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 글 보기 : [보위원의 속심 2부] 6개월 전 그날에 있었던 일
보위원의 속심
소문은 보위원의 귀에까지 들어갔다. 이야기가 이쯤 되고 보니 순옥과 남편은 제정신이 없었다. 죄가 명백해졌다. 더욱이 이제 당금 눈앞에 최고인민회의 선거까지 앞둔 시기인데 정치적 배경도 있는 시기에 잘못 걸려들면 큰일이었다.
이는 순옥과 남편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고 홍주에게도 위험한 일이었다. 죄과가 명백해지면 점쟁이는 3년 이하의 노동교화형에 처하게 되고 무당을 찾아다니며 점을 본 주민들에게는 노동단련대 6개월형이 집행되었다.
보위원은 그들의 얼굴에서 일어나는 반응에 꽤 만족스러운 눈빛을 띠더니 다시 엄해지기 시작했다.
“최근에 당을 믿지 않고 무당을 찾아다니는 행위들만 늘어나 정부가 얼마나 골머리를 앓고 있는지 아오. 이번에 시범겜(본보기)에 걸려들었소. 동무는 뭐요? 작업반에서 세포비서도 하고 직장에서는 강연강사이기도 한데 이런데 걸려들다니… 참 한심하오. 그리고 순옥 아줌마는 이게 그렇게 좋은 일이라고 동네방네 들고 다니며 소문을 내오? 모두 제정신이 있소? 없소?”
보위원은 으름장을 놓았다.
그러지 않아도 속이 새까맣게 타는데 보위원의 한마디는 그들 부부의 간장을 졸아들게 했다. 사실 소문은 순옥이 내려고 한 것이 아니었다. 남편이 앓아눕자 동네 사람들이 병문안을 왔다가 알게 된 것이었다. 더구나 시어머니의 친구들이 죽어가던 남편이 살아나자 소문을 듣고 무슨 명약이라도 썼느냐고 물어보는 통에 알려진 사실이었다. 동네 주민들 사이에서 한 입 건너 두 입 건너 퍼져갔다.
남편은 얼굴색이 새까맣게 죽어서 일언반구도 없다. 그들의 얼굴을 본 보위원은 그제야 할 말을 다 끝냈다는 듯이 움쭉 일어서며 한마디 더 했다.
“내일 순옥 아줌마는 오전에 동 보위원실로 나와야겠소. 사건 경위를 더 조사하고 문건을 작성해야 하니까.”
보안원은 문건을 작성해야 한다는 말에 힘을 주고 말했다. 문건을 작성하고 그 위에 지장만 찍으면 큰일이다. 그 다음은 재판이 이뤄지고 법적 처벌이 가해진다. 큰일이었다. 그렇게 되는 날에는 순옥이든 남편이든 둘 중 한 사람은 6개월 노동단련대 처벌을 받게 된다. 남편이 노동단련대에 가게 되면 세포비서, 강연강사 자리도 내놓게 되고 막노동자로 나떨어진다. 대신 순옥이 간다고 해도 사정은 다를 바 없다. 그러면 그동안 살림은 누가 하라고? 지금도 충분히 어렵게 살아가는데 더 큰 불통이 튕겨 가족이 풍비박산이 날 위기에 처한다.
순옥은 지금 잠자코 있다가는 벼락을 맞을 것 같았다. 보위원의 얼굴은 말없이 순옥을 주시하고 있었다. 그들의 행동여부에 따라 결정할 것이라는 엉큼한 속심도 엿보였다. 순옥은 보위원에게 약을 쓰는 일 외에는 별 다른 방도가 없다고 생각했다. 옆집 순돌이네 아빠도 술을 마시고 정부를 비난하는 말실수를 했다가 보위원이 돈을 받고 눈을 감아주었다는 말도 돌아갔다.
순옥은 보위원에게 매달려 사정하기 시작했다.
“보위원 동지, 한 번만 좀 봐주세요. 장본인은 저예요. 남편 잘못도 아니고 다 제 잘못이에요. 제발 좀 봐주어요.”
그는 납죽 엎드리며 사정하고는 남편에게 보위원이 집을 나서지 못하게 좀 더 붙잡고 있으라고 눈짓했다. 보위원은 당장 나갈 것처럼 주춤하더니 순옥을 지켜보더니 도로 앉았다.
순옥은 재빨리 밖으로 나왔다. 그는 가까운 곳에 있는 담배 가게로 뛰어갔다. 담뱃가게를 하는 아줌마와는 이미 안면이 있는 사이었다. 그는 담배장사 여인에게 자기가 지금 처한 환경에 대해 이야기 하고 돈을 좀 빌려달라고 부탁했다.
요즘 보위원이나 보안원들은 담배보다 돈을 더 좋아한다. 그는 5만 원만 좀 꿔달라고 사정했다. 여인은 돈은 없다면서 담배를 가져가는 게 어떻냐고 말했다. 담배 다섯 보루를 외상으로 가져가고 대신 돈을 갚아달라고 했다. 할 수 없이 담배 다섯 막대기를 보자기에 싸들고 돌아왔다.
집에 들어서니 그새 보위원의 얼굴은 아까보다 약간 풀어져 있었다. 순옥이 뛰어나간 의미를 알아차린 것이었다. 순옥은 보자기에 싼 담배 다섯 보루를 보위원에게 내밀었다.
“보위원 동지, 죄송해요. 제가 돈으로 드리려니 안 되어서 이걸 가져왔는데 이거라도 받으시고 저희를 좀 도와주세요.”
보위원은 얼굴은 화색이 돌았다. 보위원도 순옥네의 가긍한 살림을 잘 알고 있을 터였다. 이집에 무슨 돈이 있을 건가. 하지만 다행히도 욕심을 챙겼다는 생각에 못내 기뻐하는 눈치였다. 그러나 겉으로는 엄한 듯 입을 꾹 닫아걸고 앉았다.
그리고는 이걸 받아야 하나, 말아야 하나 하고 생각을 하는 것처럼 잠시 우물거렸다. 물질 앞에서 보위원이라는 자각을 버리고 미련한 모습을 보이는 자기의 꼴을 우습게 볼까봐 잠시 망설이는 자태를 보여주는 것이었다.
순옥은 보위원이 담배보자기를 되밀어놓지 않는 것을 보고 확실하게 생각이 달라졌음을 확신했다. 그제야 숨이 나갔다. 하지만 그는 마음에 걸리는 일이 있었다. 자기네는 이렇게 빠져나갔지만 점쟁이 홍주에게 무슨 일이 들이닥칠 것 같았다. 순옥네가 걸려들었으니 홍주라고 가만 놔둘 리 없었다. 죽어가는 사람을 도와주고 험한 꼴은 홍주가 더 당할 것만 같았다.
그는 보위원에게 또 한 번 울상을 짓고 매달렸다.
“보위원 동지, 홍주는 죄가 없어요. 안 봐주겠다는 것을 내가 사정사정해서 봐주었으니 제가 딱해서요. 그래서 사실 담배 두 보루를 더 가져왔는걸요.”
순옥은 비위를 무릅쓰고 사정했다.
보안원은 들어주는 듯 했다.
“아아, 순옥 아줌마, 무슨 말인지 알아들었소. 점쟁이에게 죄를 묻지 말아달라는 소리 같은데 그 약속 꼭 지키겠소. 그리고 아줌마, 내가 이걸 가져가긴 하지만 내가 필요한 것은 아니오.”
보위원은 한숨을 들이쉬고 변명하기 시작했다.
“사실 이번에 당에서 과수농장을 건설하는데 우리 보위부가 그 과제를 맡아 안았소. 보위원 1인당 30달러씩 내라는데 어쩌겠소? 이걸 팔아서 보태야 할 것 같소. 그 때문에 요즘 우리 보위부가 이렇게 바쁘다니까요. 양해해주오. 그리고 이걸 절대 말을 내면 안 되겠소.”
보위원은 딱 잘라 말하고 일어섰다.
“알겠습니다. 우리야 죄를 지은 사람들인데 절대 말을 내면 안 되지요.”
그렇게 보위원은 가버렸다.
보위원이 말하던 과수농장 꾸리기 과제인 30달러는 이미 다섯 달 전에 수행되었다. 보위원들은 그때부터 동네를 떠돌며 구걸질을 했는데 다 수행된 지금도 계속 코에 걸고 자기의 욕심을 채웠다. 그런들 무슨 말을 하랴. 보위원이 죄라고 하면 그것은 죄일 따름이다.
남편은 보위원이 가버리자 앉았던 자리를 노려보며 그제야 한마디 했다.
“개자식, 우릴 쪼이려고 왔군, 이래저래 백성이 숨 쉴 자리가 없군.”
남편은 화가 나서 금방 붙여 물었던 담배를 재떨이에 꾹꾹 짓이겨 버렸다. 순옥도 허탈감이 와서 그 자리에 녹아버리듯이 주저앉았다. 담배 다섯 보루는 빚이 되었다. 그 돈을 언제 갚을지 아찔했다. 지금도 허리띠를 조여매고 있는데 더 조여야 하는 신세를 생각하니 피도 눈물도 없는 이 세상에 대한 배신감으로 치가 떨렸다.
며칠 후 저녁 조용한 시간을 타서 홍주가 순옥네 집으로 찾아왔다. 홍주를 보니 더럭 겁이 났다. 보위원이 홍주네 집에도 왔다갔을 것만 같았다. 아닌 게 아니라 홍주는 보위원이 자기네 집에도 왔다갔다고 고백했다.
보위원은 홍주가 신선한 이 동네에 미신행위를 퍼뜨려 사람들의 정신을 마비시킨다고 당장 보위부 감방에 처넣겠다고 울러 맸다. 바빠 난 홍주네도 돈을 내놓았다. 하지만 보위원은 그것으로는 맥도 못 춘다면서 더 요구했다. 결국 보위원은 홍주에게서 순옥이 준 것의 두 배를 받아가지고 돌아갔다고 한다.
이는 북한에서 정복쟁이와 주민들 사이에 일어나는 아주 평범하고도 일상적인 이야기로, 자유를 축으로 돌지 못하고 탄압과 억압에 치여 살아가는 북한 주민들의 서글픈 인생살이의 한 대목이다.
(끝)
* 편집자주 : 북한 보안서(경찰서) 등지에는 ‘필사원’이 있다. 사건을 기록하면서 데이터베이스화하는 업무를 담당하는 것이다. 때문에 이들은 현지에서 발생한 사건사고를 당국이 어떻게 처리했는지에 대해 속속들이 알고 있는 경우가 많다. 데일리NK는 필사원 업무를 담당했던 한 탈북민의 증언을 통해 북한 체제의 속성을 파헤치고자 한다.
다만 본지는 일반적 기사체를 고집하기 보다는 소설적 기법을 사용해서 독자들이 사건의 흐름 및 북한 주민들의 심경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주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