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북 성묘 임정 요인 면면은

남북분단 이후 처음으로 남한 후손들이 방북 성묘를 하게 되는 임시정부 요인들은 모두 독립운동 공적을 정부에서 인정받은 민족지도자들이다.

성묘 대상은 김규식(金奎植), 김상덕(金尙德), 김의한(金毅漢), 안재홍(安在鴻 ), 윤기섭(尹琦燮), 장현식(張鉉植), 조소앙(趙素昻), 조완구(趙琬九), 최동오(崔東旿) 등 임정에서 요직을 맡았던 인사 9명.

임시정부 부주석을 지낸 김규식(1881∼1950) 선생은 미국 유학을 통해 철학박사 학위를 취득한 지식인으로 1919년 2월 한국 대표로 파리강화회의에 파견되는 등 임정에서 외부총장과 학무총장 등을 지내기도 했다.

김구 선생과 함께 좌우합작 남북협상을 주도하기도 했으며 6.25한국전쟁 발발 직후에 납북된 뒤 건강 악화로 별세한 것으로 알려졌으며 이후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이 추서됐다.

조소앙(1997∼1958) 선생은 1913년 상하이로 망명해 박은식 선생 등과 임시정부 임시 헌장과 임시의정원법을 만들었으며 임정 외교부장을 지냈다.

정치·경제·교육 균등의 삼균주의를 창시했으며 1950년 5.30총선에서는 서울 성북구에 출마해 전국 최고 득표자로 제2대 국회에 진출하기도 했다.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이 추서됐다.

조완구(1881∼1958) 선생은 1910년 경술국치 직후 러시아 블라디보스톡으로 망명해 독립운동조직인 동지사를 결성해 활동하다가 1919년 3.1운동이 일어나자 상하이로 건너가 임정 수립에 참여, 재정부장과 내무부장을 지냈으며 건국훈장 대통령장이 추서됐다.

최동오(1892∼1963) 선생은 3.1운동 이후 상하이로 망명, 임시의정원 부의장을 지냈으며 남북연석회의에 참가하기도 했다.

1956년 납북된 뒤 북한에서 납북인사를 중심으로 결성된 재북평화통일촉진협의회 집행위원 겸 상무위원으로 활동하기도 했다.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됐다.

윤기섭(1881∼1959) 선생은 1923년 임시의정원 의장을 지냈으며 광복 이후인 1948년에는 국학대학 학장을 맡았다.

6.25전쟁 시 납북돼 재북평화통일촉진협의회 집행위원으로 활동하기도 했다. 건국훈장 대통령장이 추서됐다.

안재홍(1891∼1965) 선생은 3.1운동에 참여했으며 대한청년외교단을 조직했다가 체포돼 3년간 복역했고 시대일보 논설위원, 조선일보 주필 등을 거쳐 신간회 총무를 맡았다.

광복 이후에는 미군정청 민정장관과 제2대 민의원 의원을 지내기도 했다. 건국훈장 대통령장이 추서됐다.

김의한(1900∼1964) 선생은 임시의정원 의원과 임정 선전위원과 외교위원을 지냈으며(건국훈장 독립장), 김상덕(1892∼1956) 선생은 임정 문화부장과 제헌국회의원을 지냈으며(건국훈장 독립장), 장현식(1896∼1950) 선생은 임시정부와 조선민족대동단에 독립운동 자금을 조달한 공적(건국훈장 애국장)을 인정받았다./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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