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건이 터진 밤


2008년 4월, 쌀쌀한 기운이 풍기던 봄밤으로 기억된다. 아파트의 현관 앞에 매달아놓은 무거운 쇠덩이가 챙챙한 소리를 내며 울어대고 인민반장이 집집마다 돌아다니며 아이, 어른 할 것 없이 다 나오라고 소리를 질러댔다. 시계를 올려다보니 새벽 1시였다. 분명 중대한 일이 벌어진 것이라는 예감이 머리를 스쳤다.

얼마 전에도 길을 가던 도적이 군당 조직부 간부가 앞 바구니에 싣고 가던 문건가방을 낚아채 가는 사건이 있었다. 3일 전 저녁 10시경 이 ‘문건도난소동’으로 인해 온 시내가 불려나갔다. 그 날과 비슷한 일이 일어난 것 같았다. 이상하게도 그 해에는 정치적인 도난사건이 자주 일어나 밤중에 불려나가는 일이 많았다.

남편과 나는 곯아떨어진 두 아이를 급히 깨워 가지고 밖에 나왔다. 밖에 나와 보니 온 마을 안이 전지불빛으로 번쩍거리고 종소리로 꽉 차 있었다. 동네에는 우리 인민반만 모여선 것이 아니라 한 개 지구가 모여섰고, 옆 동네에서 다른 지구들도 인원을 체크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3~5개 인민반이 합쳐서 한 지구를 이루는데, 우리는 5개 인민반이 한 지구였다. 어둠속에서 보니 모두 긴장된 시선이었다. 지구주민들이 앞에 인민반장들과 지구세포비서, 담당 보위원, 담당 보안원이 서 있었고, 그 옆에 별을 단 군인도 있었다.

인민반장들을 통해 모든 세대, 모든 주민들이 다 나왔다고 보고되자 담당보위원이 나와서 말을 시작했다. 사연은 이랬다. 함경북도 00에서 복무하는 21살의 기통수(문서연락병)가 문건을 메고 차도 없이 300리(약 118km)길을 걸어서 달려오다가 1시간 전 통근차를 탔는데 거기서 깜빡 잠이 든 사이 다리 사이에 껴안고 있던 총을 땅에 떨어뜨렸고, 누가 가져갔는지 사라졌다는 것이었다.

종점에서 종점까지는 불과 1시간. 전등 불빛이 없는 기차 안에서 밤 11시부터 12시 사이에 일어난 일이었다. 기차가 역에 멈춘 이후 그 옆에 앉아있던 어르신이 곤하게 잠든 병사를 흔들어 열차가 다 왔다고 깨워준 다음에야 기통수는 부스스 눈을 비비며 일어났고 총이 없어진 것을 알아차렸다. 허겁지겁 주위를 살피면서 총을 찾기 시작했다. 하지만 총은 이미 사라진 뒤였다. 바빠난(형편이 딱하게 되어 몹시 급해진) 기통수는 울면서 역사 안으로 뛰어들었고 역 사람들이 모두 떨쳐나서 차 방통(화물칸)을 한 개 씩 다 뒤졌지만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역 일군(꾼)들이 군 보위부에 즉시 연락을 했고 연이어 주변 부대들에도 연락이 닿았다. 모두 비상소집하고, 시내를 포위한 다음 주민들을 불러내기 시작한 것이다. 모여선 주민들은 총을 잃어버린 안타까움보다 총을 잃어버린 군인의 운명이 어떻게 될 것이라는 예감 때문에 모두 소름이 끼치도록 가슴을 지그시 눌렀다. 병사는 두말할 것이 없이 무조건 관리소(정치범수용소) 행이었다.

우리는 보위원이 가져온 주민명단에 있는 가족들의 이름에 차례로 서명하고 사인했다. 사인의 내용은 총을 잊어버린 군대가 탄 막차에 함께 탔거나, 타지 않았다는 것, 또한 그 밤에 집에 손님이 오지 않았다는 등, 총을 훔치지 않았다는 것을 증명하는 책임감이 풍부한 내용으로 자기들의 이름 옆에 사인을 박아 넣었다.

AK-47 Assault Rifle // Avtomat Kalashnikova 1947

사진 출처 : brian.ch / CC BY 2.0

그 밤, 주변에는 그 열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온 사람들도 있었고 열차가 서는 역 옆에 위치한 공장에서 교대근무를 마치고 돌아온 사람들도 있었다. 보위원들은 그들을 따로 모여 놓고 말을 주고받더니 보위부로 데리고 갔다.이렇게 봄밤의 총기 도난 사건이 시작됐다.

총을 훔친 자는 누구인가


날이 푸름푸름 밝아오자 또 종이 울렸다. 간밤에 불려 나왔던 주민들이 아침에 또 종이 울리자 피곤한 모습으로 나와 섰다. 이 정도면 얼마나 볶아댈지 알 수 없다고 모두 눈빛을 찡그리고 섰다. 보위원은 밤 사이에 어디서 증언이 들어왔는지 총을 훔친 사나이가 우리 동네를 향해 올라오는 골목길로 들어섰다고 말했다. 집으로 들어오는 골목길은 아파트에 둘러싸여 있고 그 뒤로 멀지 않게 산이 보인다. 분명 그 뒷산으로 사라진 것으로 판단하는 것 같았다.

시내에서 이상한 사건들만 나오면 가슴이 두근거린다. 나와 아무 상관이 없고 연관될 일도 없는데 우리 집 앞으로 사라졌다니 다소 걱정스러웠다. 며칠 동안 숙박검열이라고 하면서 매일같이 집 수색을 받았다. 첫날 하루는 모든 집을 다 검열했고, 두 번 세 번을 할 때는 선택검열을 한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1층에 있는 우리 집을 검열하고 복도를 뚜벅거리는 징 박은 소리가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을 밟지 않고 밖으로 나가버렸다. 아침에 일어나서 옆집에 사는 친구에게 물어보니 자기네 집은 오지 않았다고 한다. 탈북자 가족이란 이유로 내가 추적의 대상은 아닌지 하고 가슴이 활랑(두근)거렸다.

온 시내가 시끌벅적거리기 시작했다. 시내에서 복무하는 사단과 여단군인들은 물론 공장에 다니는 사람들도 일시 공장을 세우고 노농적위대복장으로 갈아입었다. 아이들도 수업 후에 붉은 청년근위대배지를 달고 총을 찾는 수색에 합세했다. 수색대는 여러 곳으로 나뉘어졌는데 한 조는 집 근처를, 또 한 조는 논밭 같은 곳으로, 다른 한 조는 산을 송두리째 수색하기 시작했다. 산에는 사람들이 개미떼같이 모여서서 놓치는 땅이 있을 새라 참빗처럼 훑기 시작했다.

낮에 직장에서 돌아오는 길에 보니 아파트의 뒤에서 우물거리는 누런 군복들이 보였다. 병사들이 가정집들의 뒤에 있는 밭뙈기들에서도 총을 찾고 있었다. 집에 들어가기 전에 뒤울안을 살펴보니 집과 정면으로 보이는 10평정도 되는 터 밭이 몽땅 뒤적거려져 있었다. 씨앗을 심으려고 이미 삽으로 밭갈이를 해놓았지만 연약한 여자의 힘으로 깊게 파지 못했는데 밭이 제 모양을 버리고 땅 두더지가 파놓은 것처럼 마구 뒤적거려져 있었다.

다른 집의 밭들보다 우리 집 밭이 더 일그러져 있었다. 행여나 총을 묻은 흔적이라도 있나 해서 수색대가 지나간 흔적인 것 같았다. 탈북자 가족이라는 가시가 내 가슴 한 구석을 또 찌르기 시작했다. 뒤를 돌아보니 쇠로 잠가 놓은 김치 창고문도 열려있었다. 사람이 없으니 도끼 같은 걸로 그 무거운 열쇠를 깠던 것 같았다. 요즘 세월은 국가일이라면 주인들에게 물어보지도 않고 독단적으로 저질러댄다. 유독 우리 집 창고만 그렇게 되었다. 화가 났지만 이럴 때 한마디 잘못 비쳐서 더 큰 화를 당할 수도 있다는 생각에 꾹 눌러버렸다.

North Korea 035

사진 출처 : Stefan Krasowski / CC BY 2.0

시내에서는 총을 훔친 자와 모색(용모)이 비슷하다는 청년들은 다 보위부에 끌려가서 며칠 밤을 새우면서 신분 확인을 당했고 집으로 돌아와서도 몇 달간 계속 불려다니며 고생했다. 내가 아는 한 할머니도 아들이 불려간 뒤 속상해서 어쩔 줄 몰라 했다. 그날 그 아들이 집에 들어오지 않고 다른 친구네 집에서 술을 마시고 잔 것이 친구의 증언으로 확인이 됐는데도 아들이 입은 옷이 총을 훔친 자가 입은 옷과 유사하다면서 보위부가 계속 따라다니며 괴롭혔다. 온 시내가 불안에 떨며 잠들지 못했고 가는 곳마다 총, 총 하면서 총에 대한 말만 떠돌았다.

궁지에 몰린 보위부의 ‘희생양’ 만들기 


시간의 흐름은 빠르고 총에 대한 소식은 점점 더 깊숙이 사라져갔다. 정부는 사건에 대한 진척이 없다고 국가보위부(성)에 강한 질책을 하기 시작했다. 총이 없어진 것은 1호사업과 관련되는 중대한 사건이었다. 장군님을 모시는 사업에 구멍이 뚫렸다고 직장에 나가면 직장보위지도원, 보안원, 간부들이 고아대고 집에 들어오면 동네에서 간부들이 고아댄다. 정부는 어떤 일이 있어도 총을 무조건 찾아내라고 요구했다.

국가보위부와 보안서, 군대 보위부가 손을 잡고 진행했지만 어떻게 된 판인지 총은 나타나지 않았다. 악이 난 국가보위부는 함경북도 보위부에 사건을 떠맡기면서 만일 총이 나타나지 않을 경우 너희들은 다 모가지라고 으름장을 놓았다. 바빠난 것은 도 보위부였다. 도 보위부는 이 상황을 어떻게 하든 면해야 했다. 총 사건이 해명되지 못하면 나라에 체면도 서지 않고 강직될 수도 있었다. 누군가는 꼭 책임을 져야 벗어날 수 있었다.

보위부는 내부 사업에 들어갔다. 성분을 따지면서 그럴싸하게 짚이는 사람들의 뒤를 캐기 시작했고, 특히 중국과 연계가 있고 탈북한 가족이나 탈북했다가 북송되어 온 사람들에게 눈길을 돌리기 시작했다. 죄 없는 사람도 마음이 저절로 싱숭생숭해지게 만들었다.

그런 가운데 어느 날 보위원이 찾아왔다. “아무개 엄마, 부탁 좀 하기요. 저 앞집에 있는 김 아줌마 있지 않소? 그 말썽 많은 아줌마에게 접근해서 그 집 사람들이 요새 뭐하는지, 그리고 총과는 연관이 없는지… 좀 알아봐 주오.”

나는 정신이 버쩍 들어서 화를 냈다. “나는 직장에 다니는 사람이고 그 사람이 우리 인민반도 아닌데 감시를 어떻게 합니까? 나하고 그 아줌마 하고 이미 전에 상종한 적도 없고 나 진짜 그런 짓을 못합니다. 그런 일은 그 동네에 사는 사람들에게 부탁해야죠…”하고 딱 잡아맸다.

그리고 몇 달 후, 나는 그 집의 사돈이 되는 여자에게서 끔찍한 소리를 들었다. 물론 사람들 사이에서 쉬쉬 떠다니는 이야기를 듣긴 했지만 흘러 다니는 이야기는 진실이 못 된다고 그냥 흘려버렸는데 정작 그 이야기를 듣고 보니 정신이 나갈 것 같았다.

보위원이 감시를 부탁하던 그들 부부가 총사건의 주범이 되어 보위부에 강제연행 되어갔다는 것이었다. 거기에다가 며칠 후 그 부부의 두 아들까지도 공범으로 잡아들였다고 한다. 총 사건이 일어난 지 6개월 후였다. 나는 머리가 핑 돌 지경이 되었다. 여인의 남편은 성이 흔치 않은 성씨여서 모두 성씨를 따라서 손 씨라고 불렀다. 손 씨네 일가는 총 사건이 있은 날 그들 가족이 모두 집에 있었다는 동네주민들의 보증까지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도 잡아들였다고 한다. 그것은 확실한 말인 것 같았다.

그러지 않다면 사건이 일어난 날에 당장 잡아들였을 것인데 이것은 또 다른 무엇을 생각하게 했다. 사람들 사이에서는 몰래 많은 말들이 떠돌았다. 남편이 보위부에서 일하는 한 친구는 그들은 이래도 저래도 조용히 사라져야 하는 대상이라고 몰래 귀띔해 주었다. 내가 왜 그래야 하는 가고 물어보니 거기에 대한 말은 아끼며 말해주지 않았다. 그때, 내 머리에 스치는 것은 그들은 한번 탈북해서 잡혀온 사람들이라는 것, 다시 탈북해서 남조선(한국)으로 갈까봐 미리 조용히 없애려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2부에 계속)

* 편집자주 : 북한 보안서(경찰서) 등지에는 ‘필사원’이 있다. 사건을 기록하면서 데이터베이스화하는 업무를 담당하는 것이다. 때문에 이들은 현지에서 발생한 사건사고를 당국이 어떻게 처리했는지에 대해 속속들이 알고 있는 경우가 많다. 데일리NK는 필사원 업무를 담당했던 한 탈북민의 증언을 통해 북한 체제의 속성을 파헤치고자 한다.

다만 본지는 일반적 기사체를 고집하기 보다는 소설적 기법을 사용해서 독자들이 사건의 흐름 및 북한 주민들의 심경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주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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