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든 남편위해 몸이라도 팔아야 했다”

▲ 탈북 여성 김희연씨 (사진:NKGulag)

남편의 병원비를 벌기 위해 중국에서 몸을 팔고 있는 한 탈북 여성의 기구한 사연이 전해졌다. 두 아이의 어머니인 김희연(가명. 함북. 38)씨는 아픈 남편과 두 자녀의 생계를 책임지기 위해 중국 ○○ 지역의 노래방에 나가고 있다.

<북한민주화운동본부>(공동대표 강철환, 김태진)는 9일 홈페이지를 통해 김씨와의 인터뷰 내용을 공개했다(Justice 10월호 참고). 지난 8월경 중국 ○○ 지역을 방문한 운동본부 한 관계자는 김씨를 만나 탈북 여성들의 성매매 실태를 들을 수 있었다.

이전에 다방에 다녔다는 이 여성은 지금은 보수가 더 좋은 노래방이나 안마방 등으로 일을 나가고 있다. 노래방에는 탈북 여성 이외에도 한족(漢族)여성들도 일하고 있는데, 단속되면 곤란해지기 때문에 이곳에서도 탈북 여성들은 기피하고 있다고 한다.

노래방에서는 성매매도 이뤄진다. 이 때문에 김씨도 몸이 많이 망가져 있는 상태다.

김씨는 “아들 학교 보내는 데 600원 정도 드는데 몸을 팔아서라도 자식을 위해 일한다”며 “조선(북한)에 있는 부모들이나 가족들에게 돈을 부쳐줘야 하기 때문에, 주변에 있는 탈북 여성의 대부분이 쌍발(성매매)해서 고향에 돈을 부친다”고 밝혀, 중국 내 탈북 여성들의 성매매 실태 심각성을 짐작케 했다.

그녀가 한 달동안 노래방에서 버는 돈은 중국 돈으로 700원. 그나마 중개인에 반절을 떼이고 남는 돈이다. 김씨는 아들의 미래를 위해 2,000~3,000원 정도만 있으면 장사를 해보고 싶다고 말했다.

병원비가 없어 쫓겨난 남편을 보다 못해 몸이라도 팔아야겠다고 마음먹게 됐다는 김씨는 1년만 고생하자고 마음 먹었지만, 다른 생계 유지 방편이 없어 지금도 그만두지 못하고 있는 상태다.

그러나 그녀가 몸을 던져 지키고 싶었던 남편은 최근 병세가 악화돼 세상을 떠난 것으로 알려졌다. 이제 그녀의 남은 소원은 두 아이들과 함께 무사히 한국 땅에 오는 것 뿐이다.

양정아 기자 junga@dailynk.com

<아래는 인터뷰 전문>

– 지금 하고 있는 일은

전에는 다방에 다니다가 같은 탈북여성의 소개로 노래방에 나가고 있다.

– 얼마씩 받고 있나

한 달 가족 생활비는 600원 정도이다. 다방 같은 데서는 500원 이상 받기가 쉽지 않다. 노래방에 나가 같이 술 한 잔 먹었는데 30원을 팁으로 주었다. 남자들과 놀면 돈을 더 벌 수 있다. 한 달에 700~800원 정도 번다.

– 가족들의 생계비 때문인가

가족들 먹여 살리려고 어쩔 수 없이 선택했다. 결국은 안마방에도 나가게 되었다. 무슨 일을 해서라도 애들을 먹여 살리려고 했다.

– 남편의 반대는 없었나

남편이 아프니까 알고 있으면서 적극적으로 반대는 하지 않았다. 10시 이전에만 들어오라고 했다. 남편도 가슴은 아프겠지만 결핵약 살 돈도 없고 현실이 따라오지 못하니 어쩔 수 없이 했다.

– 그 돈이면 생계유지가 되는가

아들 학교 보내는데 600원 정도 드는데 몸을 팔아서라도 자식을 위해 일했다. 지난해에는 그나마 괜찮게 살았다. 한 달에 보통 10일 정도 일했다. 그런데 나도 술을 많이 먹는데다 피임약 때문에 병이 생겼다. 올해 두 달 반 동안은 출혈로 병들어 거의 일을 못했다. □□ 한 곳에서만 쌍발(성매매)을 하다보니 그렇다. 그래서 지금은 ○○ 쪽으로 나가고 있다.

– 탈북여성 대부분이 이런 일을 하고 있나

다른 일을 하려고 해도 안 받아주니까 탈북여성들의 대부분이 이렇게 살 것이다. 조선(북한) 부모들이나 가족들한테도 돈을 부쳐주어야 하기 때문에 그렇다. 부쳐주는 돈의 30%가 전달료로 떼이고 나머지만 가족에게 전달된다. 이 일도 얼굴이 안 예쁘면 받아주지 않는다. 주변에 있는 탈북 여성들은 대부분이 쌍발해서 고향에 돈을 부친다. 나도 장사부터 안 해본 게 없다.

– 아픈 곳의 치료는 받고 있나

두 달 반 동안 하혈로 힘들어도 남편 치료 때문에 약도 못쓴다. 벼라별 더러운 남자들이 다 있다. 출혈하고 피임약을 계속 쓰니까 일을 못해 집세를 못 내고 있다. 부인병이라는 것이 바로 죽는 병이 아니고 골병 들어 죽는 거다. 한 달에 700~800원 정도 버는데 당장 집세가 걱정이어서 병원 갈 엄두도 못 내고 있다. 자궁 밑에 알 두 개가 있다. 종양인 것으로 안다. 돈 100원이 아까워서 못 갔다.

– 남편의 건강 상태는 어떠한가

남편에게 곰열(웅담)이고 광고약이고 다 사먹였는데도 병은 더 깊어간다. 남편은 병원에 있다가 돈을 못내 쫓겨났다. 그게 계기가 돼서 몸이라도 팔아야겠다고 마음먹었다. 남편 살리기 위해 갖은 수단과 방법을 위해 일할 테니까 아무 상관도 하지 말라고 말했다. 1년만 하겠다고 마음먹었으나 달리 살아갈 방법이 없어 계속하게 되었다. 나는 남편을 위해서는 더러운 돈이라도 벌겠다고 생각했다. 한번은 남편이 왜 자꾸 하혈을 하냐고 물었다. 무슨 일 하냐고 추궁하더라. 공장에 700원 받고 일한다고 했다.

– 찾는 사람들은 많은가

○○에 3일 있다가 오늘 들어왔다. 손님들은 많지 않다. 사람 머리수에 따라 돈 받는다. 중국돈으로 50원 정도 받는다. 젊은 애들은 300~400원 정도 받는다. 중개인이 가운데서 절반을 먹는다.

– 같이 일하는 여성은 몇 명이나 되나

6명 정도 같이 일하고 있다. 나와 한 사람은 왔다갔다 하는 경우다. 조선 여자는 나 혼자고 나머지는 모두 한족이다. 나중을 걱정하여 조선 사람은 잘 쓰지 않는다. 조선으로 잡혀 갔을 경우 보위부에서 알면 큰일 난다.”

– 언제까지 할 것인가

남편만 아프지 않으면 안 할 거다. 할 이유가 없다. 나이도 있고, 애들 때문에 하기 힘들다. 애들한테 더러운 누명은 남기고 싶지 않다. 2,000~3,000원 정도만 있으면 소채(야채)장사나 잡화장사 같은 것을 해보고 싶다.

– 다방에서는 어땠나

다방에서 일할 땐 다방 안에서 한 30분 정도 쌍발 했다. 팁으로 50원 정도 받고 그랬다. 노래방에서도 방안에서 다 한다. 그 돈은 모두 가족을 위해 다 썼다.

– 남편에 대한 생각은 어떤가

묻지는 않지만 대충 알고 있다. 묻지 말아 달라고 한다. 나는 남편을 진심으로 사랑한다. 그렇기 때문에 몸 팔아서라도 약을 사준다. 같이 일하는 사람들이 남편을 버리라고 한다. 그러나 난 절대 그렇게 하지 못한다. 그러니 남편도 날 사랑한다. 남편이 죽어도 다른 남자를 절대로 만날 수 없다.

– 탈북 한 후 어떻게 생활했나

중국에 들어와 산둥에 팔려나갔다. 남편이 중국에 들어올 때까지 견뎠다. △△에서 15일 있었는데 한족과 사는 조선여성이 있었다. 그 집에서 청소 일을 하기도 하고 사발 닦이를 했는데 내 신분이 불안하니까 나만 일시키더라. 그래서 남자를 해달라(소개시켜달라)고 해서 시집가겠다고 했다. 그게 유일한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얼마 후 영감이 왔다. 도망 갈까봐 계속 감시했다. 동네에서 젊은 여자 데려왔다고 잔치를 하더라. 1년 반을 계속 울면서 지냈다. 처음에는 아깝다고 아무 일도 안 시키더라. 그런데 그게 나는 싫어서 계속 울기만 했다. 병이 들어도 남편이 잊혀지지 않았다. 여기서 새끼(아이) 낳으면 절대 안 된다고 생각했다.

그런 후 도망쳐 왔다. 집 한 채를 줄 테니 남편이랑 같이 살고, 죽으면 자기하고 살자고 이야기했는데도 싫다고 했다. 돈 1,000원 준다고 해도 난 못한다고 했다. 그 사람이 남편이 죽기를 바랬다. 죽으면 자기한테 올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애가 하나 있는데 나를 머슴으로 취급한다. 남자도 싫고 그 사람 애도 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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