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시 친서 든 힐, 김정일 면담 불발

크리스토퍼 힐 미 국무부 차관보가 조지 부시 미 대통령의 친서를 들고 방북하고도 방북 이튿날 박의춘 외무상을 만난 자리에서 전하지 않고 그 다음날 북한을 떠나기 불과 몇시간전에 다시 박 외무상을 만나 전하는 이상 행태를 보인 것은, 친서 전달을 내세워 김정일 위원장의 면담 가능성을 엿봤던 게 아니냐는 관측이 제기된다.

힐 차관보는 주한 대사 시절 한국 정부 관계자들로부터 “북한에는 1명의 외교관이 있을 뿐이고 그는 김정일 위원장”이라는 말을 들으면서 김 위원장 면담에 큰 의욕을 가져왔다는 전문이다.

이때문에 힐 차관보의 2005년 9월 방북 추진 때나, 지난 6월 방북 때도 김 위원장 면담 가능성이 화제가 됐고, 이번 방북 때도 친서 휴대시 면담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왔었다.

그러나 힐 차관보는 이번에도 북한 헌법상 명목상 국가수반인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도 못 만나고 양형섭 부위원장을 만나는 데 그쳤다.

김정일 위원장이 힐 차관보를 직접 면담하지 않는 이유는 우선 힐 차관보의 직급이 낮은 점을 들 수 있다.

특히 콘돌리자 라이스 미 국무장관의 방북설이 꾸준히 제기되고 있는 만큼, 김 위원장으로선 힐 차관보와 면담보다는 더 고위급 인사와 면담을 북미관계 개선의 큰 획을 긋는 자리로 활용하겠다는 의중으로 보인다.

1999년 5월 당시 빌 클린턴 대통령의 특사 자격으로 방북한 윌리엄 페리 미 대북정책조정관도 클린턴 대통령의 친서를 가지고 있었지만 김영남 상임위원장을 면담하는 데 그쳤고, 김정일 위원장과 면담은 2000년 10월 매들린 올브라이트 국무장관의 방북을 통해 이뤄졌다.

또 김 위원장이 현재 평양에 체류하지 않아 물리적으로도 면담이 이뤄지기 어려웠을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최근 잇달아 군부대를 시찰하고 있는 김 위원장은 6일밤 조선중앙통신의 보도에 따르면, 군부대에서 운영하는 목화농장과 가공공장, 건재공장 등 생산시설을 시찰했다.

군부대가 일반적으로 지방에 있는 점을 감안하면 김 위원장이 평양에 부재중인 것으로 보인다.

2003년 1월 대통령 특사로 방북했던 임동원 당시 청와대 통일외교안보특보도 김 위원장 면담을 추진했으나 북측은 김 위원장이 지방에서 중요한 현지지도를 하고 있기 때문에 만날 수 없게 됐다면서 양해를 구한 일이 있다.

북한의 관행을 감안하면, 김 위원장과 면담을 위해선 우선 사전에 김 위원장의 평양 체류 여부를 확인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있다.

한편 김 위원장이 부시 대통령의 친서에 답장을 보냈을지가 관심이나 가능성이 낮은 것으로 보인다.

북한의 정책결정 과정으로 볼 때 5일 친서를 접수하고 곧바로 김 위원장의 친서를 만들어 보내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한 고위층 탈북자는 “서기실 등에서 친서를 작성해 보고 경로를 거쳐 김 위원장에게 올라간 뒤 다시 수정지시를 받아 완성하려면 적잖은 시간이 걸린다”며 “특히 미국 부시 대통령에게 전달되는 친서라면 함축적으로 북한의 의지와 요구를 담아야 하는 만큼 몇 시간만에 만들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힐 차관보도 중국에서 부시 대통령의 친서 전달을 확인하면서 “어떤 형태로든 (북한으로부터) 조만간 반응이 나올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해 답신을 받아나오지 않았음을 시사했다./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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