 이행할 경우 평화협정을 추진할 수 있다는 뜻을 북한 김정일에게 전달하기로 하면서 북측의 반응이 주목된다.

부시 대통령은 회담에서 “나의 목적은 ‘평화조약’(peace treaty)을 통해 한국전쟁을 종결시키는 것이며, (한국전쟁을) 끝내야 하고 끝낼 수 있다”며 “이를 위해서는 김 위원장이 그가 갖고 있는 핵 프로그램을 검증가능하게 폐기해야 한다”고 말했다.

미국은 종전선언과 평화조약이라는 명시적인 대가를 제시했지만, 완전한 비핵화에 초점이 맞춰져 있음을 읽을 수 있다. 한국은 일단 미국 대통령으로부터 평화 보장을 약속받은 만큼 비핵화에 탄력을 받았다는 판단이다.

이러한 메시지가 양국 공동으로 북측에 전달된다면 이에 대해 김정일은 어떤식으로든 비핵화와 평화협정 체결 의지를 담은 답변을 내올 가능성이 있다.

일단 북핵을 둘러싼 미·북간 관계 개선 움직임은 긍정적이다. 지난 2일 종료된 제네바 미북관계 정상화 실무회담에서도 미·북은 핵시설 불능화와 핵프로그램의 전면신고, 테러지원국 명단 삭제와 적성국 교역법 적용 해제하는 등의 관계정상화를 추진하기로 합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도 미국 정부의 핵 불능화 기술팀을 직접 초청하고 이들의 판문점 경유를 허용하는 등 미북관계 개선을 위한 적극적인 제스처를 취하고 있다. 워싱턴포스트는 미국관리들이 올해 안에 핵 불능화가 이뤄지고 북한의 테러지원국 지정이 해제될 수 있다고 공언하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한편, 북한이 협상을 통해 핵문제 해결에 나서는 등 유화적인 태도로 돌아선 결정적인 배경은 당면 경제난 때문이라고 지적이 나왔다. 따라서 대규모 지원이 이뤄질 때까지는 핵과 북미관계 개선 문제가 순항할 것이라는 전망이다.

미국이 대북 경제제재를 가함으로써 위폐와 마약, 미사일 거래 등을 통해 벌어들이던 커다란 수입원이 차단되고 일본도 납치자 문제 등을 이유로 대북 송금을 중단함으로써 북한 경제가 커다란 타격을 받게 됐다는 것. 이에 북한은 핵 문제를 통해 경제회생을 도모하고 있다는 해석이다.

스티븐 해거드 미 캘리포니아대 교수와 마커스 놀랜드 피터슨 국제경제연구소 선임연구원은 시사주간지 뉴스위크 최신호 기고에서 “북한이 핵협상에 적극적으로 나선 것은 미국의 금융제재 해제를 이끌어 한국과 중국의 경제지원을 받을 수 있는 여건을 조성, 당면 경제난 타개를 위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국내 전문가들은 핵문제를 둘러싼 미북 커넥션을 긍정적으로만 봐서는 안된다며 경계하고 있다.

북한은 불능화 이전 미국의 대북 제제를 최소화하고 국제사회의 대북지원을 최대한 확보하는 것에 관심인 반면, 미국은 불능화 조치 이후 이에 상응하는 대북제제 완화조치에 나선다는 원칙에 대한 입장차이가 아직 크다는 것이다.

김성한 고려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한미정상회담에서의 부시 미 대통령의 발언은 ‘先비핵화 後평화협정’ 원칙에 쐐기를 박은 것”이라며 “북핵 문제가 폐쇄-불능화-폐기 3단계로 나뉜다면 평화체제 논의는 북한의 불능화 조치 이후 ‘핵폐기’와 함께 논의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북한은 테러지원국 삭제와 적성국교역법 적용해체 등을 불능화 이전에 요구할 것”이라며 “불능화까지는 관심을 보이고 있는 북한은 미국의 대북제제 완화를 집중적으로 요구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태효 성균관대 교수도 “핵 불능화 조치가 이행된 이후 핵폐기 문제와 더불어 평화협정 논의가 진행될 수 있을 것”이라며 “2․13합의 이행 이후 핵폐기와 평화협정 문제가 본격적으로 다뤄질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평화협정에 대한 북한의 입장표명은 민족공조 측면에서 ‘평화선언’ 수준으로 언급될 뿐 구체적 진전 가능성은 낮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하고 있다.

김성한 교수는 “우리 정부는 이번 남북정상회담에서 남북간 경협에 키워드를 맞추고 있다”며 “북한은 우리 정부가 ‘미국도 평화선언을 지지하고 있다’고 강변할 경우 아전인수 격으로 해석하려 들 것”이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