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MDL 지났나, 이렇게 쉬운 것을..

오전 11시26분 파주시 문산역. 56년 만에 다시 북녘땅을 향해 달리는 경의선 열차 `7435호’에 몸을 실었다.

플랫폼에 늘어선 수 많은 취재진과 시민들의 환송물결, 굉음을 내며 터지는 오색축포가 없었다면 북한행을 실감하지 못했을 법하다. 평소 한반도의 허리 아래만을 달렸던 새마을호 열차가 이번 행사에 그대로 사용됐기 때문이다.

열차 외관이나 내부 모두 낯이 익어 56년만의 북한 열차 여행이라는 흥분도 머릿속에는 있을망정 가슴까지는 아직 전해지지 않았다.

배정된 2호차 20번 좌석에 앉자 11시29분 열차는 문산역을 떠나 천천히 북쪽을 향해 출발했다.

다리 위, 언덕, 도로, 논밭, 아파트 베란다. 열차가 보이는 곳이라면 어디에서든 손을 흔드는 시민들을 볼 수 있었다.

옷깃에 반짝이는 `김일성 휘장’을 단 앞좌석 길동무도 가끔 손을 흔들며 답례했다. 북측에서 내려온 취재진 중 한 사람이었다.

약간의 어색한 시간이 흐른 뒤 길동무에게 말을 걸었다. 남쪽에 처음 와봤다는 그에게 “느낌이 어떠시냐”고 묻자 “그쪽이 느끼는 것과 똑같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열차는 몸으로 느낄 수 있을 정도로 천천히 운행됐다. 안전 때문이다.

김학태 한국철도공사 홍보실장은 “원래 새마을호 열차는 100㎞까지 속도를 낼 수 있지만 이번 행사에서는 평균 40㎞로 운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래서인지 여느 열차와 마찬가지로 가끔 덜컹거리기는 했지만 안전에 문제가 있다고는 느껴지지 않았다.

민통선을 지나면서 차창 밖 풍경에서는 사람들이 사라졌고 도라산역을 거쳐 남방한계선을 넘어서자 `차창 밖 풍경을 찍지 말라’는 당부가 주어졌다. 군사시설이 많기 때문인 듯하다.

비무장지대를 유유히 통과할 때 누군가 열차 진행방향의 오른쪽 숲을 가리키며 “저기가 바로 철마는 달리고 싶다는 주인공인 장단역 증기기관차가 있던 자리”라고 소개했다. 이 열차는 작년에 영구 보존을 위해 임진각으로 옮겨졌다.

`조금만 더 그 자리에 있었다면 자기를 대신해 북으로 달리는 열차를 볼 수 있었을 텐데’ 갑자기 옆 객차에서 노랫소리가 들렸다. 낮 12시18분 군사분계선(MDL)을 통과한 것을 축하하며 남측 인사들이 `우리의 소원은 통일’을 합창하는 소리였다.

`벌써 MDL을 지났단 말인가’. 분단의 상징인 MDL에는 눈에 띄는 어떤 표식도 없었고 넘는데 특별한 절차도 따로 없었으니 누가 미리 알려주지 않는다면 놓칠 수 밖에 없었다.

어쩌면 이것이 남북관계인 지도 모른다.

“이렇게 쉬운 것을 그동안 못했던 게 안타깝다”는 백낙청 6.15 공동선언실천 민족공동위원회 남측 상임대표의 말처럼 쉬운 듯 어렵고 어려운 듯 쉬운 게 남북관계니 말이다.

북방한계선을 지나니 반가운 풍경이 나왔다. 낮 12시30분께 도착한 판문역 뒤로 개성공단의 웅장한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점심시간이어서인지 수백 명의 근로자들이 공장 밖으로 나와 손을 흔들었다.

대부분 남측 사람인 듯 했으나 북측 근로자도 사이사이 끼어있는 것 같았다.

판문역에서는 열차가 멈춰선 채 간단한 통행 및 통관 검사가 실시됐다. 가끔 “가방 안에 뭐가 들어있냐’고 묻기는 했지만 육안 검사에 머물렀다. 도로를 이용해 개성을 드나들 때 꼼꼼히 짐을 뒤지는 것과 비교하면 훨씬 간소하게 이뤄졌다.

판문역을 지나자 북한 마을인 봉동리가 나타났고 드문드문 주민들도 보였다. 그들은 남측 열차가 신기한 듯 뚫어지게 바라봤지만 무표정이었고 손을 흔들지도 않았다.

북측의 한 인사는 “농번기 아니냐. 다들 바빠서 그렇다”고 말했고 다른 인사는 “시범운행인데 흥분할 일 있느냐”고 했다. 열차 시험운행을 바라보는 남북의 온도차가 느껴졌다.

열차는 손하역을 지나 오후 1시3분께 개성역으로 미끄러져 들어갔고 멀리서 소년복을 입은 학생들이 `조국통일’을 외치며 남측 손님들을 맞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문산에서 개성까지 고작 1시간30분 남짓 걸리는 철길을 56년을 돌아온 셈이다. 더 안타까운 것은 이렇게 철길이 뚫렸지만 언제 다시 올 수 있을 지 모른다는 것이다./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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