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 ‘北 식량위기설’ 진실은 무엇인가?

올봄 북한의 식량난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핵실험으로 유엔제재를 받고 있는데다 지난해 홍수로 수확량이 예년보다 줄었다. 이 때문에 4,5월 보릿고개가 오면 90년대 중반 대아사 시기(고난의 행군)처럼 대량 아사가 나올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더욱이 지난해 가을부터 성홍열 등 전염병이 돌고 있어 엎친데 덮친 격이라는 것.

대북지원단체 ‘좋은 벗들’은 지난해 북한의 식량 생산량 추정치를 밝히면서 올해가 가장 극심한 식량위기를 겪을 수 있는 한 해가 될 거라고 내다보았다. 비록 일부이긴 하지만 최대치 600만명 정도가 아사와 각종 질병으로 인한 사망 위험에 노출될 수 있다는 전망도 있다.

그런 한편, 90년대 극심한 식량난을 한번 경험해본 주민들은 이미 장사를 통해 생존방법을 터득했고 주민 70% 정도가 시장에 의존해서 살고 있는 상황이기 때문에 식량사정이 다소 어렵긴 하겠지만 과거와 같이 굶어죽는 일은 발생하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있다. 어느 편이 정확할지는 올봄을 지나봐야겠지만 전체적으로 예년보다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은 가능하다.

올봄 식량사정을 정확히 파악하려면 1년에 북한 주민 전체가 먹는 양과 전체 식량공급량을 정밀히 따져봐야 한다. 대략의 전망이라도 해보려면 우선 정확히 수치로 따져볼 필요가 있는 것이다.

1년치 식량 얼마 있으면 주민 안 굶어 죽나?

북한주민이 먹는 1년치 식량(곡물)은 어느 정도일까?

함경남도 함흥시 인민위원회 양정과(식량공급 부서)에 근무한 북한 주민 최영일(가명∙46세)씨는 최근 데일리NK와의 전화통화에서 이렇게 말했다.

“북한 전체 인구를 2천200만 명 정도로 봤을 때 1일 식량 소비량은 1만t 내외다. 이를 1년 365일로 환산하면 연간 360만t~400만t 정도가 소비된다.”

그는 “이는 간단한 계산으로 풀 수 있다”며 “하루 소비량은 2200만x550g=1만2천100t이고, 1년치는 1만2천100tx365일=441만6천500t이 된다” 말했다. 여기에서 550g은 북한 주민의 성인 노동자, 성인, 노약자, 어린이 등을 모두 포함하여 1일 평균치로 환산한 소비량이다(아래 도표 참조).

단, 여기에서 짚고 넘어가야 할 사항이 있다. 북한은 80년대 초반부터 ‘전시 비축미’라는 명목으로 일반 주민들의 월 배급량에서 8일 분씩을 공제하고 공급했다. 월 8일이면 12개월에 96일분의 식량을 제외하고 배급을 준 것이다. 그러니까, 항시 비축되어 있어야 하는 ‘전시 비축미’를 제외하면 1만2천100t(1일 식량)x269일(96일분 공제)=325만4천900t이 실제로 전 주민들이 1년간 소비하는 식량이다.

이같은 수치는 김일성이 생전에 언급한 “우리는 하루 평균 1만t, 즉 1년에 대략 365만t 정도가 소비된다”는 말과 거의 일치한다.

만약 북한이 90년대 중반 주민들에게 하루 평균치인 550g만 공급했어도 3백만의 아사자와 수십만의 대량 탈북사태는 없었을 것이다.

북한당국의 식량배급 기준(1992년 이전까지)
제목 없음

12세 이하 아동,

60세이상 노약자

 (여자는55세 이상)

17세 이상~60세 이하

근로자

(여자는 55세 이하)

13세~17세

(중학교 학생)

인민군, 탄광,

광산노동자

기준 정량:300g

기준 정량:700g

기준 정량:500g

기준 정량:900g

실 지급정량:250g

(전시비축미로 월 8일공제)

실 지급정량:500g

(전시비축미로 월 8일공제)

실 지급정량:400g

(전시비축미로 월 8일공제)

실 지급정량:700g

(전시비축미로 월 8일공제)

북 주민들은 92년까지 위와 같은 북한당국의 기준에 의하여 식량배급을 받았다. 92년까지 위와 같은 식량공급을 받으면 한달에 꼭 10일분의 식량이 부족했다. 하지만 당시 북한 사람들은 10일 정도는 산나물이나 집에서 가축을 길러 굶어 죽는 사람은 없었다.


한편, 북한의 식량 공급기관에서 근무하다 탈북하여 현재 남한에 정착한 탈북자 이철룡(가명∙41세)씨도 이같은 사실을 확인했다.

이씨는 “전체 북한주민의 1일 평균 수요량이 1만t 정도라는 것은 웬만한 북한사람이면 모두 알고 있는 사실”이라며 “만약 북한당국이 92년 이전의 공급량만큼만 배급을 주었다면 많은 사람들이 굳이 탈북하여 한국에 올 생각은 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생전의 김일성도 “매년 곡물 500만t만 있으면 식량배급은 물론이고 사탕, 과자까지 떨어뜨리지 않고 주민들을 먹일 수 있다”고 여러 차례 말한 바 있다. 그러니까, 1년에 대략 350만t이 있고, 이를 골고루 분배만 한다면 적어도 아사사태는 막을 수 있다는 의미다. 물론 이는 단백질 보충을 할 수 있는 고기나 반찬을 제외한 순수 곡물만 계산한 것으로, 아사를 막는 ‘생존가능 수치’라고 할 수 있다.

북, 작년 식량 도대체 얼마나 생산했나?

그러면 지난해 북한은 어느 정도 곡물을 생산했을까.

여기에는 통계가 엇갈린다. 한국농촌진흥청 추산은 448만t, 세계식량계획(WFP)은 430만t 정도로 추정하고 있다. 농촌진흥청측은 지난해 수해로 쌀 생산량이 10만t 정도 줄어든 대신 옥수수 생산량은 늘었다고 추정했다.

반면, 대북지원단체인 ‘좋은 벗들’은 280만t 정도로 추산했다. ‘좋은 벗들’은 지난해 황해남도, 평안남북도, 강원도에서 수해로 인해 알곡생산이 2005년도의 60% 수준이라고 추정했다. WFP와 ‘좋은 벗들’의 추산 통계는 무려 150만t 차이를 보이고 있다. 이처럼 큰 격차를 보이는 근본 이유는 외부 조사단이 북한에 들어가 정밀 실태조사를 벌일 수 없기 때문이다.

만약 지난해 생산량이 280만t이 사실이라면, 북한주민의 1년치 식량소비량 350만t을 기준으로 볼 때 아사자가 나올 수 있는 충분한 근거가 된다.

그러나 기본 통계가 서로 엇갈리고 있기 때문에 과거의 경험을 토대로 눈여겨 관찰해야 할 대목이 있다. 그것은 식량가격이다.

북한은 95년도에 마치 대량아사를 예고라도 하듯 강냉이와 쌀값이 폭등했다. 95년 10월 경의 식량 가격이 1년중 가장 쌀 때였던 초가을 수확기였는데도 강냉이 1kg에 15원 선(가격 현실화 이전, 현재 350원 수준)에서 갑자기 30원 이상으로 폭등했다. 어느날 두 배로 껑충 뛰어 오른 것이다.

만약 지난해 수해로 북한에 쌀이 많이 모자란다면 가을 수확기에서 4개월여 지난 지금쯤 장마당 쌀값이 많이 올라야 정상이다.

그런데 현재 장마당 쌀과 옥수수 가격이 핵실험(10월 9일) 이전과 큰 차이가 없을 정도로 비슷한 가격을 계속 유지해오고 있다. 작년 여름부터 올 1월까지 쌀1kg 1000~1200원, 강냉이1kg 300~350원의 식량가격을 꾸준히 유지하고 있다.

또 의외로 볼 수 있는 현상은 95년 ‘고난의 행군’ 시기 강냉이 가격은 쌀값의 60% 선을 유지했는데, 지금은 35% 미만이다. 이는 강냉이 값이 상대적으로 저렴하다는 이야기다.

이같은 현상은 시장에 강냉이가 많다는 증거이며, 또 북한 주민들의 식량소비 내용이 강냉이보다 쌀이 상대적으로 높다는 의미다.

국제사회와 한국정부의 식량지원이 중단된 상태에서 4개월 여의 식량가격과 쌀 대비 강냉이 가격을 봤을 때, 지난해 곡물 생산량이 적어도 350만t 이하의 위험한 상황은 아닌 것으로 추정해볼 수 있다.

그런 점에서 북한이 대략 430만t 정도의 식량을 생산했을 것으로 추산한 WFP나 한국농업진흥청의 통계가, 다소 부풀려졌을 것이라는 점을 감안해도 비교적 현실에 가까운 수치로 추정해볼 수 있다.

연간 350만톤 이상이면 아사사태는 없다

제목 없음

연도별 북한의 식량 생산량

유엔식량농업기구(FAO)와 세계식량계획(WFP)의 통계자료

1995

(WFP)

1996

(FAO)

1997

(FAO)

1998

(FAO)

1999

(FAO)

2000

(FAO)

2001

(FAO)

2002

(FAO)

2004

(FAO)

2006

(WFP)

250만톤

287만톤

283만톤

378만톤

342만톤

257만톤

365만톤

396만톤

415만톤

430만톤

3백만 명 아사. 30만 명 탈북. 국제사회의 식량지원 주민들에게 전달 안됨

남북 정상회담 후 한국정부와 외국의 지원으로 식량사정 90년대 보다 안정화

물론, 도표에 나타난 FAO와 WFP의 95~99년까지의 통계자료도 당시 북한의 실제 생산량보다 부풀려져 있는 것으로 보인다. 도표보다 실제 생산량이 적었다는 이야기다. 전 북한 노동당 황장엽 비서는 96년 서관히 농업담당 비서로부터 “(96년에)확보한 식량 생산량이 200만t도 안되어 큰일났다”는 이야기를 직접 들었다고 증언한 바 있다.

위의 도표와 북한 주민들의 증언을 참고할 때 만약 1년 식량 생산량이 300만t 이하가 되면 심각한 식량위기에 몰리게 된다. 그러나 350만t을 상회할 경우 적어도 아사사태는 발생하지 않을 것으로 분석된다.

한편 함경북도 회령에 거주하는 북한주민 H씨는 “지금은 옛날처럼 많이 먹지 않는다”며 “양은 줄이지만 조금 먹어도 칼로리 있는 것을 따진다”고 말했다.

함흥에 거주하는 또 다른 북한주민 J씨도 “북한주민들이 이제는 시장을 통해 사는 방법을 터득하여 장사를 하여 쌀밥을 먹는 사람들이 예전보다 많아졌다”며 “어쩌면 하루 열심히 장사하는 것이 쌀밥 먹으려는 전투와 비슷하다” 말했다.

H씨와 J씨는 중국과 한국에 있는 친척의 도움을 받기 위해 북-중 국경으로 왔다가 데일리NK와 통화가 연결되었다.

“이젠, 그냥 앉아서 당하진 않겠다”

현재 북한주민들의 주식은 반찬 대비 곡물이 상대적으로 많은 것이 사실이다. 이는 쌀 대비 채소나 밀가루, 육류, 생선 소비량이 훨씬 많은 우리와는 차이가 있다.

여기에 10년 넘게 지속된 만성적인 식량부족으로 영양섭취를 하지 못해 각종 질병을 이겨낼 수 있는 면역도 많이 약해진 것이 사실이다. 이는 특히 15세 이하 아동들과 60세 이상 노약자들에게서 영양실조와 질병으로 인한 사망률이 높게 나올 가능성을 보여준다.

하지만 과거보다 활성화된 시장으로 인해 주민들이 식량난을 헤쳐 나갈 수 있는 내성이 생긴 것도 사실이다. 또 시장 활동을 통한 자생력이 현저히 높아져 식량위기에 대처할 수 있는 준비가 어느 정도 갖춘 것으로 분석된다.

따라서 90년대 중반 당(黨)의 지시만 무조건 따르다가 앉아서 ‘맥없이’ 굶어죽는 일은 발생하지 않을 것이라는 게 북한 주민들과 국내 대다수 탈북자들의 증언이다.

그러나 식량부족으로 군기가 해이해진 일부 군인들의 농장식량창고 약탈과 일반 주민들의 생존을 위한 범죄는 여전히 발생할 것으로 보인다.

결국 올해 북한의 식량위기는 지난해 생산량이 350만t을 상회하고, 지금처럼 장사하는 사람들이 중국을 통해 곡물을 들여와 장마당에 판매하는 일이 계속된다면 ‘대량아사’는 지나친 우려가 아닌가 싶다.

소셜공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