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기문 전(前) 유엔 사무총장이 귀국 후 첫 주말(15일) 평택 2함대 사령부를 방문해 천안함 선체 앞에서 참배와 묵념을 하는 등 ‘안보 행보’에 주력한 가운데, 대권 주자로서 북한 문제 및 외교·안보 사안에 대해 어떤 구상을 펼쳐나갈지 주목된다.
일단 유엔 사무총장을 역임할 동안 유엔이 북핵이나 북한인권 문제에 강경한 입장을 고수한 만큼, 대권 주자로서도 대북 문제 및 외교·안보 사안에 국제사회와의 공조에 발맞추는 방향으로 접근할 것이란 관측이 많다. 이와 관련 반 전 총장은 유엔 사무총장 임기 내내 북핵이나 북한인권 문제에 대해선 원칙적으로 접근하면서 북한에 도발 자제 및 인권 개선을 촉구하는 메시지를 지속 보내왔다.
반면 남북관계에 있어선 대화와 교류 필요성을 제기하는 등의 움직임을 보일 수 있다는 진단도 나온다. 노무현 정부 당시 외교통상부 장관으로 역임했던 경험을 살려 이명박-박근혜 정부서 급격히 경색된 남북관계를 보다 완화시키려는 시도를 할 수 있다는 것. 실제 반 총장은 유엔 사무총장 임기 중 남북 간 대화 재개 및 긴장완화를 위해 언제든 방북할 수 있다는 뜻을 피력해 왔고, 2015년 5월에는 북한과 개성공단 방문 계획까지 조율했지만 북한 측 통보로 취소된 바 있다.
한 여권 관계자는 16일 데일리NK에 “북핵이나 북한인권 문제에 있어선 국내 보수 입장과 비슷한 측면이 있지만, 북한과의 대화가 필요하다든가 인적 교류를 재개해야 한다는 등의 주장에서는 진보 진영과 의견 일치를 볼 만한 부분도 많다”면서 “반 전 총장이 ‘정치 통합’을 화두로 던지고 있는 만큼 대북정책에 있어서도 보수냐 진보냐 하는 기존 접근하진 않으려 할 것 같다. 양 진영을 적절히 포괄한 실용주의적 입장을 택하지 않을까 싶다”고 내다봤다.
남광규 고려대 교수도 “유엔 사무총장 임기 당시 방북 의사를 내비친다거나 대화를 통한 북한 문제 해결도 주문했던 만큼 압박을 하더라도 필요시 대화에도 나서겠다는 행보를 보이지 않겠느냐”면서 “구체적인 (대북) 구상이야 더 지켜봐야겠지만, 유엔 사무총장으로 일하면서 북한 및 한반도 문제를 바깥에서 볼 줄 아는 시각도 갖췄을 것이라 본다”고 평가했다.
이처럼 반 전 총장의 대북인식 및 외교·안보 성향에 관해 여러 관측이 제기되는 가운데, 일단 반 전 총장은 대권 행보 초반 ‘안보 대통령’ 이미지를 굳히는 데 주력하려는 모양새다.
반 전 총장은 15일 천안함 선체를 둘러본 후 “안보에는 ‘두 번 다시’가 없다”면서 “천안함 피격 사건 같은 일이 나지 않으려면 늘 우리가 안보태세를 공고히 하고, 우리 국민 모두 하나가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에 대해서도 “한반도 현실이 거의 준전시 상태 같은 상황이기 때문에 정부가 그런 조치를 취한 것은 마땅하다”고 밝혔다.
지난 12일 귀국 비행기에서 기자들과 가진 인터뷰 중에도 반 전 총장은 안보의 중요성을 거듭 피력한 바 있다. 그는 “안보는 그야말로 튼튼하게 해놔야 한다. 그런 면에서 (한미가) 사드 배치에 합의한 것이고, 나는 지지한다”면서 “한미동맹이 가장 중요한 방위 축인데 한미 간 합의된 것을 문제가 있다고 다시 (논의)한다는 것은 바람직스럽지 않다”고 말했다.
당시 그는 북한 문제에 대해서도 “북한이 지난해 20번 미사일을 시험 발사했는데 2번 성공하고 18번 실패했다. 그러나 북한이 실패했다고 해서 안심하면 절대 안 된다”면서 “(북한은) 실패할 때마다 기술을 축적하고 있고, 심지어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쏘겠다고 얘기하고 있다. 경제정책은 수정도 할 수 있지만 안보는 한 번 당하면 두 번째가 안 된다”고 피력했다.
또 북한 문제를 둘러싼 외교 관계에 대해서도 “북한과의 관계도 안보리 결의 등을 통해 북한에 계속 압력을 가하고 국제사회로 나오게 하는 방법을 검토해야 한다”면서 사드에 대한 중국의 몽니를 겨냥, “사드가 필요 없는 상황을 만들었다면 제일 좋은 것이다. 중국도 북한에 대해 좀 더 역할을 해야 하는 것 아닌가”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한편 북한은 지난해 12월 반 전 총장의 대권 도전이 가시화될 때부터 각종 비방 공세를 펼쳐오고 있다. 북한으로서는 반 전 총장이 유엔 안보리 대북제재 및 북한인권결의 채택 등에 책임이 있다고 보는 데다, 범보수 후보로 꼽히는 그가 차기 대통령으로 선출될 시 현 정권이 연장된다고 판단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일례로 북한 선전매체 메아리는 13일 ‘반기문은 미국의 선거전략안에 따라 움직이고 있다’는 제목의 글에서 “최근 해외소식통에 의하면 미국이 반기문을 남조선(한국) 대통령으로 당선시키기 위한 비밀작전을 추진하고 있다는 극비문서가 발견됐다고 한다”고 주장했다. 선전매체 우리민족끼리도 같은 날 “무능하기로 소문난 기름장어가 대통령 벙거지를 뒤집어쓰겠다고 나선 것도 뻔뻔하다”고 비난했다.
이와 관련 통일부 당국자는 “(북한이) 우리 선거에 개입하려는 노골적인 시도”라면서 “대선을 앞두고 자기들의 기호에 맞는 분위기를 조성하는 차원에서 마음에 안 드는 사람을 비난하려는 것”이라고 풀이했다.
전문가들은 북한이 각종 선전매체를 동원해 대선개입을 시도하는 게 실제 대선 분위기에 큰 영향을 주진 않는다고 진단하면서도 정부와 유권자들의 합리적인 대응을 주문했다. 유동열 자유민주연구원장은 “정부는 북한이 선거 분위기를 왜곡시키지 못하게끔 올바른 선거관리에 나서야 한다”면서 “정부 대응과 동시에 유권자들도 각종 선동에 휩쓸리지 않고 대한민국 국익을 위해 일할 수 있는 후보를 뽑아야 할 것”이라고 제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