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시-김정일, 北核 마침표 찍을 수 있나?

▲ 과거 북한을 ‘악의 축’이라 불러왔던 부시 대통령

뉴욕에서 열린 미북간 관계정상화를 위한 실무그룹 1차 회의가 큰 틀에서의 ‘북핵 폐기’와 ‘관계정상화’를 위한 로드맵을 서로 주고받으며, 적대 관계 청산을 위한 첫발을 뗐다는 평가 속에 막을 내렸다.

미국과 북한의 실무회의 결과를 두고 부시 미국 대통령과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북핵 해결’과 ‘관계정상화’를 위해 전략적 선택을 내린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미국이 ‘6자회담’ 틀 안이지만 일단 양자 테이블에 나와 연락사무소 개설 등 관계개선을 위한 구체적 조치를 제시하고, 북한이 핵폐기 초기 단계 이행에 이어 고농축우라늄(HEU) 문제 해결의 필요성을 언급한 이후 이러한 분석은 더욱 탄력을 받고 있다.

그러나 북한 김계관 부상이 이미 보유한 핵무기는 논의대상이 아니라고 한 발언은 북한이 아직 전략적 결단을 내리지 않았다는 명백한 증거이자, 미국도 선(先) 핵폐기론 후(後) 관계정상화 원칙을 강조한 것은 여전히 양국간에 넘어야 할 산이 많음을 보여주는 것이라는 주장도 만만치 않다.

◆ 美, 대북정책 대전환 예고= 콘돌리자 라이스 국무장관은 작년 12월 “부시 행정부 임기가 끝나는 2009년 1월까지 핵무기 프로그램을 완전하고 돌이킬 수 없는 방식으로 해체하는 게 내 목표”라고 말했다.

미북 베를린 회동이 끝나고 열린 6자회담에서 ‘2·13 합의’가 나왔다. 이후 북한이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무총장을 초청하고 이번주 미북 관계정상화를 위한 실무그룹 회의가 진행됐다. 일정한 로드맵에 따라 핵문제와 미북관계 개선이 진행되면서 라이스 장관의 발언이 미국의 대북정책이 대전환을 시사하는 것임이 드러났다.

6일 막을 내린 미북 실무회담 결과에 대해 미북 양국 모두 만족하는 표정이다. 특히 북한에 대해 ‘악의 축’ ‘폭정의 전초기지’ 로 규정해 부시 행정부 6년 간 철저한 ‘무시 전략’을 구사했던 것을 상기해 보면, 북한과 관계개선 테이블에 앉은 것으로도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리언 시걸 미국 사회과학연구협의회(SSRC) 동북아 안보협력 프로젝트 국장은 이와 관련 “7년 만에 재개된 북미 관계정상화 실무회의의 가장 큰 정치적 효과는 미국이 북한을 중요한 대화 ‘파트너’로 대우하고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는 점”이라고 평가했다.

◆美, 대북정책 전환 배경=지난해 11월 실시한 미 중간선거에서의 패배가 주요한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다. 공화당은 부시 행정부의 일방주의 외교노선과 이라크 전쟁 실패로 인해 상·하 양원에서 모두 민주당에 패했다. 대외관계에서 외교적 출구가 필요한 시점이었다.

여기에 부시행정부의 유일한 북핵 접근틀인 6자회담이 성과없이 지속될 경우 목소리만 높이고 북핵문제를 사실상 방치했다는 비난 여론도 부담이다.

시간이 흐를수록 명분과 실리를 모두 잃어가는 이라크 문제의 압박감도 적지 않다. 여기에 이란 핵개발 문제는 목전에 다친 위협이다. 부시 행정부로서는 중동 문제에 전력하기 위해 북한 문제에 대해서는 관리체제로 전환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는 해석도 나온다.

부시 행정부 내에서 대표적 강경파로 분류되는 럼즈펠드 전 국방장관과 존 볼턴 전 유엔 미 대사의 후퇴, 여기에 딕 체니 부통령의 영향력 감소는 협상파에 힘을 실어줬다. 이후 라이스 국무장관과 크리스토퍼 힐 미 국무부 동아태 차관보가 확실한 주도권을 잡았다.

◆ 美, 대북접근 언제까지 순항할까=힐 차관보는 지난해 11월 제5차 6자회담 2단계 회의에 앞서 김계관 부상을 베이징에서 만나 “향후 ‘18개월’ 이내에 핵폐기를 하면 경제지원은 물론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과 북미 관계정상화도 논의 할 수 있다”는 입장을 전달했다고 한다.

이번 미북 실무회담에서 관계정상화 문제와 함께 정전협정을 대체할 평화협정 구축 메커니즘을 논의키로 한 것은 한반도 문제에 새로운 큰 그림이 순차적으로 그려지고 있음을 시사한다.

힐 차관보가 18개월이라는 시한을 제시한 것은 부시 대통령의 임기가 만료되는 2009년 1월을 염두에 둔 포석이다. 2008년 중반 이후 대선국면과 임기말 레임덕 현상으로 대북협상에 힘을 싣기 쉽지 않다. 따라서 2·13합의 18개월 후인 2008년 8월까지는 북핵문제를 마무리하겠다는 전략으로 풀이된다.

이런 분위기는 지난달 미 국무부가 발표한 ‘2008 회계연도 업무계획 보고서’에서도 읽을 수 있다. 보고서는 “올해 내내 대북 협상이 지속될 경우 협상타결 목표를 2008년 초로 잡을 수 있다”며 “2008년에는 북한의 모든 중·장거리 미사일 해체를 위한 대북 미사일 협상의 개시도 목표로 잡고 있다”고 밝혔다.

임기 내 북핵 해결이라는 목표를 설정하고 있는 부시 행정부로서는 북한에 대한 테러지원국 명단 삭제나 관계정상화도 그리 어려운 과제만은 아니라는 게 외교 안보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미국과 실무회담을 마치고 평양으로 돌아가던 김계관 부상이 도쿄에서 “테러지원국 해제 문제는 이미 (미국과) 합의한 문제”라며 “두고 보면 뭔가 차차 풀릴 것”이라고 밝혔다. 또 미국이 ‘테러지원국 삭제에 대한 조건을 걸었느냐’는 물음에 “전혀 없다”고 답해 미국의 ‘이면합의’ 의혹까지 나오고 있다.

◆ 뉴욕회담에 쏟아진 핵폐기 시그널=뉴욕에서 열린 미북 실무회담을 놓고 일각에서 ‘김정일이 핵무기를 포기하는 것 아니냐’는 다소 낙관적 전망을 쏟아내고 있다.

특히 2·13 합의에 따라 60일 초기조치가 끝나는 4월 14일 이후, 2단계인 ‘불능화’ 조치 과정에서 ‘모든 핵프로그램에 대한 완전한 신고’가 우선돼야 한다. 이 과정에서 2002년 10월 제2차 북핵위기를 촉발시킨 ‘고농축우라늄’(HEU) 문제의 존재여부를 놓고 6자회담 진전의 첫 고비가 올 수 있다는 전망이 제기됐었다.

그러나 미북 1차 실무회담에서 김 부상이 먼저 2·13 합의 2단계(불능화)에서 북한이 취하게 돼 있는 ‘모든 핵프로그램 신고’ 이전에 HEU 프로그램 문제를 해명할 의사가 있음을 밝힌 것은 상당한 진전으로 평가됐다.

이와 함께 양국은 HEU 프로그램 의혹 해소를 위해 전문가 검증절차를 거치기로 합의했다. 이는 HEU 문제 해결 없이 미북 관계 진전이 불가능하다는 판단에 따라 김정일이 결단을 내렸다는 분석이다.

미북 관계 진전이 불투명할 경우 2·13 합의에서 ‘행동 對 행동’ 원칙에 따라 전개되고 있는 중유 100만t 제공도 늦어진다. 또한, 테러지원국 명단 삭제와 관계정상화까지 가기 위해선 가능한 빨리 걸림돌을 제거하려는 의지로 풀이된다.

북한은 또 미국이 북한의 ‘HEU 보유’ 근거로 보는 우라늄 농축용 원심분리기 제작에 필요한 알루미늄관 수입 문제를 해명할 수 있다는 자신감에 기인한 것으로 보인다. 즉, 원심분리기 등을 구입하긴 했지만 이를 이용한 우라늄 농축은 없었다는 논리다.

따라서 파키스탄에서 사들인 원심분리기 20개와 관련 물품에 대해서도 영변 핵시설 등과 함께 폐기할 수도 있다는 판단을 내렸을 가능성이 높다.

HEU 문제뿐만 아니라 북한은 2·13 합의에 따라 엘바라데이 IAEA 사무총장을 초청했고, 미국과 연락사무소 개설을 생략한 즉각적인 국교수립을 요구하기도 했다.

◆ 완전한 북핵폐기 달성 가능한 목표?=김계관 부상이 지난 1일 샌프란시스코에서 미국의 핵전문가 그룹을 만난 자리에서 “기왕에 생산한 무기급 플루토늄은 2·13합의 대상과는 무관하다”고 거듭 밝혔다. 이는 기존에 추출한 플루토늄(50kg)과 핵무기(7~10개)는 여전히 포기할 수 없다는 말이다.

북한은 핵보유국의 위치를 고집하며 미국과의 수교에 나설 가능성이 큰 상황이다. 미국은 수교를 위해선 비핵화가 전제 돼야 한다고 밝히고 있다. 이런 상태라면 2008년 중반이 되면 회담은 위기국면에 접어들게 된다.

그러나 임기내 성과를 바라는 부시 행정부가 ‘제3국이나 테러조직에 넘기지 않는다’는 조건부로 관계정상화에 나설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따라서 현재 부시 행정부는 완전한 북핵폐기 원칙을 견지할 것인지, 아니면 이미 보유한 핵무기를 제외한 모든 핵시설과 프로그램을 폐기하는 부분적 성과를 선택할 지 갈림길에 놓여 있다. 이제 시간은 북한편이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