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징 남북-북미 수뇌회동 주목

전 세계 100여 개국의 정상들이 모이는 베이징(北京) 올림픽 개막식이 꽁꽁 얼어붙은 남북관계에 훈풍을 몰고올 기회가 될 수 있을까.

청와대 핵심관계자는 3일 이명박 대통령이 베이징 올림픽 개막식에 참석하기 위해 8∼9일 베이징에 체류하는 동안 두차례 정도 북한의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과 접촉할 가능성이 있다고 전했다.

북한의 실질적 최고 지도자는 물론 김정일 국방위원장이지만 김영남 위원장도 북한 헌법상 수반으로, 김정일 위원장 다음의 `2인자’로 적잖은 무게감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이 대통령이 김영남 위원장과의 자연스럽게 접촉하는 기회에 현안인 금강산 사건은 물론 남북관계에 대해 대화를 나누고 이 과정에서 뭔가 접점을 찾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것이 외교가의 전망이다.

이 대통령과 김영남 위원장간 첫번째 접촉은 중국의 후진타오(胡錦濤) 주석이 8일 주최하는 각국 정상 초청 오찬에서 이뤄질 전망이다.

청와대 관계자는 “후 주석의 초청 오찬에 이 대통령과 김 위원장이 나란히 초청받았으며 같은 테이블에 좌석이 배치됨으로써 자연스럽게 남북한 현안을 논의할 가능성이 높다”고 밝혔다.

통상 1시간 이상 진행되는 중국식 정상급 의전오찬을 감안하면 이 대통령은 통역이 필요없는 김 위원장과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많은 ‘귀속말 대화’를 나눌 수 있다.

문제는 재량권이 제한된 김영남 위원장이 이 대통령의 대화에 얼마나 호응하느냐다. 특히 금강산사건과 관련해 3일 북한측이 금강산내 불필요한 남측 인원 추방 등 강경한 입장을 밝히고 나선 것을 고려하면 이 대통령이 금강산 사건에 대해 말문을 열더라도 김영남 위원장이 호응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하지만 민간인 관광객 피살 사건에 대한 북한의 부담감도 적지 않은 만큼 김영남 위원장이 김정일 위원장의 지시에 따라 ‘안타까운 일이다. 원만한 해결책을 찾아보자’는 정도의 반응을 보일 경우 금강산 사건의 해결 가능성은 급속히 커질 수 있다.

이와 함께 냉각된 남북관계와 관련해 이 대통령이 솔직한 남측 입장을 설명하고 이에 북측이 최소한 경청을 하게 될 경우에도 상당한 파장이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두번째 접촉은 베이징 올림픽 개막식에서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8일 저녁 8시8분에 맞춰진 올림픽 개막식이 열리는 베이징 올림픽 주경기장 귀빈석에는 전세계 정상들이 모두 한자리에 모인다.

각국을 대표하는 정상들이 한자리에 모인 만큼 자연스럽게 인사를 나누고 친분을 과시하는 화려한 이벤트가 벌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얼마든지 계획되지 않은 돌발적인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는 얘기다.

따라서 오찬 자리에서 충분한 대화를 나눈 이 대통령과 김영남 위원장이 의기투합할 경우 개막식에서 ‘의미있는 장면’을 연출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물론 반대의 경우 냉랭하고 어색한 분위기가 조성될 수 있다. 일각에서는 이 대통령이 적극적인 제스처를 취하더라도 김영남 위원장이 이를 껄끄럽게 여겨 철저하게 피하는 모습을 보일 것이라는 관측도 있다.

정부 소식통은 “올림픽이라는 행사의 취지를 감안할 때 어떤 경우에도 이명박 대통령이 김영남 위원장을 피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면서 “기왕이면 좋은 취지의 대화를 할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하는 것이 중요하며, 각 상황별로 사전 대책을 강구하고 있다”고 말했다.

외교소식통들은 남북 수뇌회동에 못지 않게 김영남 위원장과 조지 부시 미 대통령의 접촉 가능성에도 주목하고 있다.

특히 김영남 위원장은 정통 외교관료 출신으로, 외국 인사들이 평양을 찾을 때 자주 접견하고 영어에도 능통해 부시 대통령과의 대면을 어색해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게다가 최근 북.미 관계는 6자회담에서 핵문제 진전을 바탕으로 매우 우호적인 협의채널을 유지하고 있어 북한측이 부시 대통령과의 접촉을 반길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두 사람간 만남이 성사되면 2000년 10월 조명록 북한 국방위원회 제1부위원장(인민군 차수)이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특사자격으로 빌 클린턴 당시 미 대통령과 회담한 이후 최고위급 접촉이다.

외교소식통은 “베이징 올림픽을 계기로 다양한 만남이 마련돼 최근의 남북관계와 북미 관계의 상황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기회가 될 것”이라면서 “이 과정에서 주최국 중국의 배려가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는 만큼 중국과의 협의에 만전을 기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베이징 올림픽 개막식에는 100여개 국가의 정상급 지도자들이 참석하는 것으로 알려져 각국 정상들간 활발한 교류가 펼쳐질 것으로 예상된다.

이명박 대통령과 부시 미 대통령, 북한의 김영남 위원장 외에도 후쿠다 야스오(福田康夫) 일본 총리,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총리, 고든 브라운 영국 총리, 니콜라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 스티븐 하퍼 캐나다 총리, 케빈 러드 호주 총리 등이 개막식 참석을 확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초 80여개국 정상들이 참석할 예정이었으나 최근 아프리카 등에서 20여개국 정상들이 참가를 요청해와 참가 정상들의 수가 크게 늘어났다는 후문이다./연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