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시 임기내 ‘불능화 완료’ 선택…北은 실속 챙긴 듯

미 행정부가 11일 북한에 대해 20년간 붙여놨던 테러지원국의 딱지를 떼준 것은 북핵 2단계를 완료하겠다는 강력한 의지가 반영된 결과로 보인다.

조지 부시 행정부는 집권 1기 초기 북한을 `악의 축’으로 몰아붙이며 강공을 펴는 바람에 북한이 핵개발은 물론 핵실험까지 감행하도록 하는 빌미를 제공한 뼈아픈 `학습효과’를 경험했다.

따라서 부시 행정부 입장에서는 적어도 이번만큼은 어떻게든 북한의 극단적인 선택을 막아내면서 영변 핵시설에 확실하게 대못질을 해둘 필요가 있었던 셈이다.

특히 부시 대통령은 자신의 임기내 북핵의 완전한 폐기까지는 못 가더라도 2단계인 불능화 목표는 달성해야 한다는 생각이 강했을 것이라는 게 워싱턴 외교가의 대체적 분석이다.

한 외교소식통은 “영변 핵시설에 대해서만 우선적으로 검증을 실시해서 불능화를 이뤄낸다면 그것만으로도 부시 대통령 입장에서는 대단한 외교적 성과가 될 수 있다”고 평가했다.

부시 대통령이 경제위기로 어수선한 가운데서도 북한에 대한 테러지원국 해제에 `OK 사인’을 한 것은 차기 대통령이 확정되는 11월 4일 이후에는 사실상 중요한 정책결정을 하기 어렵다는 점을 감안한 것으로 풀이된다.

특히 현재 대선 여론조사에서 앞서가고 있는 민주당의 버락 오바마 후보가 차기 대통령으로 선출될 경우, 공화당 출신인 부시 대통령이 미래권력을 무시한 채 `일방통행’을 하기는 쉽지 않은 상황이기도 하다.

그러나 미 행정부는 임기말에 몰려서 북한에 대폭 양보한 검증안을 수용했다는 인상을 주지 않기 위해 애쓰는 모양새다.

숀 매코맥 국무부 대변인은 이날 발표에서 “미국이 추구했던 모든 요소가 검증패키지에 담겼다”고 강조했다. 플루토늄은 물론 검증의 `사각지대화’가 우려됐던 핵확산, 우라늄농축 활동 등 3가지 요소가 검증대상에 전부 포함됐다는 의미다.

또한 6자회담 당사국들의 전문가들이 검증과정에 참여할 수 있는 길이 열려있고, 국제원자력기구(IAEA)가 검증과정에서 협의.지원하는 역할을 맡게 되며, 시료채취등 과학적인 활동도 보장됐다는 것이다.

그러나 북한이 단지 테러지원국 해제를 따내기 위해 그동안 영변 핵시설의 재가동 등 압박카드를 꺼내들며 벼랑끝 전술을 구사했다고 보기는 힘들기 때문에 북한입장에서는 검증조건을 완화하는 `실익’을 챙겼을 가능성이 높다는 관측이다.

이를테면 북한이 신고하지 않은 시설에 대해서는 `상호 합의’하에 검증을 실시한다는 내용이 그런 범주에 들 수 있다. 뒤집어 말하면 상호 합의가 이뤄지지 않을 경우에는 현장방문 및 검증이 불가능하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또한 매코맥 대변인에 따르면 핵확산과 우라늄농축 문제와 관련해서도 “북한이 진실을 얘기했는지를 검증한다”는 추상적인 내용이어서 딱부러진 검증이 이뤄질지는 역시 불투명하다.

애초 미 행정부가 북한 핵프로그램 검증의 조건으로 내걸었던 `완전하고도 정확한’ 검증의 기준에는 미치지 못한다는 지적이 공화당 강경파 사이에서 나온 것도 이런 연유에서다.

하원 외교위원회의 일리아나 로스-레티넌(공화.플로리다) 의원은 행정부의 발표 직후 성명을 내고 “북한의 모든 핵시설에 대해 전면적인 검증을 얻어내지 못한 채 북한을 테러지원국에서 해제한 것을 강력히 비난한다”고 밝혔다.

로스-레티넌 의원은 “오늘 조치로 인해 미국은 중요한 레버리지를 포기한 셈”이라며 “북한이 자신들의 약속을 이행하기도 전에 대가를 지불함으로써 북한으로 하여금 불법적인 핵프로그램을 계속하고 (시리아와 같은) 극단적인 정권에 핵협력을 제공하는 일을 부추기고 말았다”고 비판했다.

이런 결함에도 불구하고 북한의 영변 핵시설 재가동 움직임으로 파국위기에 처했던 북핵 2단계는 우여곡절 끝에 제자리를 찾게 됐고, 북미간 합의정신이 제대로 지켜진다면 적어도 부시 행정부 임기내에 2단계 목표달성은 가능해 보이는 지점까지 도달한 듯하다.

다만 문제는 북한이 미국의 정권이양기를 앞두고 더많은 것을 얻어내려 한다면 이번에 핵검증합의와 테러지원국 해제라는 `행동 대 행동’을 통해 모처럼 조성된 북미 화해분위기가 다시 냉각될 가능성은 여전히 남아있다./연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