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낙청의 ‘안병직-박세일 비판’ 무슨 내용인가?

▲백낙청 서울대 명예교수

뉴라이트와 좌파 민족주의 진영 지식인들간의 사상전이 본격화 되고 있다.

좌파진영의 사상적 대부로 통하는 백낙청 서울대 명예교수는 ‘창작과 비평’ 최근호를 통해 “한반도의 선진화와 통일은 병행돼야 한다”는 뉴라이트 진영의 ‘대한민국 선진화론’을 비판한 바 있다.

이에 대해 뉴라이트 재단 이사장인 안병직 서울대 명예교수는 27일 뉴라이트 사상·이론지 시대정신 겨울호에 ‘허구로서의 분단체제’라는 논문을 게재해 백낙청 교수의 ‘분단체제론’이 논증에 실패한 설교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백 교수는 ‘남남 갈등에서 한반도 선진사회로―어디가 중도며 어째서 변혁인가’란 기고문을 통해 분단체제에 대한 근본적인 성찰이 빠진 선진화론은 논리적 비약이자 ‘수구회귀’라고 주장했다. 다음은 백 교수가 지난 17일 계간 ‘창작과 비평’ 겨울호를 통해 안 교수를 비판한 논문을 요약한 것이다.

[관련기사 ①]

“안병직, 백낙청 ‘분단체제론’ 정면비판”

[관련기사 ②]

“”백낙청의 ‘분단체제론’은 이것이 허구다” 논문 요약 “

[기고문 요약]

◆“안병직의 ‘선진화론’은 비현실적 단정”=안병직 교수는 “현재 한국현대사의 기본과제로 인식되고 있는 선진화와 통일 중에서 선진화가 배타적 국정과제임을 올바로 인식하고 6∙15남북공동선언을 폐기해야 한다”고 주장한 바 있는데, 공동선언 발표와 이에 대한 국제사회의 전폭적인 지지가 아니었던들 한반도의 전쟁위협이 고조되고 북의 모험주의적 행동이 강화되며 서해교전 같은 충돌사태만 벌어져도 주식시장이 폭락하고 외국자본이 철수하는 ‘제 2의 IMF사태’를 초래하기 십상이지 않았겠는가.

역사에서 실제로 일어나지 않을 일을 가정하는 것이 논증의 효력을 갖지는 못하지만, 한반도의 긴장이 다시 높아진 현시점에서도 남과 북, 미국 등 주요 당사자들이 모두 6∙15공동선언과 9∙19공동성명의 유효성을 인정하고 있기 때문에 대한민국의 국제신인도가 그나마 유지되고 한국경제가 지속적으로 성장할 수 있다는 것은 상식이다.

안 교수는 “선진화는 국제협조노선으로써만 수행될 수 있고, 통일은 김정일체제를 전제로 하는 한 자주노선으로써만 추구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이 두 과제는 서로 배척적이다, 그리고 통일은, 김정일체제가 붕괴된다고 하더라도 남북간에 이질화가 너무 심하게 진행되었기 때문에 당장 수행될 수 있는 과제가 아니다. 이 때문에 선진화가 한국이 당장 추구할 수 있는 유일한 국정과제인 것이다”고 거듭 강조했다.

나는 안교수를 비롯해 많은 극단적 북한 비판자들이 6∙15공동선언의 해석이나 ‘민족자주 대 국제협조’의 배타적 설정 등 여러 문제에서 북측과 입장을 같이하는 점을 볼 때마다 참으로 공교롭다는 생각이 들곤 하는데, 어쨌든 통일(즉 단일 국민국가로의 통일)이 ‘당장 수행될 수 있는 과제가 아니다’라는 지당한 명제에서 출발하여 ‘이 때문에 선진화가 한국이 당장 추구할 수 있는 유일한 국정과제다’로 넘어가는 논리의 비약과 ‘선진화’에 대한 비현실적 단정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포용정책을 폐기하고 미일 대북제재에 적극 동참하라’는 소란스러운 요구가 나오는 것을 볼 때 우리 사회의 이른바 보수진영이 ‘국가안보와 경제성장이라는 보수진영 고유의 과제’를 감당할 능력이 과연 있는지 새삼 의심스러워진다.

◆“박세일의 사회세력 3분법은 수구세력과 흡사”=보수논객들의 문제는 자신이 설정한 ‘대한민국의 정체성’에 동조하지 않는 사람들을 ‘反대한민국 세력’으로 못박아 공인된 담론의 세계에서 배제하기 일쑤라는 점이다. 다음과 같은 발언을 최근의 한 예로 들 수 있다.

“저는 한국 사회의 세력을 크게 셋으로 나눕니다. 反대한민국 세력과 진보, 보수입니다. 반대한민국세력은 대한민국의 역사적 정통성 자체를 부정합니다. 이들은 흔히들 좌파적 역사관 또는 수정주의 역사관을 갖고 있어요. 기본적으로 역사를 민중과 외세의 대립으로, 가진 자와 못가진 자의 갈등으로 파악합니다”(박세일 서울대 교수)

이런 식의 3분법이 수구세력의 2분법과 흡사한 결과가 되리라는 것은 쉽게 짐작할 수 있다. 국가의 정체성은 ‘역사적 정통성’과 ‘현재적 정당성’을 포함하는 복합적인 내용이며, 복수의 잣대로 평가한 결과도 호적에 적자(嫡子)로 올리고 말고 하듯 흑백으로 갈라지는 게 아니다. 역사의 진행에 따라 상대적 비중이 달라지는 사안이다. 대한민국의 경우 일제 식민지지배에서 벗어나면서 나라가 타율적으로 분단된 상태에서 친일세력이 사회적 우위를 점한 국가로 출발한 것은 엄연한 사실이며, 뒤이은 폭압과 전쟁 및 분단고착의 상황에서 국가의 정통성과 정당성을 의심하는 이런저런 저항논리에는 각기 그 나름의 합리적 근거가 있었다고 봐야 한다.

많은 국민들의 피땀 어린 노력을 통해 한국사회가 민주화와 경제발전에 뚜렷한 성과를 거뒀고 2000년 6월을 기해 정부가 한반도의 평화와 민족통합에 주도적인 역할을 자임하고 나서게까지 된 것이다. 이 과정에서 직접 싸우고 희생한 저항세력이야말로 대한민국의 이러한 성취에 대해 자부심을 가져 마땅하다.

선진화는 단순히 경제성장이나 국민소득 평균치의 증대를 뜻하지 않는다. 정말 남들보다 앞서가는 훌륭한 사회로 진화하는 것이 선진화일 텐데, 사실 나는 대한민국의 선진화가 주춤거리고 있는 데 대한 박세일 교수의 안타까움에 공감하는 바 적지 않다. 대한민국이 선진국 문턱에서 주춤거리는 원인이 아직도 분단의 멍에를 지고 있고 분단체제로부터의 탈출전략에 합의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 아니겠는가. 남한만의 선진화가 얼마든지 가능한데 일부 ‘반대한민국 세력’ 때문에 안되고 있다는 발상이야말로 우리 지성계의 후진성을 말해주는 징표의 하나일 게다.

◆”이인호의 ‘1단계 통일이 북한식 독재 될 것’ 주장은 대한민국에 대한 신뢰부족”=“백낙청 교수는 합의하기 어려운 문제들을 이것저것 미리 따질 것이 아니라 두루뭉술한 표현으로 절묘하게 절충된 6∙15공동선언 제2항의 공식에 따라 통일을 위한 교류를 ‘어물어물’ 진행하다가 ‘어느날 문득, 어 통일이 다 됐네, 우리 만나서 통일됐다고 선포해버리세’라고 말하면 그게 우리식 통일이 된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불행히도 보수-우파가 가장 걱정하는 것은 백 교수가 가장 바람직한 것으로 생각하는 바로 그런 상황이 오는 것이다. 폐쇄적 세습독제체제와 개방적 민주주의체제가, 표피적인 교류가 많이 이뤄졌다고해서 불쑥 하나의 ‘연방’으로 통합된다면 그렇게 통합된 체제는 결국 북한식 독재가 되지 민주주의체제가 될 수 없는 것이다”(이인호 명지대 석좌교수)

이 교수의 이런 의구심은 내가 말하는 ‘1단계 통일’이 연방제에도 미달하는 느슨한 연합체제로서 북한식이든 남한식이든 하나의 주권국가를 형성하는 것이 아니라는 해명을 통해 상당부분 해소된 것으로 안다. 설혹 더 높은 수준의 통합이라 할지라도 그것이 ‘북한체제로 흡수되어버리는 통일이 될 것’이라고 예단하는 것은 ‘대한민국에 대한 신뢰 부족’을 또 한 번 드러내지 않는가 한다.

종착점을 정해놓지 않고 어물어물 진행하는 통일과정을 내가 긍정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시민참여형 통일을 전제하고 있기 때문이다. 통일을 집권자들만이 좌우한다고 할 때, 어떤 통일을 할지도 모르면서 진행하는 것은 무책임한 일이요, 속으로 알면서 국민에게 감추고 어물어물 해나간다면 국민을 속이는 짓이 된다. 그러나 통일의 내용이 시민참여·민중주도로 정해지도록 내맡기기 때문에 당국이 미리 결론을 낼 필요가 없다는 것이라면 이것이야말로 민주주의의 원리에 충실한 자세이며, 시민들의 책임이 그만큼 무거워질 따름이다.

점진적·단계적으로 진행되는 한반도식 통일에 대한 기득권층의 불신과 저항도 바로 이러한 시민참여가 열어갈 전인미답(前人未踏)의 경지에 대한 몰이해와 두려움에서 비롯하는 바 크다고 본다. 분단체제에 대한 성찰과 중도주의적 대응을 통해 대중 스스로가 책임있는 시민으로 성장하는 과정을 수반하는 통일 사업이라면 그 결과는 민주의 원리에 충실하면서도 기존 어떤 유형의 민주주의에도 국한되지 않는 새로운 창안이 될 것이다. 이는 ‘선 선진화, 후 통일’도, ‘선 통일, 후 선진화’도 아니고, 우리에게 주어진 유일한 활로요 진정한 중도인 ‘선진화와 통일의 병행’이다. 좀 더 구체적으로는 6·15공동선언의 화해·협력 및 점진적·단계적 통일 노선에 근거한 선진화 전략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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