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위원의 속심 1부] ‘정복쟁이’의 뜻밖의 방문

[어느 필사원의 사건일지] 돌연 '남편 퇴근' 묻는 보위원, 정작 이유는 말하지 않는데...

작은 일도 크게 만들면 큰일이요, 복잡한 일도 간단하게 보면 평범한 일이요, 세상은 분석하기 나름이다. 북한 같은 사회에서는 작은 일도 큰일로 만들기 십상이다. 그것으로 주민들의 심리를 자극해 보위원, 보안원 같은 ‘정복쟁이’들은 자기들의 욕심을 챙긴다.

보위원의 뜻밖의 방문


북한 평안북도 삭주군 청성노동자구 모습. / 사진=데일리NK

순옥은 금방 장마당에서 돌아왔다. 하루 종일 장마당의 먼지 속에서 붐비고 나니 옷주제가 말이 아니었다. 장사 짐을 얼른 윗방 창고에 밀어 던지고 시장에서 더러워진 옷을 갈아입으러 방으로 들어섰다. 옷을 채 갈아입기도 전에 문 두드리는 소리가 자지러지게 들려왔다. 어찌나 요란한지 오금이 저리게 했다.

출입문 쪽에 대고 약간 짜증이 나는 소리로 냅다 소리쳤다.

“누군지 조금만 기다려요.”

순옥은 윗옷의 앞 단추를 다 채우지 못한 채 뛰어나갔다. 문을 여니 보위원이 서 있었다. 생전 집에 와 본 적이 없는 보위원이었다.

“집안에서 뭐 하는데 빨리 나오지 못해?”

보위원은 빨리 나오지 않은 것에 화가 난다는 듯이 씨가 박히게 말을 내뱉었다. 순옥은 민망도 하고 좀 놀라기도 했다.

보위원이 해진 저녁에 집에 찾아오리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정직하고 바르게 사는 자기 같은 사람들 집에 찾아오는 일은 드문 일이었다. 보위원은 동사무소 회의장에서나 인민반 회의에서 주민 정치사업, 혹은 갑자기 일어난 정황들을 수습하기 위해 비상회의가 있을 때나 보게 되었다.

특별히 따로 만날 이유가 없었다. 혹시 뭘 구걸할 일이 있어 온 것은 아닌지 걱정되었다. 최근에 보위원들은 생활이 어려워지면서 주민들의 작은 실수를 압박해 돈을 받아 챙기거나 잘 사는 주민들 집에 구걸을 다니기가 일쑤였다. 그러고 보니 동네에서 유독 잘 사는 위생반장네 집 문 앞에서 종종 띄어볼 때도 있었다.

“보위원 동지, 무슨 일입니까?”

순옥은 겨우 한마디를 하고 보위원을 문밖에 세워둔 채로 물었다. 갈 길을 가다가 물어볼 몇 마디가 있어서 들린 것이라고 생각했다.

보위원은 간혹 정치적 성향에 문제가 있는 동네 주민들의 동태를 알아보기 위해 들릴 때가 있었다. 그럴 때는 선 자리에서 몇 마디 물어보고 돌아가곤 했다. 오늘도 그런 문제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빨리 물어보고 돌아갔으면 하는 심정으로 보위원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보위원은 순옥의 생각을 넘겨짚었는지 좋지 않은 시선을 던지며 물었다.

“언제까지 밖에 세워둘 셈이요? 세대주는 언제 직장에서 퇴근하오?”

남편의 퇴근에 관심을 가지는 것을 보니 심상치 않다. 무슨 일인지는 모르겠으나 남편을 만나러 온 것 같았다. 남편의 일은 주로 직장에서 담당한 보위원이 할 일인데 왜 동 담당 보위원이 찾는지 알 수 없었다.

“들어오십시오.”

순옥은 보위원을 집으로 안내하면서 머리가 복잡했다. 집은 어지럽혀져 있었다. 아침에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랴, 남편이 출근하랴, 시장에 장사 나갈 준비를 하느라 집은 노상 바람맞은 것처럼 어수선했다. 이 꼴을 보위원에게 보이자니 망신스러웠다. 하지만 보위원을 마냥 세워둘 수 없었다.

보위원도 집 꼴이 안 좋다는 듯 인상을 찡그리고 들어섰다. 순옥은 보위원이 앉을 자리만 따로 밀어내고 방석을 깔아주었다. 아직도 집에 들어가지 못하고 돌아치는 자기들의 사업에 맥이 빠진다는 듯이 방석 위에 털썩 주저앉았다.

당장 저녁준비를 해야 할 시간이었다. 학교에 간 아이들이 들이닥치면 빨리 밥상을 차려야 했다. 작은 애는 배가 고프면 사정이 없다. 요즘은 점점 생활형편이 어려워 아이들의 먹거리가 풍족하지 못했다. 순옥은 허리가 끊어질 듯이 배가 고프다고 아우성을 칠 둘째가 눈앞에 떠올랐다. 하지만 보위원이 왜 왔는지가 더 궁금했다. 집안에 무슨 우환이 될 일이라도 생긴 것인지 마음을 놓을 수 없었다.

순옥은 보위원과 잠깐 마주 앉았다. 자기와는 별개로 아까부터 남편을 찾는 것이 자못 의심스러웠다. 남편이 어떤 몹쓸 짓이라도 저질렀는지 알고 싶었다. 요즘 남편의 성격은 많이 이지러져 있었다. 좀처럼 타발을 하지 않는 남편이 음식상 앞에서 인상을 찡그리기가 일쑤였다.

몰래 잠깐씩 혀 아래 소리로 정부에 대한 반항감도 표시했다. ‘소처럼 일해도 쌀 1kg 밖에 안 되는 월급을 주고 대체 어떻게 먹고 살라는 건가‘ ’우리는 왜 이리도 지지리 못 살고 고생만 해야 하는가‘라는 등 이상한 말을 많이 했다. 사회적 의식이 한창 자라나는 자식들이 그런 말을 듣고 누설하기라도 하면 큰일이었다.

남편의 색다른 동향에 바빠 난 것은 순옥이었다. 낮말은 새가 듣고 밤 말은 쥐가 듣는다고 그러다 실수라도 하는 날에는 보위부 영창 감이었다. 어떤 일이 일어났을 경우 빨리 대처해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북한 국경지역의 보위부 청사 . /사진=데일리NK

순옥은 보위원의 눈치를 살피며 겨우 한마디 물었다.

“보위원 동지, 혹시 저의 부부에게 무슨 안 좋은 일이라도 생겼습니까?”

목소리는 이미 풀이 죽어 가라앉은 상태였다.

보위원은 말짼 눈길로 대답했다.

“생겼으니 나타난 거 아니겠소? 내가 할 일 없어 집에 들어가 피로를 풀어야 할 시간에 아줌마네 집에 찾아 들었겠소? 거, 물이나 한 사발 좀 주오.”

보위원은 아직 저녁식사 전이어서 시장기가 발동한 듯 물을 청했다. 물 한 사발을 냉큼 마신 후 담배를 붙여 물었다. 담배 연기는 천장 위로 훌훌 날아올랐다.

남편이 오기를 기다리는 동안 부엌에 내려가 탄불의 공기구멍을 열어 불을 지피고 가마에 쌀을 안쳤다. 순옥은 밥을 지으면서도 제정신이 없었다. 가슴이 옥죄어지고 긴장되었다. 조금 후에 아이들이 돌아오고 직장에 나갔던 남편도 돌아왔다. 아이들은 보위원이 왔다는 말에 조용히 윗방으로 사라졌다.

남편은 신발을 벗으며 복도에 벗어놓은 구두를 발견하고 물었다.

“여보, 누가 왔소?”

순옥은 남편에게 조용히 말하라고 눈짓을 하며 말했다.

“여보, 보위원 동지가 찾아왔소. 방안에 앉아 있소. 당신을 기다려요. 당신한테 무슨 일이 있는 것 같아요.”

순옥은 조용조용히 남편에게 속살거렸다. 남편은 퀭한 눈길이다. 무슨 일이 있어 만나겠다고 온 것이냐는 맞갖잖은 눈빛과 의문스러운 눈빛이 엇갈린 채로 올려다보며 말했다.

“보위원이 왜? 무엇 때문이요? 우리한테 무슨 볼 일이 있다오?”

남편은 화가 발동한 듯 거칠게 내쏟았다.

“글쎄요? 처음부터 화를 내지 말아요. 당신이 오면 얘기 하려는가 봐요. 들어보고 할 말을 해요. 얼른 들어가요.”

남편은 못마땅하다는 태도로 방안에 들어서 보위원과 인사를 나누었다. 순옥은 부엌에서 부지런히 움직였다. 항상 보채던 둘째는 보위원이 온줄 알고 윗방에 들어박혀 내다보지도 않는다. 아이들의 인식에도 보위원은 무서운 존재였다. 잡아가고 고문하고 하는 인식이 박혀있었다.

순옥은 손을 부지런히 움직였다. 명색이 보위원이고, 아무튼 보위원의 마음을 좀 늦추게 하려면 식사정도는 시켜야 할 것 같았다. 식사시간에 찾아온 손님을 그냥 보내기도 딱한 노릇이었다. 그는 부지런히 부엌에서 돌아쳤다.

보위원은 아직 본론에 들어간 것 같지 않았다. 생산 공정에 대한 얘기가 흘러나오는 것을 보니 세포비서를 하는 남편에게 공장의 다반사를 물어보는 것 같았다. 조금 후에 보위원은 소리쳤다.

“순옥 아줌마, 여기 와 앉소. 남편만 들을 얘기는 아니오. 아줌마가 더 장본인일 수 있소.”

순옥은 보위원의 말에 정신이 펀뜩 들었다. 내가 장본인일 수 있다니, 순옥은 부리나케 앞치마에 손을 뻑 씻고 집안으로 올라와 남편 옆에 꼭 붙어 앉았다. 가마에서 쌀이 부글부글 끓는 소리가 집안까지 새어 들어왔다. 눈치 빠른 맏이가 부엌에 나와 밥이 타지 않는가를 살폈다.

(계속)

* 편집자주 : 북한 보안서(경찰서) 등지에는 ‘필사원’이 있다. 사건을 기록하면서 데이터베이스화하는 업무를 담당하는 것이다. 때문에 이들은 현지에서 발생한 사건사고를 당국이 어떻게 처리했는지에 대해 속속들이 알고 있는 경우가 많다. 데일리NK는 필사원 업무를 담당했던 한 탈북민의 증언을 통해 북한 체제의 속성을 파헤치고자 한다.

다만 본지는 일반적 기사체를 고집하기 보다는 소설적 기법을 사용해서 독자들이 사건의 흐름 및 북한 주민들의 심경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주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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