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훈의 가치, 이념 대결로 가버리면 안돼”








▲오일환 보훈교육연구원 원장./황창현 인턴기자

지난해 11월 23일, 북한은 연평도에 포탄 170여 발을 퍼부었다. 북한의 무자비한 포격으로 군인 2명과 민간인 2명이 사망했고, 62명의 부상자가 발생했다. 지난해 3월엔 천안함 폭침으로 46명의 꽃다운 장병들이 억울한 죽음을 당했다.


두 차례의 끔찍한 도발은 우리의 안보 현실을 직시하게 했고, 전사자에 대한 국가적 차원의 예우가 지켜질 때 비로소 안보를 굳건히 할 수 있음을 깨닫게 했다. 데일리NK가 지난 16일 만난 오일환 보훈교육연구원 원장도 이 같은 점을 강조했다.


오일환 원장은 “보훈의 가치는 희생의 가치”라며 “희생의 가치가 시민사회와 국민을 통합하는 기능을 하기 때문에 아주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사회는) 보훈의 가치가 너무 이념의 대결로 가버린다”고 지적했다.


오 원장은 미국은 대통령이 직접 전사자를 예우하고 있다는 점을 상기하면서 “보훈을 국민 통합의 가치로 이끌어내야 하는 데 노력이 부족하다”며 “국가가 나서서 더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천안함·연평도 도발이 북한의 소행임이 명백한데도 이념의 대결로 치달아 심각한 내부 분열을 야기시켰던 점을 지적했다. 


오 원장은 이러한 원인에 대해 언론에 일차적 책임이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언론이 정확한 기사를 싣기보다도 자신의 의지적인 부분이 강하게 투영되면서 왜곡 현상이 발생하기 때문”이라고 풀이했다. 


오 원장은 안보적 가치는 국가가 가진 물리력과 보훈 선양이 합해졌을 때 발휘되는 것이라며 보훈은 바로 정신력으로 정신력은 역사교육을 통해 길러질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제2의 연평도 도발은 언제든지 일어날 수 있다”며 “확고한 준비태세만이 북한의 도발을 막을 수 있다”고 말했다. 또한 무력 도발을 하면 더 큰 피해가 간다는 인식을 심어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역설했다.


오 원장은 젊은 세대가 지난해 연평도 포격 사건 이후 안보에 대한 중요성을 재인식하게 됐지만 여전히 안보의 개념에 대해 식상해 하고 있다는 점도 지적했다. 그는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역사적 진실에 입각한 올바른 콘텐츠를 만들어야 한다”고 제시했다. 


[다음은 오일환 원장과의 인터뷰 전문]


-보훈의 중요성에 대해서 말한다면.


“개인적으로 보훈의 가치가 안보의 가치보다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보훈의 가치는 희생의 가치이다. 미국의 경우는 보훈을 대단히 중요시여기고 있다. 아프가니스탄 전사자들이나 경계 임무지 순직자들에 대해 국가 원수가 새벽이라도 직접 나서서 거수경례를 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이것은 희생의 가치가 시민사회와 국민을 통합하는 기능을 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천안함·연평도 사건에서 볼 수 있듯이 보훈의 가치가 너무 이념의 대결로 가버렸다.”


-천안함·연평도 사건이 이념 대결로 귀결된 이유는.


“언론이 정확한 기사를 싣기보다도 자신의 의지적인 부분이 강하게 투영됨으로써 왜곡 현상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이념의 굴레가 상식을 상식으로 (올바르게) 보지 못하게 한다. 언론은 60~70년대 수준에 머물러 미숙한 모습으로 우리 사회에 남아 있다. 언론은 독서와 공부를 통해 시대정신을 밝혀내는 작업을 해야 한다. 전체주의 사회에나 있을 법한 현상이 우리 사회에서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언론이 너무 상업적이고 부수를 늘리려는 데만 치중하는 모습을 보이고 금전적인 부분에 너무 집착하다보니, 이런 물질주의적인 풍조가 나라를 더욱 어렵게 하고 있어 이런 현상이 발생하고 있다고 본다.”


-천안함·연평도 도발을 두고 의견이 분분했다. 


“우리 시민사회가 조금 성숙하다면 이런 현상들이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또한 지도층과 부유한 사람들이 약자를 배려하고 스스로 모범을 보여야 하는데 그러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게 바로 도덕성이고 국민들의 불만을 희석시켜주는 요소인 것이다. 이는 국가를 관리 하는 정책결정자들이 더 신경 써야 할 부분이다. 천안함이 물속에 잠겨있는 상태에서 우리가 소설을 얼마나 썼나. 사실에 기초하지 않고 짐작해서 기사를 썼다. 이러한 것을 보면 지식사회도 일말의 책임을 져야 한다.”


-안보교육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측면도 있지 않나.


“그렇다. 미국의 경우는 정치학이 필수과목으로 선정되어 있다. 다민족, 다문화 국가에서 국가의 정체성을 바로 잡아주는 교과 과정이 있다는 것이다. 200년의 민주주의 역사를 가진 미국은 역사 교육을 철저하게 하고 있지 않은가. 우리나라는 반만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음에도 역사에 대해서 그렇게 중요시 여기지 않는 것 같다.”


-역사교육이 중요하다는 얘기인가.


“그렇다. 사실 보훈도 역사교육의 일부이다. 6·25 전쟁, 무장공비 대항전, 월남전, 서해교전, 천안함, 연평도 포격 사건 희생자들, 군 안에서 훈련받거나 특수임무를 수행하다가 순직한 이들에 대해서 보상을 해주는 보훈은, 국가의 정체성을 확보할 수 있는 가치이다. 하지만 과연 보훈의 영역이 국가적으로 보존이 되고 있나. 미국의 경우 ‘위로의 밤’ 같은 행사를 통해 전사자들을 기리고, 국가 원수들까지 이들에 대한 최고 예우를 해주고 있다. 안보적 가치는 국가가 가진 물리력, 보훈 선양이 합해졌을 때 발휘가 되는 것이다. 바로 정신력은 역사교육을 통해 길러질 수 있다.”


-제2의 연평도 도발 가능성은? 


“충분히 있다. 북한은 중요한 행사를 앞두고 있을 때 북한은 내부 단속을 강화할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북한은 남북경색을 극대화 시키고 위기감을 고조시키려 할 것이다. 위기관리와 관련하여 NLL 문제를 야기시킴으로써 욕구를 채우려 할 것이다. 남남갈등 현상을 역으로 이용하여 반사적 효과를 누리려는 생각 또한 있다. 북한은 ‘보라 남쪽에서도 이렇게 지지하고 있지 않는가’라며 반사효과를 노릴 것이다.”


-우리의 대응은? 


“우리는 확고한 준비 태세를 미리 보여줘야 한다. 네가(북한이) 때렸을 때 더 큰 위기가 찾아 올 것이라는 점을 확실히 보여줘야 한다. 특히 연평도, 백령도에 감히 접근하지 못할 정도로 요새화시켜야 한다. 모든 위기에 대해 사전에 대비하고, 자신에게 피해를 주면, 돌아가는 피해가 더 클 것이라는 의식을 심어주어야 한다. 결론적으로, 사전에 불행한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예방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본다.”


-우리가 강하다는 것을 보여줘야 하는데 실제로 이루어진 적은 없지 않은가. 


“우선적으로 시민사회, 정치지도자들이 안보가 얼마나 중요한지 각성해야 한다. 한반도는 4대 강국의 힘이 몰려 있다. 안보에 위기가 닥치면 경제적 타격 또한 심하다는 사실을 인지해야 한다. 즉, 안보가 무너지면 실제적인 것이 무너진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안보만큼은 여·야가 한목소리를 내야 한다. 서로의 견해가 달라 국가가 무너진 후 그때 가서 정치, 경제가 다 무슨 소용이 있나. 안보는 상위개념을 통해서 체득이 되어있어야 한다.”


-국민들의 안보 불감증에 대한 극복방안이 있다면.


“안보의 가치는 굉장히 중요하다. 하지만 우리가 ‘안보, 안보’ 하면 젊은이들은 안보의 개념을 너무 식상해 하는 경향이 있다. 지금껏 담론 전쟁은 끊임없이 이어져 왔다. 최근 북한은 SNS를 통해 대남선전선동의 도구로 활용하고 있듯이 북한의 공격은 더욱 격화되어 가고 있다. 이런식의 북한의 행동이 우리 사회를 어지럽히고 있다. 인터넷을 타고 흘러 들어오는 공격을 (방송통신심의위원회가 이러한 글들을 삭제하는 등의) 국가적 차원의 대책이 필요하겠지만 이를 일일이 방지하기는 힘들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우리의 올바른 가치, 선한 가치를 확대하고 재생산시켜야 한다. 젊은 세대에 영향을 줄 수 있도록 올바른 콘텐츠를 역사적 진실에 입각해 만들어내는 것이 중요하다.”


-중·고등학교 역사교육의 편향성도 문제로 제기되는데.  


“그렇다. 역사교육 문제가 심각하다. 분단국가인 상황에서 역사는 우리가 살아온 것을 의미한다. 역사를 총체적으로, 보편적으로 바라볼 필요가 있다. 좋은 역사만 얘기해서는 안 된다. 고통과 역경을 이겨나가는 과정 속에서 오늘의 우리가 있기 때문에 어두웠던 과거까지 모두 총체적으로 볼 필요가 있다. 우리사회에서 가장 부족한 부분이 바로 역사적인 부분이다. 초·중·고 역사교육 형태는 대부분 사건 위주 형식으로 되어 있다. 어린 시절 역사교육은 인물을 중심으로 교육되어져야 한다. 우리는 나라사랑 정신이 곧 우리나라의 정체성임을 자각해야 하며, 역사를 이념적으로 바라보기 보다는 시대의 표상이 될 만한 인물중심의 역사교육이 이루어져야 한다. 거기서 나오는 가치를 읽어내야 한다. 물고 뜯는 식의 역사 교육은 안 된다. 우리 역사의 어두운 부분, 밝은 부분을 동시에 이끌어내야 한다. 이것이 우리의 정체성이 되어야 한다.”


-미국에 비해 우리나라 보훈정책은 미비하다는 지적이 있다.


“예전에는 그랬지만 지금은 많이 달라졌다. 한때 물질적인 여유가 없을 때는 국가차원에서 도와주지 못했고, 국가가 책임을 지지 않았다. 지금껏 (우리나라) 역량의 문제로 인해 독립 운동 유족들, 손자들까지만 보상 혜택을 받는 등 대상인원이 많이 줄었지만 현재는 많이 개선되고 있고 앞으로도 부족한 부분들을 채워나가고 있다.”


-국가 차원의 예우도 부족한 것은 아닌가. 


“보훈의 역사는 펠로폰네소스 전쟁으로 올라간다. 그 당시 페리클레스는 영웅, 아테네 지도자였다. BC 431, 아테네 페스트 병이 창궐했을 때 전사 1/4이 병으로 죽었다. 그는 잠시 휴전기간 동안 전사들 앞에서 ‘우리 아테네의 민주주의는 최고다. 우리가 민주정치를 질서만 조화롭게 지켜나가면 아테네는 멸망하지 않는다. 그러니 힘내고 싸워달라’는 유명한 연설을 했다. 그는 또 ‘만약 아테네를 지키다가 생명을 잃는다면 그 시신은 아테네에서 가장 아름다운 경관이 보이는 곳에 묻어줄 것이고 당신들의 자녀를 끝까지 책임져 줄 것이다’라고 약속했다. 이렇듯 국가가 책임져주는 보훈의 개념은 여기서 생겨났다. 우리나라는 가장 보훈대상자가 많은 나라임에도 통합의 가치로 이끌어내는 부분이 부족하다. 국가가 나서서 더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보훈과 국가안보는 떼래야 뗄 수 없는 관계라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


“안보는 물리력, 정신력 두 가지를 의미한다. 그중 보훈은 정신력과 깊은 관계가 있다. 대한민국의 정체성에 대해 인식할 수 있게 하는 교육이 매우 중요하다. 본인과 같은 기성세대가 앞으로 환골탈태하여 교육과 개발을 통해 눈에 보이지 않는 안보의 개념이 젊은 세대들에게 부지불식간에 들어갈 수 있도록 힘써야 한다. 요즘세대는 동영상 세대라고 할 수 있다. 이들에게 맞는 교육을 통해 이들이 대한민국에 대한 자긍심과 자부심 가지고 자신의 목숨을 바칠 만한 나라임을 자각하게 만들어야 한다.”


-북한인권 문제에 대한 무관심은 왜 그런가. 


“안타까운 문제다. 통일의 목적도 고통받고 있는 북한 주민들을 구원하기 위함이다. 이들이 열악한 현실의 속박 가운데서 벗어날 수 있고, 자유를 올바르게 바라보고 나올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북한정권은 자신의 체제유지가 절대 절명의 가치이고 가장 급선무라고 보고 있다. 이로 인해 북한 주민들에 대한 고통의 연장이 불가피하다. 아이러니한 것은, 우리나라 독재정권에 반대했던 사람들이 정작 북한 인권에 대해 얘기하면 냉담한 반응을 보인다는 사실이다. 북한을 자극한다는 우려와 두려움 때문이다. 진정한 진보주의자, 보수주의자라면 인권문제에 대한 생각이 서로 같아야 한다. 한쪽은 너무 자극하고 있고 한쪽은 너무 옹호하고 있다. 넌센스다.”


-통일을 위해 지식사회가 해야할 일이 있다면. 


“북한을 지지 찬양하는 ‘이상한 진보’와 북한에 대한 강경한 입장을 보이는 보수, 양극의 모습만을 실어 나르는 언론의 잘못된 역할은 우리로 하여금 이분법적 사고를 갖게 만든다. 우리가 통일로 나아가는 과정에서 지식사회가 걸림돌이 되는 현상이 있지 않는가. 국가의 장래를 위해서는 우리 스스로가 각성하여 통합의 가치를 만들어내야 한다. 정치는 대화·타협·통합의 기능을 해야하는 것이다. 정치가 구태의연한 모습을 계속 보인다면 사회가 혼란스러워질 것이고, 스스로 책임지고 떠맡지 않는다면 통일은 우리로부터 점점 더 멀어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