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시 취임사 “독재와 친구되려는 망상 버려라”

취엄선서를 하는 부시대통령<사진:연합뉴스 제공>

조선일보 2005-01-21 (워싱턴=강인선특파원 insun@chosun.com)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의 20일 취임사의 화두는 ‘자유’였다. 폭정에 시달리며 자유를 갈구하는 국민들의 편에 서서 이들을 지원하겠다는 각오를 담은 취임사는 부시 2기의 ‘교과서’로 불리는 내이턴 섀런스키의 저서 ‘민주주의론’과 맥을 같이 한다. 구(舊)소련에서 유대인 인권운동을 펼치다 스파이 혐의로 체포돼 9년간 정치범 수용소에 수감됐던 섀런스키는 자유의 확산이야말로 세계민주화를 향한 길이라며, 자유세계가 자국민에게 폭압을 일삼는 ‘공포사회’의 민주화에 적극 나서야 한다고 주장한다.
부시 대통령은 최근 이 책을 읽고 백악관을 찾는 모든 이들에게 권하고 있을 뿐 아니라, 콘돌리자 라이스 국무장관도 인준청문회에서 섀런스키를 인용했을 정도로 이 책은 ‘부시 2기의 방향’을 가늠할 수 있는 길잡이 역할을 하고 있다.

◆자유사회와 공포사회의 구분법:마을광장의 테스트
어떤 사람이 마을 광장에 나가 체포나 투옥에 대한 불안을 느끼지 않고 자신의 견해를 말할 수 있는가? 그렇다면 ‘자유사회(free society), 그렇지 못하면 공포사회(fear society)다. 이 테스트는 그 사회에 자유가 존재하는가를 알아보는 가장 기본적인 기준이다. 공포사회는 결코 이 테스트를 통과할 수 없고 언제나 정당하지 못한 사회다.

◆자유를 회의하는 사람들의 태도
세상에는 악에 맞서 싸울 준비가 돼 있는 사람들과 악과 타협할 의사가 있는 두 종류의 사람들이 있다. 자유의 힘을 회의하는 자들은 다음과 같은 억지주장을 편다. 민주주의 제도와 양립하기 어려운 특정 문화와 문명이 있고, 자유를 원하지 않는 국민들도 있다. 아랍권에는 철권통치자가 필요하고, 그들은 민주주의를 해본 적도 없고 앞으로도 그러지 않을 것이다. 그들의 가치는 우리의 가치와 다르다. 중동국가들이 민주주의를 하다가 근본주의자들이나 과격파가 정권을 잡는 것보다는 자국민의 자유를 억압하더라도 현재 정권이 낫다. 자유는 외부에서 주어질 수 없는 것이며 섣불리 시도하다가 오히려 부작용만 생긴다.

◆안정을 위해 민주주의를 희생한다는 발상의 오류
‘안정(stability)’이란 외교의 사전 안에서는 아마 가장 중요한 용어일 것이다. 그 ‘안정’의 이름으로 독재자와 폭정을 일삼는 자들이 보호받고 설 자리를 구한다. 자유세계에서조차도 안정을 옹호하는 사람들이 민주주의를 지지하는 사람들보다 몇배나 더 많다. 진보와 보수를 막론하고 지구상의 거의 모든 민주적인 정부들은 자신들이 잘 알지 못하는 민주주의를 상대하느니 차라리 잘 아는 비민주적 정권을 다루는 쪽이 낫다고 생각한다. 이들은 공포사회가 민주주의의 원칙에 상충된다는 것을 인정하면서도. 공포사회의 존재가 안정과 안보에 힘이 된다고 본다. 공포사회는 자국민들에게는 잔인하게 굴지 몰라도 국제질서 유지에는 도움이 된다는 식이다. 자유세계는 과거 스탈린의 소련, 사담 후세인의 이라크를 이렇게 평가했다.

◆폭정국가의 민주주의 혁명 공식
구(舊)소련의 붕괴는 세 가지 요소에 의해 이뤄졌다. 첫째 소련 국민들이 자유를 갈망했다. 둘째 외국 지도자들이 소련국민들도 자유로워질 수 있다고 믿었다. 셋째 자유세계는 소련과의 관계에서 소련의 인권문제를 연결시키는 것을 정책으로 추진했다. 북한, 중국, 짐바브웨, 이란 등에서도 이 공식은 적용될 수 있다.

◆비민주적 정권이 세계평화를 위협하는 이유
비민주주의적인 정권은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자국민을 억압하고, 억압을 정당화하고 내부 안정을 유지하기 위해 외부의 적을 만들어낸다. 민주주의 국가는 본질적으로 평화로운 반면, 전제정권은 호전적일 수밖에 없다. 내부 붕괴를 피하기 위해 공포사회는 갈등상태를 유지해야만 한다. 비민주적인 정권은 언제나 폭약을 지고 사는 셈인데, 대량살상무기의 시대에 그 폭발력은 더 치명적으로 증가한다. 대량살상무기와 테러의 시대에 민주주의가 작동하지 않는 지역을 무시하는 것은 세계가 직면한 위험을 극적으로 증가시킨다.

◆북한이 제기하는 위협의 본질
지난 반세기 동안 북한은 한국의 안보를 위협하고, 장거리 미사일을 개발해 일본과 이웃 국가를 위협하며, 핵무기 개발로 세계 안보를 위험에 빠뜨리고 있다. 북한의 위협은 무기의 파괴력 증가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 무력증강이 본질적으로 문제가 있는 체제의 본성 때문에 배가된다는 데 있다. 러시아의 핵무기는 구소련의 핵무기처럼 위협적인 존재는 아니다. 민주화된 북한이 핵을 갖는다면 한국이 핵을 가진다고 해도 세계안보에 위협이 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다. 정권의 생존이 끊임없는 긴장상태를 유발하는 데 걸려 있는 정권의 경우, 이같은 무기의 위협은 직접적으로 또는 테러조직을 통해 이용될 가능성이 있으므로 위험하다.

◆독재자와 친구가 될 수 있다는 망상을 버려라
한 국가의 체제가 지도자 개인의 성향에 따라 달라진다고 보는 시각은 위험하다. 한 체제의 성격은 지도자와 국민과의 관계에서 드러난다. 호전적인 민주주의보다는 독재자라 해도 우호적이라면 그 정권을 지원함으로써 평화와 안보가 달성된다고 믿는 것은 ‘넌센스’다. 한 사회가 자유로워지면 질수록 국제사회에 대한 위협은 감소한다. 자유를 회의하는 자들은 지금 당장 당신을 싫어하는 민주주의 국가가 당신을 좋아하는 독재자보다는 덜 위험하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민주주의의 부재(不在)야말로 세계 평화의 실제 위협이다. ‘우호적인 독재자’라는 개념은 허구일 뿐이다. 오늘은 독재자의 적이 당신의 적일 수 있다. 그러나 내일이 되면 당신이 그들의 적이 될 것이다. 독재자란 늘 외부의 적을 필요로 하기 때문에.

◆독재국가도 민주화시킬 수 있다
민주주의란 외부에서 부과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주장이 있다. 공포사회가 자유사회가 되려면 변화는 내부에서 시작돼야 한다는 것이다. 자유세계가 다른 나라의 민주화를 도울 수 있는 능력을 과소평가하는 말이다. 미국이 이라크전 이후 이라크 민주화를 추진하는 노력과 관련, 미국내의 진보와 보수는 공히 ‘어린애 같은 환상’이라고 비웃었다. 이라크 민주화가 요원?일처럼 보이는 한 회의주의자들의 말이 맞는 것처럼 들릴 수 있다. 그러나 앞으로 몇년 동안 이라크 민주화가 뿌리를 내린다면, 시리아나 사우디아라비아에 비해 이라크에서 민주화 가능성이 더 높다는 점을 인정하게 될 것이다.

◆북한 민주화는 수십년이 걸릴 것
어떤 사람들은 북한과 중국도 자유 무역과 건전한 외교를 통해 한국이나 대만처럼 변할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포용정책을 열렬하게 지지하는 사람이라 해도 ‘자유 북한’과 ‘자유 중국’은 수십년 후에나 가능하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북한과 중국, 사우디 아라비아와 시리아에 민주주의의 뿌리를 내리게 하기에는 자유세계가 너무나 무력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반드시 기억해야 할 점이 있다. 바로 한 세대 전 정책담당자들은 소련의 변화에 대해 더 큰 무력감을 느꼈다. 누구도 서구가 구 소련을 변화시킬 수 있을 것이라고는 믿지 않았다.

◆공포사회의 화해의 손짓은 붕괴를 막기 위한 안간힘이다.
지적 자유와 자유로운 아이디어의 교환을 억압하는 공포사회는 국민들의 창의력을 억압하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자유사회와의 경쟁에서 패배하게 돼 있다. 또한 공포로 자국민을 통제하는 정권에게 쇠퇴는 피할 수 없는 과정이다. 공포사회가 쇠퇴과정을 지연시킬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외부의 도움을 받는 것이다. 자국민을 통제할 수 있는 수단과 에너지가 고갈되면, 공포사회는 기생충처럼 다른 나라에 들러붙어 자원을 빨아들인다. 그것이 바로 소련이 냉전시대에서 ‘데탕트(긴장완화)’로 옮겨가면서 기대했던 바였다. 데탕트는 소련이 전제체제를 유지하면서 동시에 서구와의 대결을 피하게 해준 결과, 내부로부터의 붕괴를 피할 수 있게 해준 것이다.

◆화해무드에 속지 말라
소련은 서구와의 데탕트를 통해 기술이전과 자신들에게 유리한 군축합의, 유리한 무역조건 등 많은 것을 얻어냈다. 당시 리처드 닉슨 대통령과 헨리 키신저가 데탕트의 성공에 기뻐하며 소련외교정책을 온건화시켰다고 기뻐하고 있을 때, 소련은 정권을 더 공고화하고 자국민들에게 서구에 대한 증오심을 더 심어주었으며 중동지역에 대한 전쟁을 가속화시켰다. 서구는 무역과 잦은 만남이 국민들을 서로 가깝게 하고 긍정적인 변화를 일으킬 것이라는 환상에 놀아난 것이다. 현란한 고위급 협상에, 우아한 정상회담, 상세한 내용이 담긴 협정에 정신이 팔린 자유세계는 정말로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를 몰랐다. 공포사회가 자유사회에 의존할 때, 그 ‘의존성’을 지렛대로 이용해 공포사회가 진정한 선택을 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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