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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핵 폐기를 위한 제5차 6자회담 3단계 회의가 ‘9∙19 공동성명 이행을 위한 초기조치’ 합의문을 채택하고 13일 막을 내렸다. 이번 회담은 9∙19 공동성명 이후 17개월 만에 핵폐기 실행의 첫걸음을 뗐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 ‘2∙13 베이징합의’ 무엇을 담았나? = 북한이 초기단계 이행조치로 60일내 핵시설에 대한 ‘폐쇄(shutdown)’ 봉인’(sealing)조치를 취할 경우 중유 5만t을 우선 지원하기로 했다. 북한이 ‘불능화’(disabling)조치 단계로 진전 하면 95만t 규모의 에너지와 인도적 지원을 추가로 제공한다.
합의문 대로라면 북한은 60일 이내에 영변 5MW 원자로와 방사화학실험실 등 5개 핵시설을 우선 폐쇄하고, 2003년에 철수한 IAEA 감시단의 복귀를 보장해야 한다. 이 조치가 취해지면 한국이 중유 5만t을 우선 지원하게 된다.
북한은 핵시설 폐쇄 조치와 함께 그동안 알려지지 않은 핵 시설을 포함한 북한 내부에 있는 모든 핵프로그램에 대해 투명하게 신고해야 한다. 그러나 합의문은 모든 핵시설과 프로그램, 핵무기에 대한 신고를 의무화 하지 않고 추후 협의해 처리하기로 했다. 사실상 폐쇄 다음 단계가 핵목록 신고가 된다는 의미다.
북한이 핵시설 폐쇄하면 이후 관련 핵시설에 불능화 조치에 들어가게 된다. 이 부분도 합의문에 구체적인 시한과 내용이 언급돼있지 않다. 실무그룹에서 구체적인 논의가 가능하다. 북한이 불능화 조치에 돌입하면 나머지 5개국은 ‘상응 조치’로 중유 95만t 규모의 경제 및 에너지 지원을 시작한다.
북한의 이행조치에 따른 대북 지원은 자국민 납치문제로 빠진 일본을 제외하고, 한국을 비롯해 미국∙중국∙러시아가 평등과 형평의 원칙에 기초해 분담하기로 했다.
합의문 작성 30일 이내에 ▲한반도 비핵화 ▲대북 에너지·경제 지원 ▲동북아 다자안보협력 ▲북·미관계 정상화 ▲북·일관계 정상화 등 5개 워킹그룹을 구성키로 했다. 이 가운데 한반도 비핵화는 중국, 대북 에너지·경제 지원은 한국, 동북아 다자안보협력은 러시아가 각각 워킹그룹 의장을 맡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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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베이징 합의’의 성과와 한계 = 닷새 동안 긴박하게 돌아갔던 이번 6자회담에서 도출해낸 ‘2∙13 베이징합의’의 특징은 무엇보다 ‘행동 대 행동’의 원칙을 명시하고, 이 원칙에 따라 단계적으로 공동성명을 이행하기 위한 상호 조치를 취한다는 데 있다.
2005년 9∙19 공동성명이 ‘말 대 말’ 합의였다면 이번 합의는 북핵 폐기 이행을 위한 ‘행동 대 행동’의 원칙을 규정한 것이다. 이 원칙은 ‘등가성’과 ‘동시 이행’을 규정한 것으로 서로가 주고 받을 것을 분명하게 제시한 이후 동시에 행동으로 옮긴다는 의미다.
또한 부시 행정부가 94년 ‘제네바합의’의 주요 실패 원인으로 지적했던 핵 시설에 대한 ‘동결’(freeze) 조치의 한계성을 뛰어 넘은 ‘폐쇄’와 ‘불능화’ 조치를 합의문에 담은 것은 진일보한 성과로 해석할 수 있다.
‘동결’의 경우 핵 시설에 대한 일시적 가동 중단으로 북한 기술자들이 언제고 핵 시설에 대한 접근이 가능했다. 그러나 ‘폐쇄’는 핵 시설에 대한 접근∙수리를 원천 봉쇄하겠다는 의미다. 그러나 마음만 먹으면 언제고 약속을 파기하고 재가동 할 수 있다는 한계가 있다.
북한이 불능화 조치로 이행하지 않는다면 재가동이 가능하다는 측면에서 ‘폐쇄’는 제네바 합의의 ‘동결’과 큰 차이가 없게 된다.
핵시설 불능화 조치는 핵심 부품 제거나 원자로에 시멘트를 주입해 재가동이 불가능한 상태로 만드는 것이다. 그러나 그 시기와 내용을 명시하자는 미국의 요구를 북한이 거부하고 있어 불능화가 이행될지는 미지수다. 북한이 불능화 단계에서 미국과 주변국에 추가 요구를 할 가능성이 있다.
불능화까지 진행될 경우 북한이 단시간 안에 플루토늄을 추출할 수가 없기 때문에 북한이 핵보유고를 늘릴 수 없다. 이 때문에 북핵 위기가 완화될 수 있다는 지적이 있다. 그러나 북한이 기존해 보유한 플루토늄과 핵무기만으로도 핵보유국 지위를 주장할 수 있기 때문에 원자로 불능화 조치가 완전한 핵폐기의 전제가 되지는 못한다.
이미 노출된 영변 5MW 흑연감속로(원자로)와 재처리 시설, 건설 중인 태천 200MW 원자로 등 5개 시설의 경우 실제 이용가치가 떨어진다는 분석이다. 한마디로 투자 대비 수익성이 크게 떨어져 ‘폐쇄’ 조치를 취해도 북한으로서 밑지지 않는 장사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핵시설에 대한 조치와 함께 북한은 모든 핵시설과 프로그램, 핵무기 목록을 신고해야 한다. 이 모든 핵프로그램에 대한 신고는 내용과 절차에 대한 추가 협의가 필요한 상황이다.
핵프로그램 신고에서 북한과 주변국의 상당한 줄다리기가 있을 수 밖에 없다. 특히 고농축우라늄과 이미 만들어진 핵무기에 대한 신고 문제가 핵심 쟁점이 될 수 있다. 북한은 여전히 고농축우라늄 핵프로그램을 부인하고 있다.
북한이 핵무기 숫자를 정확히 신고할 경우 이는 완전한 핵폐기에서 중요한 진전이기 때문에 북한 스스로 핵 포기 결단이 있어야 가능하다. 아직까지 북한이 완전한 핵폐기를 추진하겠다는 의사를 밝힌 적은 없다.
합의문이 발표된 이후 북한 조선중앙통신은 “회담에서 각 측은 조선(북한)의 핵시설 가동 임시 중지와 관련해 중유 100만t에 해당한 경제∙에네르기(에너지) 지원을 제공하기로 했다”고 주장했다. 폐쇄가 아닌 임시중지라는 용어를 사용한 것이다. 벌써부터 해석이 달라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 미∙북, ‘베이징합의’ 배경 = 회담 초기부터 낙관론이 우세했다. 그러나 북한이 무리한 요구조건을 내세워 회담이 좌초할 가능성을 배제하지 못했다.
과거와 달리 미국과 북한이 이번 6자회담에 적극적으로 임한 이유에 대해 전문가들은 서로의 이해관계가 맞아 떨어졌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미국 부시 대통령의 경우 취임 초부터 북한을 이란∙이라크와 함께 ‘악의 축’으로 지목했고, 콘돌리자 라이스 국무장관도 북한을 ‘폭정의 전초기지’라고 비판하는 등 김정일 정권에 대한 근본적인 적대감과 불신을 표출하곤 했었다.
미∙북 직접대화를 요구하는 민주당의 줄기찬 비판에도 불구하고, 6자회담 틀을 벗어난 미∙북간 양자대화는 있을 수 없다고 맞섰다. 미국은 협상을 통해 당근을 제사하면서 BDA 금융조치와 유엔결의안을 주도해 북한을 압박하는 강온전략을 모두 사용했다.
그러나 임기를 2년 남기고도 북핵문제에 대한 구체적인 상과가 없자, 지난 6년간 북핵 문제는 해결하지 못하고 핵위기만 증대시켰다는 내외의 비판에 직면하게 됐다. 부시 행정부도 북핵 해결을 위한 구체적인 접근 필요성을 느끼면서 기존의 태도를 누그러뜨리기 시작했다.
미 국무부는 ‘2008 회계연도 업무보고’에서 내년 초까지 북핵 협상을 마무리하고, 핵무기에 대한 해체를 시작하겠다는 고 밝히기도 했다. 그 동안 줄곧 주장해온 ‘잘못된 행위에는 보상없다’는 원칙을 조용히 칼집에 넣어버렸다.
김정일 정권의 경우도 더 이상 6자회담을 외면하고 ‘벼랑 끝 전술’만을 고집하기에는 부담이 클 수밖에 없었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핵실험을 통한 위기국면을 계속 방치할 경우 외교적 고립과 제재 가속화라는 부담도 떠안아야 한다. 특히 북한에 우호적인 중국과 러시아가 급속히 미국으로 기울 가능성도 있다.
따라서 조건만 맞다면 북한이 초기조치 수준에서 얻을 수 있는 것이 많다고 판단한 듯하다. 영변 5MW원자로는 이미 핵무기를 보유 조건에서는 비용만 큰 고철덩어리 신세가 될 수 있다. 이러한 원자로 중단을 대가로 에너지 지원, 경제제재 해제, 미북 관계정상화, 테러지정국 해제, 일본과의 수교 협상 등을 얻어낼 수 있다면 북한에게 나쁠 것이 없다는 계산이다.
6자회담에서 일정한 진전을 이루지 못했을 경우 ‘6자회담 무용론’이 다시 제기될 가능성이 크고, 미국 내에서 북핵시설 폭격 등의 주장이 나온 것도 북한의 태도 변화를 불러온 요인이 될 수 있다.
북한 내부적으로는 심각한 ‘에너지난’이 실리적 선택을 재촉한 것으로도 보인다. 북한은 자체적으로 에너지 문제 해결을 위해 중소형 발전소를 여러 개 건설하고 있지만 근본적인 해결책이 되고 있지 못하다. 여기에 추후 남북관계가 진전돼 남측으로부터 쌀과 비료 등의 인도적 지원을 제공 받을 경우 북한이 얻는 수확은 더욱 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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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추후 남은 과제는? = 6자회담의 목적이 북한이 보유한 핵무기와 핵프로그램에 대한 완전한 폐기에 있는 만큼 이번 ‘베이징합의’는 북핵 폐기과정의 첫 걸음에 불과하며, 앞으로 넘어야 할 산이 첩첩산중이다.
우선 합의문 서명 이후 30일 이내에 개최하기로 되어 있는 5개의 ‘워킹그룹’이 얼마나 내실 있게 운영될 수 있을지 관심의 대상이 되고 있다. 합의문에서는 “한 워킹그룹의 진전은 다른 워킹그룹의 진전에 영향을 주지 않는다”고 명시했지만 워킹그룹 안에서 보다 북핵 폐기에 대한 세부적 논의가 진행되게 돼 있어 결코 쉽지만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이 워킹그룹의 논의가 진전을 이룰 경우 핵폐기 과정의 촉진제가 될 수 있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 북핵 협상을 좌초시킬 암초로 작용할 가능성도 크다. 북한이 핵협상을 진전시키지 않고 워킹그룹에 그 책임을 떠넘길 수도 있다.
합의문에서 불능화’ 조치가 어디까지 의미하는지에 대한 합의가 없었고, 모든 핵프로그램 신고에 있어 의무 신고가 아닌 ‘협의’로 규정한 것 등은 앞으로 워킹그룹 안에서 논란의 불씨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
또한, 지금까지 논의에 포함되지 않았던 ‘경수로’ 제공 문제는 하나의 거대한 절벽과 같다. 북한이 언제쯤 경수로 문제를 꺼내 들지가 6자회담 진전의 관건이 될 수도 있다. 미국은 모든 핵시설과 프로그램에 대한 폐기가 전제돼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합의문이 정한 로드맵에 따라 실제 ‘행동 대 행동’ 원칙이 지켜진다면 이에 따라 우리나라가 부담해야 할 비용도 만만치 않다.
정부가 지불해야 할 비용은 크게 ‘중유제공”200만kW 대북 송전”경수로 지원’ 등이 있다. 중유 제공은 5개국이 균등 분담했을 때 국제시세로 t당 300달러로 20만t의 가격은 약 6천만달러다. 수송비 등으로 10% 추가 비용이 든다고 하면 6천600만달러(620억원) 안팎의 비용이 들어간다.
2005년 9·19공동성명 당시 약속한 대북송전 비용도 막대하다. 우선 경기도 양주에서 평양까지 200㎞ 구간에 송전시설을 놓고, 변전소 등 변환시설을 건설하는데 총 1조5천억∼1조7천억원이 필요할 것으로 통일부는 추산했다. 경수로 가동시까지 지원한다면 10년간 운영비로 총 8조원 가량 투여된다.
신포 금호지구에 건설하다 중단한 경수로를 재활용할 시에는 35억달러가 추가로 필요하며 완전히 별개의 새로운 경수로를 지을 때에는 50억달러 정도의 비용이 든다. 제네바합의에 따라 70%를 우리가 부담하게 된다면 그 부담이 결국 국민들에게 고스란히 돌아오게 돼있어 ‘대북 퍼주기’ 논란은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