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시 ‘싱가포르합의’ 동의…검증 어떻게?

조지 부시 대통령이 크리스토퍼 힐 국무부 동아태 차관보와 김계관 북한 외무성 부상 간에 이뤄진 ‘싱가포르 합의’에 동의했다고 백악관이 밝혔다.

데이너 페리노 대변인은 14일 정례브리핑에서 부시 대통령이 크리스토퍼 힐 국무부 차관보와 김계관 북한 외무성 부상이 도출한 합의사항에 동의했느냐는 질문에 대해 “그렇게 믿는다. 맞다.(I believe so, yes)”고 답했다.

페리노 대변인은 “우리가 지금 기다리고 있는 것은 완전하고도 정확한 신고”라며 “우리는 아직까지 그런 신고를 확보하지는 못했지만 힐 차관보는 지난주 유익한 회동을 했다”고 평가했다.

그는 북한의 핵프로그램 신고에 따른 테러지원국 해제 문제에 대해서는 “그것은 (6자회담 북핵협상) 패키지의 한 부분이며, 일의 순서에 따라 이뤄질 문제이기 때문에 당장 그것이 일어날 일이라고 시사하는 것은 시기상조”이라고 말했다.

백악관의 이 같은 언급은 지난 8일 싱가포르 북미 잠정합의가 도출된 이후 거의 일주일 만에 나온 것으로 이제까지 나온 미국 정부 반응 가운데 가장 구체적이고 긍정적인 것이다.

미북 양국은 싱가포르회담에서 플루토늄 문제에 대해서는 자세한 신고와 검증을 하되 북한의 우라늄농축프로그램(UEP) 개발과 시리아에 대한 핵확산 의혹을 미국이 대신 신고하고 북한은 이를 인정한다는 내용에 잠정 합의한 사실이 전해지면서 과연 부시 대통령이 이를 최종 승인할 지 여부가 초미의 관심사로 떠올랐었다.

특히 북핵 6자회담 주무장관인 콘돌리자 라이스 미 국무장관은 11일(현지시각) 프랑크 발터 스타인마이어 독일 외무장관과 회담을 마친 뒤 가진 기자회견에서 “(미국은) 여전히 북한이 6자회담에 따른 핵신고 의무를 제대로 이행할 것인지를 판단하고 있는 과정”이라며 “우리는 아직 북한이 의무를 다했는지 여부를 판단할 수 있는 지점에 와있지 못하다”고 말해 싱가포르 회동 결과에 유보적 태도를 보이기도 했었다.

때문에 부시 행정부가 미북 싱가포르 회동 결과에 회의적이라는 관측이 나오기도 했다. 이와 함께, 미 의회가 잠정 합의안에 ‘불쾌’하다는 반응을 보인 것으로 전해지면서 부시 대통령이 싱가포르 합의를 추인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관측까지 제기됐었지만 백악관은 이 같은 관측을 일축한 셈이 됐다.

힐 차관보는 김 부상과의 회담을 마친 뒤 베이징을 거쳐 워싱턴에 도착하자마자 10일 아침 미 의회부터 찾아 ‘싱가포르 잠정 합의’ 결과를 설명했다.

힐 차관보는 비공개로 진행된 하원 외교위 브리핑이 끝난 뒤 기자들에게 “싱가포르에서 북한측과 좋은 대화를 나눴고 이 회담이 북핵 2단계를 완료하는데 큰 도움이 됐다”며 “향후 2주간 북한과 합의한 여러 요소들을 이행하기 위한 일련의 활동들이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힐은 또 “그동안 매우 어려운 문제가 있었지만 이 문제를 진척시키는 방안을 찾아낼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면서 “미국은 싱가포르에서 북한과 합의한 것들을 이행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힐 차관보의 보고를 들은 미국 하원 외교위원회 소속의원들은 ‘미국이 북한에게 너무 많은 것을 양보한 게 아니냐’는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다고 RFA가 복수의 외교소식통의 말을 인용 12일(현지시각) 전한 바 있다.

방송은 힐 국무부 차관보가 하원 외교위원회 소속의원들을 만나 ‘미국이 북한의 핵신고를 대신 신고하고, 북한을 이를 인정한다’는 합의 내용을 의원들에게 설명했지만, 참석 의원들은 못마땅하고 불쾌한 반응을 보였다고 밝혔다.

또한, 힐 차관보가 북한측과 중요 합의를 이끌어내고 귀국하면 통상 가져오던 기자회견을 열지 않고 숀 매코맥 국무부 대변인도 “지켜볼 것”이라는 반응만 내놓으면서 싱가포르 잠정 합의 결과가 표류하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제기되기도 했다.

이런 상황에서 백악관측이 14일 부시 대통령이 싱가포르 합의에 동의한 것으로 전함으로써 부시 행정부는 힐이 도출한 합의안을 승인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음이 분명해지고 있다.

이에 따라 부시 행정부는 곧 싱가포르 합의에 대한 내부 검토를 마치고, 대북 테러지원국 삭제와 적성국 교역법 적용 해제, 대규모 식량 지원 등 합의 이행 절차를 개시할 것이란 관측이 제기되고 있다.

북한측이 합의대로 핵신고 목록을 정식 제출하고 미국이 상응하는 보상조치를 취할 경우, 핵신고 난제에 걸려 수 개월간 공전돼온 북핵 2단계 이행이 완결되고 머지않아 북핵폐기와 북미관계 정상화를 골자로 한 북핵 3단계 협상에 들어갈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라이스 장관이 “북한이 제출하는 모든 핵 신고 문서와 내용이 검증돼야 하고 검증 가능한 것이어야 한다”고 말 했듯이 싱가포르 잠정합의의 최종 채택과정에서 검증에 초점을 맞출 것으로 보여 그 과정이 순탄치만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북핵 외교가에선 신고서에 포함된 내용을 검증하는 과정도 쉽지 않고, 검증에만 추가로 2~3년 이상 걸릴 수 있다는 분석을 내놓고 있는 상황이다. 특히 구체적인 검증 절차를 놓고 미국과 북한이 이견을 보일 경우 그 시간은 더욱 늘어날 가능성이 크다.

특히 북한이 플루토늄 추출량을 얼마나 성실하게 신고하느냐에 따라 미국이 북한의 핵폐기 의지를 가늠할 척도로 삼을 것으로 보인다.

미국은 특히 북한이 지난해말 1차로 밝힌 30kg에 달하는 플루토늄 신고량은 자국이 파악하고 있는 양과 차이가 많이 난다는 점을 들어 ‘보다 정확한 양’을 신고해줄 것을 북측에 촉구하고 그 결과를 지켜보고 있는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미국의 16개 정보기관의 판단을 종합해 지난해 3월 발표된 미국의 ‘국가정보평가(NIE)’는 “북한이 2006년 10월 초까지 최대 50kg까지 플루토늄을 생산해 냈을 수 있다”는 분석을 내 놓은 바 있어 북한의 신고량 이 수치에 얼마나 근접하느냐가 향후 6자회담의 관건으로 보인다.

때문에 미국이 대북 적대시정책 삭제 조치에 당장 착수할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페리노 대변인도 이날 브리핑에서도 “미국은 여전히 북한의 ‘완전하고 정확한’ 핵신고를 기다리고 있다”, “대북 테러지원국 문제는 순차적으로 이뤄지는 것으로 조만간 실현될 것임을 내비치는 것은 시기상조”라고 말해 북한의 태도를 지켜보고 움직일 것임을 시사했다.

여기에 아시아의 맹방인 일본이 자국 납치자 문제 선결을 요구하며 미국의 대북 테러지원국 삭제에 반발하고 있는 상황이고, 국내 강경파와 의회도 거부감을 보이고 있는 상황을 두루 감안, 앞으로도 이처럼 신중한 행보를 이어갈 것이란 관측이 힘을 얻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