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북길은 6.25 남침·북진路

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이 내달 2∼4일 열릴 남북정상회담을 위해 평양으로 가는 길은 광복 직후의 ‘통일정부의 꿈’과 ‘민족상잔의 비극’을 함께 기억하고 있는 길이다.

한국전쟁 이전까지 남한 땅이었던 개성에서부터 평양까지 이어진 이 길은 1950년 6월25일 남침한 북한군의 병력 이동과 물자보급을 위한 주(主) 도로였다.

국군과 유엔연합군이 낙동강 전선까지 밀렸다가 더글러스 맥아더 장군의 인천상륙작전 성공으로 전쟁 발발 석달만인 9월28일 서울을 수복한 이후 북진 때 사용한 길도 개성에서 평양으로 이어진 길이었다.

국방부 산하 군사편찬연구소 조성훈 박사는 27일 연합뉴스와 전화 통화에서 “6.25전쟁 때 북한군 1사단이 평양-개성간 코스로 남침했다”며 “9.15 인천상륙작전 이후 미군 1사단도 개성, 사리원 등을 거쳐 평양으로 입성했다”고 말했다.

그는 “국군과 연합군이 두만강까지 진격했다가 중공군의 참전으로 1.4후퇴를 하고 중공군이 남한으로 넘어올 때도 역시 평양-개성간 도로가 주요 통로였다”고 설명했다.

1992년 4월15일 김일성 주석의 80회 생일을 맞아 완공된 160㎞에 달하는 왕복 4차선 평양-개성 고속도로의 포장 아래에는 이같은 전쟁의 역사 뿐 아니라 비록 실패하긴 했지만 남북 협상의 역사도 깔려있다.

1948년 김구(金九) 선생이 남.북 각각의 단독 정부 수립에 반대해 2월 북측에 남북지도자회의 소집을 제안한 뒤 4월 19~23일 평양에서 열린 남북 제정당.사회단체 대표자 연석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38선을 넘어갈 때도 이 길을 이용했다.

김구 선생의 비서로 김구 선생의 방북을 수행했던 김우전(金祐銓) 전 광복회장은 전화통화에서 “선생을 모시고 임진각 상류 임진나루터에서 배에다 자동차를 싣고 개성까지 갔다”며 “개성에서 38선을 넘어 북측이 준비한 자동차를 타고 평양으로 갔다”고 회고했다.

그는 “당시 고속도로가 나기 이전 평양-개성간 도로였으나 현재의 고속도로 구간과 대부분 일치하는 길이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구 선생은 연석회의에 이어 같은 달 30일 남북 15인 지도자협의회에서 ‘내전불가’와 ‘통일정부 수립’ 등을 내용으로 한 ‘4.30 남북 공동성명서’를 이끌어 냈다.

그러나 서울로 돌아온 지 닷새 뒤인 5월10일 남한 단독선거와 8월15일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된 데 이어 북한도 같은 해 8월25일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을 선출한 뒤 9월9일 조선인민공화국 수립을 선포해 통일정부의 열망은 물거품이 됐다.

‘남북협상’과 ‘전쟁’이라는 서로 다른 수단으로 통일을 달성하려는 시도가 이뤄졌던 개성-평양간 도로를 이번에는 노 대통령이 ‘평화’의 깃발을 들고 다시 달리게 됐다.

국군통수권자인 노 대통령은 북한군의 외곽 경호경비 속에 북한 군부대가 주변에 즐비한 개성-평양간 도로를 오가며 남북간 군사적 긴장 완화의 상징적인 모습을 전 세계에 보여주게 된다.

노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간 정상회담 결과 서울-개성-평양으로 이어지는 길이 ‘남북평화로(路)’로 자리잡게 될지 주목된다.

정성장 세종연구소 남북한관계연구실장은 “이번 노대통령의 육로 방북은 북한이 전시에는 주요 전장이 될 수 있는 곳들을 노출시키는 것”이라며 “앞으로 남북 교류협력을 위해 정부나 민간이 이 길을 좀 더 자주 왕래하는 시발점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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