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술년 새해, 북한 ’58년 개띠’들의 건투를 빌며

▲ 북한의 풍산개

서기 2006년 음력 1월 1일 – 병술년(丙戌年) 새해가 밝았다. 12 간지로는 ‘개의 해’이다.

‘개의 해’ 하면 유독 떠오르는 것이 ‘58년 개띠’이다. 57년 닭띠, 59년 돼지띠는 그다지 구분하여 불리지 않는데, 남한에서 ‘58년 개띠’는 별종(?)으로 여긴다. 1950~1960년대 태생들은 모두 전후(戰後) 베이비붐 세대로 치열한 경쟁과 배고픔을 이기며 빠른 경제성장의 ‘젊은 피’ 역할을 해왔는데, 여기에 개라는 동물의 근성과 이미지가 결합돼 ‘58년 개띠’라는 표현이 더욱 두드러져 보인 것이 아닌가 추정된다.

그럼 북한에도 ‘58년 개띠’라는 말이 있을까? 답은 ‘없다’.

북한에서는 ‘띠’를 그리 특별하게 따지지 않을뿐더러, 태어난 해를 기준으로 하여 특정한 정서적 집단을 형성하는 것을 달가워하지 않기 때문에 ‘~년 ~띠’라는 용어 자체가 성립하기 어렵다. 다만 ‘혁명 1세대’ ‘혁명 2세대’ 라는 식의 구분법은 있다. 항일빨치산 투쟁에 참가했던 세대를 1세대, 한국전쟁(북한식 표현으로는 ‘조국해방전쟁’)에 참가했던 세대를 2세대라고 한다.

북한에 ‘58년 개띠’라는 용어가 있다면, 이들은 ‘혁명 3세대’쯤 된다. 그리고 ‘70년 개띠’들은 ‘혁명 4세대’들로, 남한의 ‘386세대’에 비견되는 사람들이다.

올해 북한의 신년공동사설은 “사회의 주력을 이루고 있는 혁명의 3세, 4세들을 정치사상적으로 튼튼히 준비시켜 일심단결의 대가 굳건히 이어지도록 하여야 한다”고 이례적으로 혁명 3세대와 4세대의 ‘정치사상’ 문제를 공식 거론했다. 과연 이들이 어떤 세대이기에 그럴까?

실망 큰 북한의 58년, 70년 개띠들

북한의 ‘58년 개띠’들은, 남한의 그들과 마찬가지로, 어렵고 복잡했던 시기에 태어났던 사람들이다. 남한이 전쟁으로 피폐해진 국토를 일구는데 땀을 흘렸던 것처럼 북한도 그랬고, 남한이 새마을운동을 했던 때에 북한도 천리마운동을 했다.

북한의 ‘58년 개띠’들이 만10세가 되던 1968년, 미국의 첩보함 푸에블로호가 북한에 나포되는 사건이 발생했다. 북한은 80여명의 미군을 억류하고 미국과 협상을 벌였으며, 주변국가들은 초긴장 상태에 들어갔다. 북한에서도 비상사태가 선포돼 모든 대학생들이 군대에 징집되는 등 10여 년간 사건의 여파는 계속됐다. 이 기간 동안 북한의 대학은 텅 비어있다시피 했다. ‘58년 개띠’들도 펜이 아니라 총을 들어야 했다.

한창 배워야 할 시기를 군대에서 보내고 복학을 했지만 한참 나이 어린 후배들과 경쟁하다 보니 여러모로 부족한 점이 많았다. 그래서 ‘58년 개띠’를 포함한 북한의 ‘혁명 3세대’들은 4세대에 비해 전문지식과 실무능력이 떨어진다는 평가를 받곤 한다.

북한에서 우상화 교육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은 1970년대 초반인데, ‘58년 개띠’들은 고등중학교 1~2학년 때에 느닷없이 생겨난 ‘김일성 혁명역사’와 같은 과목을 배워야 했고, ‘유일사상체계 확립을 위한 10대 원칙’을 처음으로 암송하기 시작한 세대이기도 했다. 그래서 지난 혁명 1~2세대와는 다르게 3세대부터는 ‘암기로 수령의 위대성을 외운’ 세대이기도 하다. 당연히 충성심이 이전 세대에 비해 떨어진다.

북한의 ‘70년 개띠’들은 내적으로는 썩어가고 있었으나 외형상으로는 북한체제가 가장 건재하던 때에 태어나 자란 사람들이다. 그들은 이미 정형화된 우상화 교육을 받았고, 1989년 평양에서 열린 ‘제13차 세계청년학생축전’ 시기 10대 후반의 대학생 ∙ 청년으로 큰 감동을 경험한 세대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들이 본격적으로 사회에 진출하기 시작한 1990년대 초반, 북한은 극심한 식량난을 겪으면서 수백만 명이 굶어 죽는 비극을 경험한다. 희망이 컸으니 그에 반하는 실망 또한 컸다.

이 시기 ‘58년 개띠’들은 각급 기관 및 기업소의 과장, 지배인급 간부로 성장하던 과정에 있었다. 전후 복구 – 장기 군사복무 – 뒤늦은 공부와 사회진출 등의 순탄치 않은 과정을 거쳐 이제 한 가정의 가장이자 직장의 중견간부로서 자기 자리를 잡기 시작하던 때에 이들은 ‘생존이냐 사상이냐’ 하는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되었고, 당연히 많은 사람들이 생존의 길을 택했다. 고지식하게 사상을 고집했던 사람들은 굶어 죽거나 사회에서 낙오되었다.

잃어버린 세대, 82년 개띠들

좀더 세대를 넓혀 ‘82년 개띠’들을 보자면, 이들은 식량난의 피해를 가장 크게 경험한 세대들이다. 이들이 고등중학교에 입학하던 무렵 식량난이 덮쳤고, 수년간 북한 전역의 학교가 문을 닫다시피 했다. 한창 자라야 할 시기에 충분한 영양섭취를 하지 못해 성장이 중단됐고, 부모형제를 잃고 거리를 방황하게 된 이들 세대에게 ‘꽃제비’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82년 개띠’들은 북한에서 ‘잃어버린 세대’에 속한다. 지금 북한에는 이들 세대에 속하는 청년들이 턱없이 부족하다. 오죽했으면 북한은 2003년부터 신병(新兵) 모집방식을 종래의 지원제에서 강제징집제로 전환했다. 체격조건도 ‘신장 148 cm, 체중 48 kg 이상’으로 크게 완화했는데 세상에 이렇게 키 작은 군대도 드물 것이다.

북-중 국경지역에서 북한 군인들을 바라보면, 아직 얼굴에 솜털도 채 가시지 않아 열댓 살쯤 돼 보이는 어린애가 자기 키만한 소총을 끌듯이 메고 다니는 모습이 안쓰럽다. 온통 나무를 베어버려 황량한 북한의 벌판과 산림이 무성한 중국 영토가 확연히 구별되듯, 북한 병사들의 모습은 강 건너 중국 변방대원들의 건장한 체격과 가슴이 아리게 구별된다.

‘58년 개띠’라는 키워드를 통해 북한의 세대에 대해 이야기해보았다. 어디 ‘개띠’들 뿐일까? 2천만 북한인민들 가운데 고통 받지 않은 세대가 없고, 그것은 우리의 상상을 초월한다. 그 고통의 뿌리에는 주민 생활에는 전혀 관심 없이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는 것에만 지난 30년을 바쳐온 ‘독사(毒蛇)’가 있다.

김정일은 흔히 1942년생 말띠로 알려져 있지만, 사실은 1941년 뱀띠이다. 김일성이 태어난 해인 1912년과 이른바 ‘꺾어지는 해'(정주년: 10주년, 5주년)를 맞추기 위해 1982년에 슬그머니 자신이 태어난 해를 1942년으로 바꾼 것이다. 그래서 북한의 조선중앙방송은 1981년과 1982년에 연달아 ‘지도자 동지의 40회 생일을 맞이하여’라는 기사를 내보내는 코미디를 연출하기도 했다.

남한에 진돗개가 있다면 북한에는 풍산개가 있다. 지금은 김일성의 숙부인 김형권의 이름을 따 ‘김형권군’이 되어버린 풍산군이 원산지인 토종견이다. 용맹하고 협동심이 뛰어나기로 유명해 풍산개 몇 마리가 모이면 독사를 물어뜯고 멧돼지와 호랑이를 잡는다고 한다.

2006년 병술년(丙戌年) 새해에는 북한의 ‘58년 개띠’들이 풍산개의 용맹성을 발휘해 앞장서고 2천만 인민이 하나되어 반세기 독재정권을 무너뜨리는 기적과 역사의 순리(順理)를 기대한다.

곽대중 논설위원 big@dailyn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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