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두산 회담, 남·북·중·일 다자회담으로 만들자

북한은 17일 “백두산 화산 공동연구와 현지답사, 학술토론회 등 협력사업을 추진시켜 나가기 위한 협의를 진행하자”는 지진국장 명의의 전통문을 우리측에 보내왔다. 동일본 대지진 사태로 인해 지진·화산에 대한 공포심리가 커지고 있는 상황을 이용해 천안함 폭침과 연평도 도발 등 껄끄러운 의제를 비켜갈 수 있는 새로운 남북회담 창구를 만들겠다는 포석으로 보인다. 3대 권력세습에 명운을 걸고 있는 북한이 경제난과 국제적 고립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남한의 지원이 유일 해법이다.


한편으로는 60년간 백두산을 중심으로 조작돼 온 김일성-김정일 일가의 우상화 조형물과 신화(神話)가 실제로 훼손될 수도 있겠다는 위기감이 북한 권력층을 자극했을 가능성도 엿보인다. 데일리NK 내부 소식통에 따르면 북한은 올 해 초부터 당 중앙위 비서국 명의로 백두산 화산폭발과 관련된 대응책 마련을 하부에 지시했다. 김정일의 출생지를 러시아 하바로프스크에서 양강도 삼지연 ‘백두밀영’으로 조작하면서까지 ‘백두산 정기’를 강조하고 있는 북한의 입장에서 백두산 화산 분출 가능성을 마냥 무시하긴 어려웠던 모양이다. 


백두산 관련 회담을 요구하는 북한의 노림수는 뻔하다. 우선 백두산 화산 연구를 핑계로 각종 물자 지원을 요청할 것이다. 백두산 관측과 관련된 남한의 지원은 내부 주민 선전에도 명분을 가질 수 있다. 백두산에 위치한 ‘김정일 출생 사적지’를 유지·보수하는데 “남조선도 동참했다”고 선전하면 그만이다. 현재 한국사회를 뒤덮고 있는 지진 및 화산폭발에 대한 두려움에 ‘민족의 영산’으로서 백두산에 대한 애정을 버무릴 수 있다면 ‘조건없는 남북대화 재개’ 여론을 불러일키는 호기로 활용할 수도 있다.


북한은 백두산 관련 회담을 포괄적인 대북지원을 요청하는 비선으로 활용할 수도 있다. ‘천안함· 연평도 사태에 대한 선(先)사과 및 비핵화 진정성 확인’이라는 남한 정부의 ‘커트라인’을 우회하면서 대남 압박과 회유의 장으로 활용할 것이다. 


정부는 일단 북한의 제안을 비군사적·비정치적 의제로 간주하고 회담을 추진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고 있다. 그러나 정부는 북한의 의도를 정확히 분석하고 그들의 정략적 의도에 휘말리지 않을 역제안을 충분히 마련해 가야 한다.


백두산 회담을 순수한 학문적·기술적 교류로 자리매김하기 위해서 중국과 일본의 지질학자와 정부 관계자들이 참여하는 다자회담으로 확대해가는 것도 검토해 볼 만 하다. 백두산 화산 폭발 문제는 남북간의 문제만은 아니다.  중국 역시 분명한 이해관계 당사자이며, 잠재적 가능성을 놓고 볼 때 이미 엄청난 지진 피해를 겪고 있는 일본 역시 논의의 장에 합류할 수 있다.


특히 중국은 오래전부터 백두산 정상에 국가지진국 산하 ‘천지화산관측소’를 두고 백두산의 화산성 지진을 관측 해 왔다. 백두산의 화산 폭발 시 랴오닝(遙寧省)과 지린성(吉林省) 일대의 홍수 피해 정도를 조사하는 수준까지 연구가 진척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사실 북한이 ‘자연재해 예방’이라는 순수한 의도로 백두산을 연구하고자 한다면 먼저 중국과 학술 교류를 갖는 것이 수순일 것이다.


북한의 전방위적 대화공세에 정부가 ‘무조건 거부’ 입장으로 나설 필요는 없다. 회담의 성격에 맞게 원칙을 갖고 준비하면 된다. 백두산 회담을 중국과 일본이 참여하는 다자 기술회담으로 운영하는 것은 ‘이명박 정부가 남북관계 파탄의 주범’이라는 일부의 억지주장을 불식시키는데도 효과적일 수 있다.   

소셜공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