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벼랑끝 전술’로 김정일을 ‘고난의 행군’으로 몰아라

현재 북경에서 열리고 있는 6자회담에서 북한이 플루토늄 생산을 위한 영변의 5MW 원자로를 폐쇄(shut down)하고 IAEA(국제원자력기구)의 사찰을 받는 대가로 북한에 에너지 제공 등을 주고받는 것을 내용으로 하는 합의문 작성에 들어간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크리스토퍼 힐 미국측 수석대표는 “우리는 핵시설 ‘동결’(freeze)에 관심이 없다”고 잘라 말하며 “우리의 관심은 플루토늄 생산 시스템을 다루는 것이며, 핵 폐기를 향해 나아가는 것”이라고 말했다.

듣기에 따라서는 북한의 핵시설 폐기에 대한 강한 의지를 과시하는 듯하지만, 6자회담의 결말은 내용적으로 김정일의 완승으로 끝나지 않을까 걱정된다.

돌이켜 보면 북한은 2002년 10월 제2차 북핵위기의 시작 이래, 핵보유 선언, 미사일 발사, 핵실험 그리고 8~10개의 핵무기를 ‘사실상’ 보유하게 되었고, 반면에 미국은 지난 4년간 행정부 내의 강경파와 협상파간의 오락가락 행보 끝에 아무 수확도 없이 다시 출발점에 서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이 얼마나 우스꽝스럽고 한심한지는 2002년 당시 미국은 북한이 비밀리에 우라늄을 고농축하고 있다는 이유로 중유제공 중단과 함께 KEDO의 경수로 건설을 중단시켰고, 이제 4년이 넘게 지난 지금 북한의 우라늄 농축프로그램은 언급조차 하지 않고, 힐의 발언처럼 “플루토늄 생산시설”만이 논의의 대상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미국은 2002년에 농축우라늄 문제는 왜 꺼내서 이후 북한이 핵실험과 10개의 핵무기를 소유하도록 만들어 놓게 하고, 이제 와서는 농축우라늄은 말도 못 꺼내면서 지난 4년간의 북한의 핵 수확물을 폐기하겠다고 협상을 하고 있는가?

북한의 우라늄 농축프로그램이 함께 제거되지 않는 한 핵폐기가 빈 말에 불과함은 너무나 명백하다. 게다가 이번에 줄 ‘당근’에는 경수로 포함까지 거론되고, 남한이 약속한 전기 200만KW에 해당하는 에너지 제공은 물론, 미국과 북한간의 관계 정상화, 한반도 평화협상 등 그동안 북한이 집요하게 요구하던 것을 도매금으로 얹어 줄지도 모르는 형편이 되었다.

김정일 협상전술에 그대로 끌려가

왜 이런 일이 벌어진 것일까?

부시행정부는 핵동결에서 출발한 제네바 합의가 근본적으로 잘못되었다고 ‘옳게’ 판단하였다. 그리고 북한이라는 불량정권이 핵을 테러단체에 팔아넘길 수도 있다는 생각으로 핵폐기를 목적으로 북한을 압박해야 한다는 것도 올바른 판단이지만, 한국과 중국이 북한을 두둔하면서 압박의 효과를 무력화시킨 것이 미국의 입지를 크게 약화시킨 것도 사실이다.

선제공격도 불가능하고 대북경제 압박도 효과가 없는 현 상황 하에서, 미국이 원하는 “완전하고 검증가능하고 되돌이킬 수 없는 핵폐기(CVID)”가 협상을 통해서는 더 이상 불가능하다면, 미국은 ‘협상’의 의미를 다르게 해석해야 한다.

즉 ‘협상’은 김정일의 예상을 뒤엎는 수단으로만 의미를 지닌다는 말이다. 바꿔 말해 6자회담은 기본적으로 심리전의 하나라는 점을 이해하고 북한을 외부의 압박이 아니라 내부에서 발생하는 압력으로 굴복시켜야 하는 것이다.

심리전에서는 기가 꺾인다거나 지친 쪽이, 그리고 자기가 원하는 것에 집착하여 상대방의 요구에 속수무책인 쪽이 지는 것인데, 유감스럽게도 미국이 바로 지금 이런 상황에 처해 있다. 반면에 김정일은 미국이 핵폐기를 바라지만, 그것이 ‘핵폐기 약속’이라는 말로 주어질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일단 미국은 ‘말’이라도 얻기를 바란다는 점을 정확히 알고 있으며, 또 미국이 꺾일 것이라고 확신하는 것이다.

상대방의 약점은 항상 상대방의 확신과 바라는 바에 있는 법이다. 특히 전체주의 체제인 김정일 정권의 아킬레스 건은 수령 김정일의 예언이 맞아 떨어지지 않을 경우이다. 정치철학자 한나 아렌트에 의하면 전체주의 체제는 조직폭력배를 닮았다. 이런 집단은 법치주의와 같이 체제에 의해 유지되는 것이 아니라 항상 두목 개인의 능력에 좌우 되고, 두목의 예상이 지속적으로 빗나갈 경우 조직이 내부에서 흔들리는 것처럼, 수령 김정일의 예언이 지속적으로 빗나갈 경우 북한체제의 핵심부에 내압이 발생할 것이다.

국방위원장 김정일은 권력의 중심을 1998년 당에서 군으로 넘기는 선군정치를 통해서 이른바 강성대국을 만들겠다고 호언장담을 하였다. 정상국가의 경우 군사력 강화는 돈을 쓰는 것이지만 북한은 군사력 강화를 통해서 돈을 벌겠다고 공언한 것이다. 즉 핵개발의 여러 목적 중 하나가 외부로부터 돈을 갈취하는 데에 있고, 김정일은 측근들에게 핵이 돈을 벌어줄 것이라고 강조하고 다녔다. 그런데 지금 미국은 정확히 김정일의 예언을 실현시켜 주는 방향으로 나가고 있는 것이다.

북한은 플루토늄에 관한한 핵폐기를 약속할 것이고 이 약속에 많은 조건을 요구할 것이 분명하다. 그러나 북한은 외부로부터의 단물은 빨겠지만 핵은 절대로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이처럼 목돈 벌기에 좋은 수단을 버린다는 것은 폭력조직배에게 갈취의 원천인 폭력을 포기하라는 것과 동일하기 때문이다.

나아가 김정일은 플루토늄의 폐기 약속을 지키지 않았음이 들통 나더라도 미국이 다른 뾰족한 제제수단을 갖고 있지 않음을 너무나 잘 알고 있다. 지난 4년이 바로 그 증거이다. 설사 약속을 지킨다고 해도 우라늄 농축은 그대로 김정일의 호주머니 속에 남아 있는 것이다. 즉 핵이 무용지물이라는 점이 밝혀지지 않은 한 북한은 핵을 포기하지 않을 것인데, 지금 6자회담은 핵이 매우 유용하다는 점을 증명하고 있다. 간단히 말해 ‘당근과 채찍’이라는 공식은 실패했다.

부시행정부는 김정일의 핵공갈에 넘어가지 않겠다고 수없이 공언하였다. 그러나 선제공격도 치명적 외부압박도 불가능한 상황 하에서 공갈에 넘어가지 않는 방법은 성급한 결과보다 원칙을 지키는 것이다.

농축 우라늄을 포함한 모든 핵의 폐기가 불가능하다면 북한을 내부에서부터 체제위협의 압력이 발생하도록 김정일을 초조하게 만드는 방법 이외에는 없다. 아마도 지금 승리가 목전에 도달하였다고 생각할 김정일에게 ‘고난의 행군’이 다시 시작되었음을 알려줄 벼랑끝 전술은 이제 미국이 쓸 차례가 되었다.

소셜공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