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마 민주화, 결국 군화발에 좌초할 것인가

8일 독일 정부는 버마 군사정부가 민중들의 민주화 요구 시위를 유혈진압하고 시위에 참여한 승려들과 시민들 체포, 구속한 것을 강력히 비난했다. 독일은 외무부 대변인 담화를 통해 군사정부가 민주화 운동을 계속 탄압할 경우 유럽연합(EU)의 제재에 직면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유엔 안전보장 이사회 15개 이사국도 8일 버마 군정의 무력진압을 비난하면서 군사무단통치를 종결하고 아웅산 수지 여사를 포함, 정치범과 구금자들에 대한 석방을 촉구하는 성명서 초안을 검토할 것으로 전해졌다.

국제사회의 이 같은 압박에도 불구하고 버마 군부는 뚜렷한 변화를 보이지 않고 있다. 현지에서 전해오는 소식들은 오히려 불법 구검과 폭행에 대한 것뿐이다.

최소 2천여 명의 시민들이 희생되었으며 군부의 탄압이 더욱 무자비한 방식으로 진행되었다는 것이다. 서방 국가들과 버마 반정부 단체는 승려를 포함해 군부가 체포한 사람들의 수가 최소 6천명에 이를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7일 영국 더 타임스는 희생자 수를 은폐하기 위해 버마 군부가 시신을 비밀리에 소각했다고 보도한 적도 있다.

지난 달 말, 시위가 걷잡을 수 없이 커져 가자 군부의 유혈진압은 속전속결로 이루어 졌으며 시위를 주도한 승려들의 사원까지 습격하여 수백명의 승려들을 연행하고 사원을 봉쇄하였다. 발포 명령과 함께 인터넷과 휴대폰 통화를 완전 차단하여 외부로 소식이 알려지는 것을 막았다. 휴교령과 계엄령으로 대학과 거리도 봉쇄되었다.

군부의 탄압에 버마의 반정부 시위가 과연 이대로 가라앉을 것인지 세계인들의 관심이 쏠려있다.

버마는 1988년 8월 8일을 기해 불같이 퍼져갔던 8888 항쟁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 당시도 군부는 시위대에 발포를 감행하였으며 약 3천명의 희생자가 속출하였다. 민중의 저항에 밀린 군부는 다당제 선거를 약속하였다. 1990년 5월 치러진 총선에서 반정부 세력은 압승하였다. 그러나 군부는 정권 이양을 거부한 채 야당을 탄압하였으며 1992년 군부의 권력을 승계한 탄 슈웨 휘하의 군부가 의회도 없는 군사무단통치를 지속해 오고 있다.

탄 슈웨는 2005년 12월 수도를 해안가의 양곤에서 400km 내륙 밀림 속으로 옮겼다. 미국이 공격할지도 모른다는 자기 두려움에 최면이라도 걸린 듯, 그것도 꼭두새벽에 마치 군사작전을 방불케 하듯 ‘수도이전작전’을 감행하였다. 노구의 탄 슈웨는 점성술사를 옆에 두고서 점괘에 따라 큰 일을 결정한다고 전해진다. 기상천외한 ‘수도이전작전’도 점술가의 점술에 따른 것이었다고 한다.

탄 슈웨는 새로 수도가 된 핀마나를 ‘왕도(王都)’라는 뜻의 ‘네이피도’라고 개명하였다. 이 새 수도를 건설하기 위한 자금을 충당하기 위해 하룻 밤 사이 천연가스를 5배, 경유를 2배 올리는 유류비 인상을 단행하였고 이것이 기화가 되어 도탄에 허덕이던 민중들이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이번에 거리로 나서게 되었던 것이다.

탄 슈웨는 자신의 딸의 결혼식에 30만 달러를 소요하고 선물비로만 5000만 달러를 써버리는 비행을 서슴지 않음으로써 가난과 핍박에 시달리던 민중의 가슴에 분노를 촉발시켰다. 권력집단의 무능부패 사치향락의 이면에서 한 때 ‘아시아의 보석’이라 불리웠던 버마의 경제 상황은 1인당 국민소득 200달러의 세계 최빈국 처지로 전락해 갔다.

1988년 8888 항쟁이 대학생들이 주도가 된 민중봉기였다면 이번 시위 행렬은 버마의 승려들이 이끌었다. 버마는 불교 국가이다. 버마인 약 90%가 불교도이다. 민중들의 정신적 지주인 승려들이 반정부 시위에 떨쳐나섰다는 것은 그 무게와 의미하는 바가 크다. 이번 시위를 ‘샤프란(선황색)’ 혁명의 성공 여부로 주목하는 것은 승려들의 승복이 선황색인 데서 따온 것이다.

버마 군부의 강경대응은, 과연 민중들의 투쟁에도 불구하고 군부가 총칼로 무자비하게 압살하고 학살을 자행한다면 민중 봉기에 의한 민주화는 어찌 달성될 수 있을 것인가 의문을 갖게 한다.

버마 민주화 활동가들에게 한국의 민주화 과정은 닮은 면이 있다. 한국도 80년 광주에서의 피의 희생이 있었으며 그 고난을 딛고 87년 민주화 항쟁의 불꽃을 지펴 올린 끝에 민주화를 달성해 내었던 것이다.

1990년 총선에서 승리하였으나 군부로부터 정권을 이양받지 못했던 버마 민족민주동맹(NLD)의 성원들은 이번 시위가 결코 쉽사리 수그러들지 않을 것이며 이번이 아니면 버마의 민주화는 영영 이뤄질 수 없을 것이라 결연히 외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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