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칸의 도살자’ 카라지치, 결국 심판대에 올라

보스니아 내전의 주범 라도반 카라지치(63)가 전격 검거됨에 따라 세계의 이목이 집중됐다. 카라지치는 21일(현지시간) 베오그라드에 위치한 그의 은신처에서 세르비아 검찰 당국에 의해 수갑이 채워졌다.

카라지치는 무려 13년 동안 국제사회의 수배망을 피해 다녔다. 보스니아 내전이 국제사회의 개입으로 진정되자 그는 몸을 피해 사라졌고 그의 행방을 둘러싸고 수많은 억측이 난무했다.

수도승이 됐다는 소문에서부터 사막에 은신처를 두고 있다고도 했으며 심지어 북한으로 도피하였다는 설까지 나돌았다. 그러나 그는 베오그라드의 한 아파트에서 보통 사람들처럼 평범하게 살고 있었다. 특히 정신과 의사였던 자신의 이력을 활용해 대체의학자로 행세하며 의학 잡지에 칼럼을 게재하는 등 공개적인 활동도 왕성하게 펼쳤던 것으로 드러났다.

그는 수염과 머리를 길러 얼굴을 가렸으며 누가 봐도 예전의 그를 떠올리지 못할 정도로 자신을 위장하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이번에 카라지치가 전격 체포된 데는 세르비아 당국이 결심을 굳혔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우세하다. 그동안 세르비아 정부는 카라지치 검거에 소극적이라는 비판을 들어 왔다. 유럽연합(EU)은 세르비아 정부가 그 같은 태도를 바꾸지 않는 이상 세르비아의 EU 가입은 요원하다는 입장을 굽히지 않았다.

따라서 이번 카라지치의 체포는 서방세계를 향해 변화된 태도를 보여주려는 세르비아 정부의 ‘의지 표현’으로 해석되고 있다.

카라지치가 검거되자 EU와 미국, 나토(NATO) 등은 즉각 환영 의사를 피력했다. 하비에르 솔라나 EU 외교정책 대표는 “세르비아 정부는 EU와의 새로운 관계를 원하고 있다”며 카라지치의 체포가 세르비아의 EU 가입에 청신호가 될 것임을 시사했다.

국제유고전범재판소(ICTY)도 “세르비아가 전범 재판에 협력의 의지를 보인 것”이라며 평가했다.

카라지치는 보스니아 내전 말기인 1995년 스레브레니차에서 보스니아 이슬람계 주민 8천명을 학살하며 세계를 경악시켰다. 이는 2차 세계대전 이후 유럽에서 발생한 민간인 학살 가운데 가장 끔찍하고 잔혹했던 사건으로 기록되었다.

당시 보스니아 내전은 약 30만 명의 희생을 낳았으며 1995년 나토가 개입, 공습을 감행한 후에야 진정 국면으로 전환됐다. 스레브레니차 학살 사건이 더욱 충격을 준 것은 1993년 유엔이 개입해 스레브레니차 지역을 안전지대로 선포하고 피난민을 거주시키고 있던 가운데 세르비아군이 침공, 유엔군을 무장해제하고 그곳에 몸을 피해있던 8천명의 무슬림들을 무차별 살해하는 반인륜적인 학살을 저질렀기 때문이다.

국제유고전범재판소는 보스니아 내전의 당사자로서 1992년부터 1996년까지 15개 항목의 반인륜적 전쟁 범죄에 대한 혐의를 카라지치에게 적용하고 수배령을 내렸다. 그러나 카라지치는 몸을 피해 서방 세계의 추적을 따돌렸으며 무려 13년을 은신해 살았던 것이다.

카라지치가 체포됨에 따라 유고전범 재판에 속도가 붙게 됐다. 특히 재판 도중 감옥에서 사망한 밀로세비치의 전철을 밟지 않기 위해 카라지치에 대한 재판 절차를 가급적 빨리 진행한다는 방침이다.

한편 국제유고전범재판소에서 활약하고 있는 권오곤 재판관은 최근 한 언론과 인터뷰에서 “네덜란드 출신의 알폰스 오리 재판관이 재판장인 제1재판부가 준비절차를 맡기로 내정됐다”며 “스레브레니차의 집단학살죄(genocide)에 최종 책임이 있는 것으로 알려진 카라지치에 대한 재판은 전 세계에 ‘정의는 실현되고 만다’는 것을 보여주는 계기가 될 것이다”이라고 강조했다.

카라지치의 재판은 첫 출두에서 선고까지는 2∼3년이 걸릴 것으로 예상되고 있으며, 유죄가 확정될 경우 사형을 인정하지 않고 있는 국제형사법의 판례에 따라 최고 무기징역형까지 선고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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