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 아사 소식도 모른채 10여년간 無보수로 노역”

“북한에는 건설 장비가 없어 눈이 오나 비가 오나 모든 걸 사람의 힘으로 해야 했습니다. 특히 돌격대에서 공사를 해야 하는 곳은 주로 산악 지역이다 보니 돌격대원들이 죽거나 다치는 경우도 많았지만, 돌격대에서는 그 어떤 보상도 없이 애도문 한 장 읽어주는 게 전부였습니다.”

탈북민 안수림 씨는 14일(현지시간) 북한반인도범죄철폐국제연대(ICNK)가 제네바 유엔 인권이사회 정기회의 중 개최한 북한 강제노동 관련 행사에 참석, 본인이 약 10년간 북한의 국가건설 동원 조직인 돌격대 활동을 하며 겪은 인권 탄압 실태를 고발했다. 안 씨는 1990년부터 1998년까지 북한 사회주의노동청년동맹(사로청) 속도전청년돌격대에서 “고대 노예제와 다를 바 없는” 강제 노동에 시달렸다.

주민들을 혹독한 강제 노동 현장으로 내모는 돌격대는 10년 근무를 원칙으로 하고 있다. “임금이라고는 사로청 회비를 내고 국가에 비용을 바칠 정도로만 지급하기 때문에, 사실상 무보수 노동”이라는 게 안 씨의 설명이다. 쌀과 옥수수가 나와야 할 식사는 배급 사정이 나빠짐에 따라 한 끼에 감자 5, 6알과 소금에 절인 무나 배추가 전부였다고 안 씨는 전했다.

이처럼 돌격대가 10년 가까이 돈 한 푼 주지 않으면서도 주민들을 노동현장으로 유인할 수 있는 이유는 ‘노동당 입당’ 기회를 부여할 수 있다고 선전하기 때문. 안 씨 역시 치열한 경쟁을 뚫고 1996년 입당을 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북한에선 집안 배경이 좋고 건강한 사람들은 모두 군대나 대학에 가기 때문에, 돌격대원으로 선발돼 오는 이들은 출신성분이 좋지 않거나 신체가 건강하지 못한 경우가 많다”면서 “이들은 돌격대에서라도 열심히 하면 입당을 할 수 있다는 기대를 품고 죽기 살기로 일을 한다”고 밝혔다.

이어 안 씨는 “8년간 돌격대에서 근무를 하다가 집에 돌아와서야 부모가 아사(餓死)로 돌아가셨다는 걸 알게 됐다. 돌격대에 있는 동안 외부와의 접촉이 자유롭지 않아 부모의 사망 사실도 몰랐던 것”이라면서 “지금도 북한에는 수십만 명의 청년 돌격대원들이 오로지 당과 수령을 위해 십 년의 시간을 무보수로 바치고 있으며, 이는 고대의 노예제도와 다를 바가 없다”고 지적했다.



▲북한에는 마땅한 건설 장비가 없기 때문에 돌격대는 계절과 상관 없이 언제든 동원돼서 건설 사업을 해야만 한다. /사진=노동신문 캡처

이날 행사의 또 다른 증언자로 나선 탈북민 김민영(가명) 씨는 북한에서의 ‘인민반’ 활동 경험을 사례로 들면서, 북한 주민들이 일상에서 어떤 식으로 노동 착취를 당하고 있는지 밝혔다. 인민반은 일반 주민들, 특히 전업 주부들을 대상으로 정치사상 교육 및 감시·통제·검열을 실시하는 조직으로 알려져 있다.

김 씨에 따르면, 인민반은 인력을 필요로 하는 노동 현장이라면 주민들을 수시로 호출해 무보수 노동 착취를 일삼고 있다. 김 씨 역시 20여 년 간 농촌동원전투와 건설 지원, 대규모 행사에 동원된 것은 물론, 퇴비부터 파철, 파지, 헌옷, 고무신발 심지어 생필품까지 국가에 바쳤다고 증언했다.

그는 “모내기와 김매기, 추수 기간 때마다 농촌에 동원되기 일쑤였으며, 돌격대가 건설 사업을 진행하던 도중 건설 자재나 노동력이 부족하다고 요청하면 인민반도 동원되고는 했다”면서 “건설 사업 도중 건물이 무너진다거나 하는 어처구니없는 사고로 피해를 입어도 아무런 보상도 없었다. 피해자들 역시 항의를 해야 한다는 것조차 몰랐다”고 말했다.

김 씨는 특히 김일성과 김정일의 생일과 같은 기념일이나 김정일이 직접 마을을 방문하는 경우, 또는 김일성 사망에 따른 추모 기간에 동원됐을 때가 가장 힘들었다고 회상했다. 주민들의 생활 여건과 관계없이 모든 동원 일정이 ‘수령’의 뜻에 맞춰 짜여 있기 때문.
 
김 씨는 “1999년 김정일이 함흥에 방문한다는 소식이 돌아 함흥시 모든 주민들이 아침마다 도로를 물청소해야 했다”면서 “그러나 김정일의 현지지도가 정확히 언제 이뤄지는지는 아무도 몰라 그저 김정일이 도로를 지나갈 때까지 물청소를 계속해야만 했다”고 밝혔다.

그는 또 “1994년 7월 김일성이 사망 당시, 아기를 출산한 후 회복이 덜 된 상태였지만 일주일에 서너 번씩 추모 행사에 불려나가야 했다”면서 “한 번 추모행사를 할 때마다 한 시간 이상 김일성 동상 앞에서 큰 소리로 울어야 했다. 힘겨운 여름을 보낸 뒤에는 그 여파로 빈혈과 영양실조가 와 죽을 고비를 넘겨야 했다”고 회상했다.
 
그러면서 그는 “북한 당국은 지도자에 대한 충성심을 최고의 가치로 내세우며 주민들을 세뇌시키기 때문에, 북한 주민들은 당연히 국가를 위해 노동력과 물품을 바쳐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다”면서 “더 큰 문제는 주민들을 대상으로 한 노동착취가 일어나서는 안 된다는 것조차 주민들 스스로 인지하지 못한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외화벌이를 위해 쿠웨이트 노동 현장에 파견됐던 탈북민 김 철(가명) 씨도 이날 증언자로 나서 “소금에 절인 무와 오이 등만 먹으며 사막의 열풍 속에서 하루 14시간 씩 일해야 하는” 북한의 해외 파견 노동자들의 실태를 전했다.

김 씨는 “평균 대기온도가 40, 50도에 육박하는 중동 지역의 건설 현장에서 북한 근로자들은 그야말로 피어린 전투를 해야 한다”면서 “혹시라도 열사병에 걸리면 본인이 건강관리를 제대로 하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비판을 받으면서 하루 월급 중 10달러를 삭감한다”고 밝혔다.
 
그는 “숙소의 경우 약 10㎡ 되나마나한 방을 (북한 노동자) 7, 8명이 사용하게 되는데, 냉난방 시설은 물론 목욕 시설도 제대로 없을뿐더러 위생 상태가 최악이라 바퀴벌레나 빈대, 쥐가 침실에 득실거린다”고 말했다. 김 씨에 따르면, 이들이 세탁과 목욕을 할 기회는 월 1회 주어지는 ‘문화일’ 때뿐이다.

그는 또 “북한 당국은 해외 근로자들의 식대 비용으로 50달러를 책정하며, 그마저도 오로지 식수와 쌀을 공급하는 데서 그친다”면서 “이 밖의 식자재는 건설 자재들을 도둑질해 내다판 돈으로 사 먹어야 하지만 이마저도 걸리면 현장에서 추방을 당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김 씨는 “북한 근로자들이 묵묵히 일 하는 건 불평과 불만이 없어서가 아니라, 사랑하는 가족들이 고향에서 자신이 돈을 벌어오기를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라면서 “북한 당국이 임금의 대부분을 가져가기 때문에 근로자들이 손에 쥐는 월급은 터무니없는 액수지만, 몇 푼 안 되는 돈이라도 가족들에게 가져가기 위해서 이들은 고된 노동도 숙명으로 받아들이고 있다”고 호소했다.

이와 관련, 행사를 주관한 권은경 ICNK 사무국장은 “정치범수용소나 고문, 처형과 같은 문제 이외에도, 북한에선 일상처럼 일어나고 있는 ‘현대판 노예제도’ 즉 강제 노동 실태에 대해서도 우리는 명확히 인지해야 한다”면서 “이번 행사가 북한의 비인도적이고 비합리적인 강제 노동 실태에 대한 관심을 촉구하는 계기였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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