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놈의 진보’와 ‘진짜 진보’를 어떻게 구별할까?

한 사회의 좌우 문제, 보혁(保革) 구도와 관련하여 오래된 비유가 있다.

‘팍스 브리타니아'(PAX BRITANIA: 영국에 의한 세계평화) 시기, 영국의 어선들은 물고기를 잡아 신선도를 잘 유지하면서 귀항(歸港)하는 것이 최대 과제였다. 잡은 물고기를 수족관에 가둬두면 활동하지 않는다. 이 때문에 항구에 도착하기도 전에 대다수 죽는다. 선도가 떨어지는 것이다.

누군가 방법을 알아냈다. 수족관에 상어 몇 마리를 집어넣었다. 물고기들은 상어에게 잡혀 먹히지 않으려고 열심히 도망다녔다. 물고기들이 쉴새없이 운동하는 것이다. 이렇게 해서 대다수의 물고기를 살려서 돌아올 수 있었다. 영국의 정치학자들은 이 상어들을 ‘좌파’ 또는 ‘혁신계’에 비유했다. 좌파와 혁신계가 있어야 사회가 썩지 않고 ‘선도’를 유지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상어들이 물고기 만큼 많으면 어떻게 될까? 답은 간명하다. 수족관 자체가 위험해진다. 사회가 안정적 발전 방향으로 가기 어려운 것이다. 이 때문에 보수 우파들이 사회의 주류(main stream)를 형성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보수 우파가 주류세력으로 사회를 이끌어가고 좌파 혁신계는 주류세력에게 끊임없이 문제를 제기하면서 사회가 썩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이 구도가 혁명, 또는 대혁신이 요구되지 않는 평화시기에는 가장 적합한 사회발전 모델이다. 물론 이 경우 ‘보수’는 법, 도덕, 관용에 충실해야 한다.

하지만 실제 사회적, 물질적 변화양상은 위에서 말한 ‘보혁 구도’ 방향으로 잘 움직여주지 않는다. 지난 10년이 그랬다. 상대적으로 좌파성향의 정권은 남북관계부터 수많은 깽판을 쳤다. 일정 수준 우리 사회의 권위주의를 타파하고 한미 FTA 협상을 한 것은 그나마 봐줄 수 있었지만, 노무현식 말투로 ‘별놈의 진보’로도 성공하기 힘들었던 것은 노정권 담당자들이 사회의 변화발전을 이해하는 수준이 낮았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함량미달 정권이었다. 청와대를 비롯해서 이들은 공무원, 즉 국민을 위해 ‘일하는 사람들’인데, 하라는 일은 안 하고 실력도 없으면서 국민들 상대로 ‘상어’ 노릇 하려고 덤벼들었다. 노무현 대통령부터가 그랬다. ‘별놈의 보수들 다 나와봐라. 한판 붙자’는 식인데, 그게 ‘상어’였지, 어떻게 물고기 대장인가?

노무현 정부가 실패한 이유는 여러가지 있겠지만 필자는 이들이 ‘사회의 진보’가 무엇인지 잘 모르거나, ‘진보’를 잘못 인식하고 있었기 때문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든다.

잘못된 구도 ‘보수-진보’

현재 우리사회는 ‘보수-혁신’으로 사용하지 않고, ‘보수-진보’로 사용하고 있다. 언론부터가 종북(從北)주의 대표선수들인 민노당, 민주노총, 전교조 등을 ‘진보진영’으로 쓰고 있다. 현재 전세계에서 가장 수구꼴통 집단인 김정일 정권에 머리를 조아리는 민노당 등이 ‘진보’라는 것은 애초부터 말이 안되는 것이다. 그런데 왜 이들을 ‘진보’라고 표기해주고 있을까?

원래 보수와 혁신, 즉 ‘보혁 관계’는 변증법의 범주에서 제기된 것이다.

간단히 말하면, ‘보수’란 현존 체제(질서)를 지키자는 것이다. 반면 ‘혁신’은 현존 체제(질서)를 뜯어고치자는 것이다. 보수는 현존 체제를 지킴으로써 사회가 ‘진보’한다고 본다. 반면 혁신은 현존 체제를 뜯어고침으로써 사회가 ‘진보’한다고 본다. 그러나 현존 체제를 ‘보수’함으로써 사회가 진보할 수도 있고, 퇴보할 수도 있다. 마찬가지로 ‘혁신’함으로써 사회가 진보할 수도 있고, 퇴보할 수도 있다. 이것이 보혁관계의 변증법적 기본 구도이다.

‘혁신’한다고 해서 사회가 반드시 진보하는 것이 아니며, ‘보수’한다고 해서 반드시 퇴보하는 것이 아니다. 4.19 이후 3新(혁신계, 신문, 신민당) 때문에 사회가 한동안 퇴보했고, 남북관계를 ‘혁신’하자고 한 햇볕정책은 한반도의 진보(비핵, 평화, 개방)를 가져오기는커녕, 달러지원으로 김정일의 핵개발을 도와주는 ‘평화의 퇴보’를 가져왔다.

반면, 1987년 전두환 대통령의 ‘4.3 호헌선언’은 현존 체제를 ‘보수’함으로써 민주주의의 퇴보를 가져왔고, 6.29 선언은 ‘혁신’함으로써 민주주의의 진보를 가져왔다. 박정희 권위주의 보수정권은 경제분야에서 놀라운 사회진보를 가져왔으며, 개혁(혁신)을 내건 김영삼 정부는 결국 외환위기라는 ‘경제 퇴보’를 초래했다. 즉, 진보와 퇴보는 보수의 결과, 혁신의 결과 초래된 사회적 제현상을 가리키는 것이다.

‘보혁관계’ ‘보혁구도’라는 용어는 있지만, ‘보진관계’ ‘보진구도’라는 용어 자체가 없다. 변증법적으로 봐도 그런 용어는 존재할 수 없다. 사회가 항상 진보할 수도 없고, 항상 퇴보할 수도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퇴보주의’라는 말이 없듯이 ‘진보주의’라는 용어는 ‘모든 존재는 변화발전한다’라는 변증법의 대명제를 부정하는 매우 무식한 용어다. 그런데 언론, 학계에서는 ‘보수-진보’로 쓰고, 더욱이 ‘진보주의’라는 용어도 버젓이 사용하고 있다. 그 배경이 뭘까?

산업혁명 이후부터의 ‘보혁 구도’의 뿌리는 아무래도 마르크스주의에서 찾는 것이 맞을 것이다. 마르크스주의는 계급혁명의 방식으로 온 사회를 혁신함으로써 계급해방, 인간해방이 가능하다고 보았다. 그런 점에서 마르크스주의 운동은 인류역사상 최초의 전 지구적 범위에서 진행된 ‘혁신 운동’이었다. 이후 혁신계들은 각 나라마다 사정은 달랐지만 대체로 마르크스주의에 그 이론적 연원이 닿는다. 또 그 이후의 마르크스주의 운동은 녹색당과 같은 환경주의, 생태주의 계열로도 가지를 쳤다. 이 때문에 ‘마르크스주의=좌파=혁신계’의 등식이 성립해온 것이다. 이 등식은 우리나라에서도 대동소이하다.

언론, ‘진보진영’ 표기 정확히 해야

문제는 우리나라에서 혁신계가 곧 ‘진보’로 고착되는 사회적, 정치적 과정이다. 여기에는 여러가지 학설이 있겠지만 필자는 첫째, 혁신계였던 조봉암이 당명으로 ‘진보당’을 대중적으로 사용한 사실, 둘째, 미국에서 들어온 프로그래시비즘(Progressivism)을 마르크스주의 계열에서 ‘진보주의’로 직역해서 사용해온 점을 주목해보고 싶다.


문제는 정치계가 아닌 학계에서 ‘프로그래시비즘’을 번역하면서 ‘진보주의’로 직역한 것인데, 그 직역 자체를 틀렸다고 보기는 어렵겠지만 과연 보혁관계의 변증법적 구도에 맞는 ‘적절한 번역’이었는지는 의문이 든다. 정치계와는 달리 학계와 언론에서는 용어 규정에서 객관주의를 지킬 필요가 있다. 혁신계만 사회 진보를 대표한다고 누가 감히 주장할 수 있을까? 차라리 ‘진보주의’라는 용어 대신에 ‘혁신주의’로 의역하는 것이 사회적 현상을 설명하는데 더 맞는 용어 선택이 아니었을까?

물론 영국, 미국의 보수당(Conservative)에 조응하는 의미로 ‘프로그래시브’를 쓰고 있다면 할 말이 없지만, 문제는 지금까지 우리나라에는 이미 3백년이 넘는 전통을 가진 영미식의 보수당이 한번도 존재해본 적이 없다는 사실이다. 박정희의 민주공화당(공화당)이 과연 영미식의 보수당이었으며, 지금 한나라당이 그런 보수당이 맞는가? 그런 점에서 컨저브티브에 조응하는 의미로 프로그래시브를 우리나라에서 ‘진보주의’로 쓴다는 주장도 일종의 아전인수라고 할 수 있다.

보수-진보의 관계는 이렇듯 우리나라에서 왜곡되어 사용되고 있다. 언론인, 학자들은 용어를 제대로 표기해야 한다. 김정일 수령독재정권에 머리를 숙이는 민노당, 민주노총, 전교조는 결코 ‘진보진영’으로 표기될 수 없다. 또 이들이 종북주의를 견지하는 한 ‘혁신계’로 부를 수도 없다. 북한 정권은 봉건수령주의+군사주의+조폭주의로 변질된 지 이미 오래 되었다. 이런 정권을 비판하기는커녕 머리를 숙이는 민노당 계열을 어찌 ‘혁신계’로 불러줄 수 있겠는가?

이 시대 진보의 길, ‘북한인권’ 우회할 수 없어

이제, 하고 싶은 말을 하자. 우리 사회에서 건강한 ‘상어’ 역할을 누군가는 해야 한다. 상어가 비실대면 물고기떼도 나중에는 비실댄다. 상어 역할은 결국 야당과 언론, 그리고 실력있는 NGO의 몫이다. 그런데 야당이 된 요즘 민주당을 보면 한심하다 못해 우스꽝스럽다.

최근 민주당에서 당의 정체성을 둘러싸고 ‘별놈의 진보들’이 다 나왔다. ‘생활정치'(이 용어는 YS 시기 잠깐 등장했다가 쑥 들어간 적이 있다), 실용진보, 생활진보, 중도개혁, 한국적 제3의 길…. 모두가 지난 10년간의 오류를 청산하고 살길을 찾아보자고 나온 이야기일 것이다. 하지만 아직도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는 것 같지 않다. 민주당은 ‘진짜 진보’의 방향을 찾아야 한다. 10년동안 깽판 친 민주당이 전혀 예쁘지 않지만 좋은 야당이 없으면 여당도 좋은 여당이 되기 어렵기 때문에 민주당은 올바른 진보의 길을 찾아야 한다.

지금까지 전통적 진보의 가치는 ▲인권 ▲분배의 정의(평균주의 분배가 아니다)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 ▲환경(생태근본주의 제외) 등이다. 이러한 진보의 가치는 우리나라가 압축적인 산업화에 성공함으로써 다른 나라보다 상대적으로 빠르게 실현되어 가고 있다. 또 우리가 선진국으로 다가갈수록 이러한 전통적 진보의 가치는 그 수요가 떨어질 것이다. 그렇다면 앞으로 진보의 가치는 어디로 확장될 것인가?

앞으로 ‘한반도 진보’의 큰 길은 남한은 선진화의 길을, 북한은 수령정권의 교체, 즉 개방정권 수립과 근대화의 길을 시작하는 것이다. 적지 않은 우여곡절이 있겠지만 결국 북한은 산업화-교육화-민주화라는 ‘근대화’의 길을 걷게 될 것이다. 이 시대 진보의 큰 화두가 바로 ‘북한 근대화’이며, 그 시작이 바로 수령정권의 평화적 교체이다. 따라서 이 시대 진보를 표방하는 사람들은 ‘북한인권’ 문제를 절대 우회해서 갈 수 없게 되어 있다. 민주당은 앞으로 다가올 엄연한 현실을 정확히 보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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