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선엽 “내가 물러서면 나를 쏴라”

6.25전쟁에 대해 아는 것은 부끄럽게도 장동건, 원빈이 나온 영화 ‘태극기 휘날리며’ 수준이다.


6.25전쟁과 관련해 알고 있던 것들은 지극히 단편적이고 편협하다. 북한의 갑작스런 공격으로 시작된 전쟁, 미군의 과잉 폭격으로 발생한 민간인 피해, 전쟁 당사국인 한국이 참여하지 않은 정전협정…


젊은 세대가 영화에서 6.25전쟁의 기억을 끄집어 내는 건 우리 사회가 6.25전쟁을 반공이데올로기의 한 부분으로 매몰시킨 결과 때문은 아닐까?


20대에게 올해 60주년을 맞는 6.25전쟁은 독립운동, 임진왜란 보다 먼 이야기처럼 느껴지는게 현실이다.


6.25전쟁 하면 떠올리는 인물도 ‘맥아더 장군’뿐이다. 국군1사단장으로 결정적인 승리를 여러 차례 만들어 전쟁 국면을 바꿨던 ‘백선엽’ 장군의 이름을 아는 이는 많지 않을 것이다.


백선엽 장군의 6.25전쟁 회고록 『내가 물러서면 나를 쏴라』(중앙일보사, 2010.06)는 6.25전쟁의 전 과정을 상세히 담고 있다. 전쟁의 참혹성을 알게되면서도 글이 긴장감 있게 전개될 때면 흥미진진해지기도 한다.


책은 6.25전쟁 발발→다부동 전투→인천상륙작전→서울 수복→운산전투→1·4후퇴와 반격에 이르기까지 1,128일간 전장에서 한국군이 어떻게 싸웠고, 승리하고 패배했는지 상세히 기록했다.


그가 곁에서 본 미군, 미군 장교들에 대한 평가도 하고 있다. 백 장군이 관찰한 북한군과 중공군의 장점·약점에 대한 내용도 눈여겨 볼만하다.


“큰일났다! 적들이 이미 기차로 개성역에 도착했다!”


전쟁은 갑작스럽게 일어났다. 1950년 6월 25일 일요일 아침, 교회당 종소리가 은은하게 울릴 정도로 서울의 거리는 여느 때와 다를 게 없었다. 하지만 인공기를 앞세우고 38선을 넘은 북한군에 한국군은 이미 개성까지 빼앗긴 상황이었다. 허무하게 무너지는 전선, 긴박한 상황 속에서 군화를 뚫고 나온 못이 발뒤꿈치를 파고들어도 고통을 몰랐다는 백 장군의 고백은 한국군의 상황이 얼마나 참담했는지 느끼게 했다.


백 장군은 6.25전쟁을 준비가 충실한 적 앞에서 준비가 없던 대한민국이 경황없이 맞은 전쟁이었다고 말한다. 실제로 책 곳곳에는 이를 증명하는 일화를 소개하고 있다.


적의 침공에 대비해 만든 한국의 방어 계획서는 전쟁 발발 3개월 전에 작성됐다. 작전을 짤 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 지도이지만 한국군에게는 제대로 된 지도가 없어 초등학교 교실 벽에 걸린 ‘대한민국 전도’를 앞에 두고 작전을 짜야 했다.


반면 북한은 치밀한 준비 끝에 남침을 했다. 미 국무부는 특수부대를 조직해 문서들을 수집하는 미군 ‘문서수집반’을 한국에 파견했다. 그들이 평양 김일성의 집무실에서 발견한 남침 계획서에는 한국의 각 행정 소재지의 군 단위까지 1950년도의 농작물 예상 수확량이 세밀하게 기록돼 있었다고 책은 전한다. 또 한국에서 거둬갈 식량 규모까지 계산한 상태였다고 한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군은 북한군에 처참히 무너졌다. 패배와 후퇴의 연속이었다.


임진강에 이어 한강까지 내주었다. 이어 낙동강까지 넘게 되는 상황까지 이르렀다. 더 이상 넘을 강이 없게 된 것이다. 이 지역까지 내줘 제주도까지 쫓겨 가면 미국은 전략적 가치를 잃은 한국을 버릴 수 있는 상황이었다.


절체절명의 순간 한국군과 미군은 연합작전을 펼치며 사력을 다해 싸웠다. 그리고 북진할 수 있는 교두보를 만들어냈다. 이것이 한국의 최후의 보루를 지켜낸 다부동 전투였다.


다부동 전투의 중요성만큼 책은 당시 전투 전개 상황을 상세하게 담고 있다. 대구 북방 25km에 위치한 다부동은 대구방어에 있어 가장 중요한 전술적 요충지였다. 다부동이 뚫린다면 대구와 부산 함락은 시간 문제였다.


때문에 북한군은 3개 사단의 약 21,500명의 병력과 T-34전차 약 20대 및 각종 화기를 동원해 필사적으로 공격해왔다. 아군 8,000명은 적과 수류탄, 총검이 난무한 육박전을 치르면 일진일퇴를 거듭했다.


전투가 치열했던 만큼 희생자도 많았다. 3~4시간 훈련을 받은 뒤 보충된 신병들이 다음날이면 80~90%가 사라졌다. ‘시체가 산처럼 쌓이고, 피는 하천을 이뤘다’, ‘시체가 풍기는 냄새로 숨을 쉴 수도 없었다’고 백 장군은 기록한다. 이들의 땀과 피로 이뤄진 희생이 없었다면 지금의 한국은 또 다른 운명의 길을 걷고 있었을 것이다.


책장을 한 장씩 넘길 때마다 전쟁당시 중공군과 미군에 대해 지나치게 단순하게 생각하고 있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중공군하면 압도적인 병력을 앞세워 정면으로 공격하는 인해전술을 떠올린다. 하지만 백 장군은 깊은 밤 어둠 속에서 피리를 불며 접근해오는 중공군은 매복과 기습, 심리전 등에 강했다고 서술한다.


미군이 독단적으로 전쟁을 수행해 한국에 많은 피해를 남겼을 거라는 생각도 잘 못된 것임을 알 수 있다.


한국군의 급식 상태가 좋지 못하다는 보고에 맥아더 장군은 맛깔스런 음식들이 들어있는 식량 상자를 대량으로 보급했다. 프랭크 밀번 장군은 당초 작전계획을 수정해 평양 진격시 국군 1사단을 선봉에 설 수 있도록 했다. 백 장군은 국군 1사단이 평양으로 진격할 때 미군 고사포단, 전차대대의 부대원들이 그의 지휘를 잘 따라줬다고 말한다.


6.25전쟁에 대해 아는게 별로 없다. 때문에 6.25전쟁 과정을 소상히 담은 기록만으로 이 책은 의미가 크다. 학교에서도 6.25전쟁 이야기를 접할 수 없었던 젊은 세대들에게 이 책은 6.25전쟁을 올바로 이해할 수 있고, 전쟁이 가진 의미에 대해 거듭 생각할 수 있게 만들기 충분할 것이다.


60년이란 세월이 흘러 이제 그들은 노병이 되었고 영혼을 남긴 채 이 땅에서 하나, 둘 사라지고 있다. 그들의 희생이 없었다면 오늘을 살아가고 있는 젊은 세대에게 풍요로움도 자유도 없었을 것이다.


6.25전쟁 영웅들의 피와 땀, 애국심 그리고 책임감으로 지켜진 대한민국을 위해 앞으로 젊은 세대들이 어떻게 나아가야 할 지 백선엽 장군의 회고록『내가 물러서면 나를 쏴라』에서 해답을 찾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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