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북한이 핵실험을 실시한 이후 유엔안보리결의안에 동참한 중국의 북한 핵에 대한 기본 입장에는 변화가 없다. 중국은 ① 한반도의 비핵화, ② 한반도 및 동북아지역의 평화·안정, ③ 6자회담의 조속한 재개 및 협상·대화를 통한 한반도 핵문제 해결을 위해 모든 노력을 다 한다는 방침을 천명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입장을 관철하기 위한 방법에는 변화가 감지되고 있다. 북핵실험에 대한 중국의 반응은 한마디로 강렬한 것이면서도 신속했다. 외교부 성명에서 북한이 ‘제멋대로(悍然)’라는 표현을 쓴 것이 중국의 심정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이다. 중국이 핵실험 이전에 여러 차례 경고했음에도 불구하고 중국과 아무 사전 협의 없이 북한이 핵실험을 강행한데 대해 실망과 분노를 표시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다른 한편, 제재 조치의 수위에 대해서는 중국은 나름대로 냉정함을 보이고 있다. 중국은 북한 핵실험 이후 강력한 불만과 분노의 뜻을 표시하면서도 일관해서 관련 국가들의 ‘냉정한 대처’를 촉구해 왔다. 미일이 주장하는 군사수단을 포함하지 않고 이를 배제한 제재조치 결의안을 채택케 함으로써 중국의 입장을 반영하게 할 것이다. 중국이 제재조치 완화를 주장한 것은 단순히 북한을 의식해서라기보다 중국이 경제성장을 지속하는데 필요한 평화로운 환경과 안정을 확보해야 하고 동북아 안보 질서 구축을 주도해 가는 것이 중국의 근본 이익에 부합된다고 보기 때문이다.』
II.
위의 글은 2006년 10월 북한의 1차 핵실험 이후 이태환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이 쓴 「북한 핵실험에 대한 중국의 입장과 전략」이라는 논문에서 1차 핵실험 날짜만을 삭제했을 뿐이다. 그런데 문제는 이 수석 연구위원의 이러한 진단이 오늘에 와서도 그대로 적용된다는 점이다. 필자가 단언하건데 북한의 3차 핵실험 이후 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한 기사와 컬럼이 언론에서 쏟아져 나올 것이다.
박근혜 당선자는 시진핑 주석이 보낸 특사에게 ‘북한 핵을 절대로 용인하지 않겠다’는 뜻을 밝혔고, 시진핑 주석은 박 당선자가 보낸 김무성 특사단장에게 ‘한반도 비핵화’를 지지한다는 뜻을 밝혔다. 물론 박근혜 당선자의 뜻은 ‘중국이 미국과 일본 그리고 한국과 함께 한반도 비핵화를 단순히 지지한다’는 것이 아니라 ‘한미일중러 모두가 힘을 합쳐 북한이 핵폐기를 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들어야 된다’는 것이다.
박근혜 당선자는 중국에 많은 공을 들이고 있다. 그러나 이 특사 교환은 북핵 폐기에는 아무런 기여도 못할 것이다. 한국은 “한반도 비핵화에 대한 중국의 확고한 입장”, “북핵 실험에 대한 강력한 경고와 분노”, “유엔의 대북제재 결의안 지지” 등, 한국은 중국이 틀어대는 이 끝없는 재방송을 마치 처음 보듯 하는 수밖에 없다.
중국과의 특사 교환에 의미가 있다면, ‘한국은 북핵의 평화적 해결방안을 위해 모든 노력을 하였고 중국의 협조를 희망했다. 그러나 이 방법은 실패했고 따라서 다른 방안을 강구하지 않을 수 없다’는 점을 정당화하는 데 있을 것이다. 그러나 한국은 현재 이 ‘다른 방안’을 갖고 있지 못하고 있다.
다른 한편, “북한이 핵실험을 한다면 실수”, “평양이 평화와 발전의 길을 선택하면 우리는 손을 내밀 의향이 있다”, “미국은 여전히 9·19 공동성명을 이행하기 위한 진정성 있고 신뢰할 수 있는 협상에 대해 열려 있다”는 미국의 입장 역시 우리가 지겹게 들어온 재방송이기는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자세히 살펴보면 미국과 중국의 속내가 다르다. 미국은 이런 외교적 분식(粉飾) 이외에는 북한 핵실험에 대하여 다른 어떤 대안도 갖고 있지 못하다. 중국은 북핵을 폐기시킬 수 있는 능력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한반도를 중국의 영향권 아래 놓으려는 흑심 때문에 북핵을 용인하고 있다.
III.
크지 않은 한반도의 한 쪽에서 한국을 협박하기 위해 핵실험을 해도 중국과 미국으로부터 똑같은 재방송을 들어야만 한다는 것은 한국이 북핵문제에 관한 아무런 대안도 없다는 점, 그리고 미국과 중국에게 북핵폐기는 결코 정책의 우선순위가 아니라는 점을 의미한다.
물론 한미동맹을 통해 북한의 핵위협에 대처하는 것은 옳지만, 북한정권이 노리는 것은 핵과 미사일을 통해 미국과 평화협정을 맺고 동시에 미국 본토에 도달할 수 있는 장거리 미사일로 한미군사동맹을 해체하려는 것이다.
이런 소리는 예전에는 헛소리로 치부되었지만 이제는 결코 북한이나 종북세력만의 꿈이 아니다. 우리는 얼마전 노무현 전 대통령이 2007년 10월 김정일과의 대화 내용의 일부를 알게 되었다. 북핵과 미국에 대한 부분을 모아보면 이런 장면이 나온다:
“남측에서 이번에 가서 핵문제 확실하게 이야기하고 와라… 주문이 많죠. 근데 그것은 되도록 가서 판 깨고… 판 깨지기를 바라는 사람들의 주장 아니겠습니까? 지난 5년 동안 북핵문제를 둘러싼 북측의 6자회담에서의 입장을 가지고 미국하고 싸워왔고, 국제무대에서 북측 입장을 변호해 왔습니다. 제일 큰 문제가 미국입니다. 나도 역사적으로 제국주의 역사가 사실 세계인들에게 반성도 하지 않았고 오늘날도 패권적 야망을 절실히 드러내고 있다는 인식을 갖고 있으며 저항감도 가지고 있습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사실상 여적(與敵) 행위에 대하여 잘 알고 있을 수밖에 없는 문재인 전 민주당 대통령 후보는 이 사실을 부정하였고, 그를 지난 대선에서 투표자의 48%가 지지하였다.
IV.
북한 외무성은 2013년 1월 24일 “이후 조선반도와 지역 평화와 안정을 보장하기 위한 대화는 있어도 조선반도 비핵화를 논의하는 대화는 없을 것”이라면서 북한이 핵보유국가임을 기정사실화 하였다. 그러나 유리병처럼 속이 다 들여다보여 북한이 아무 때라도 깰 수 있는 박근혜 당선자의 공개된 대북정책 로드맵으로는 북한의 핵공갈에 절대로 대응할 수 없다.
김정은 정권의 핵도발은 북한정권을 신뢰하고 싶어하면서도 북한핵을 용납하지 않겠다는 박근혜 당선자에게 ‘신뢰와 북핵불용 중에서 하나를 선택하라’는 것이 아니다. 북핵은 어짜피 박근혜 당선자가 허용하고 불용하고의 대상이 아니라는 뜻이다. 김정은 정권은 지금 박 당선자가 북핵을 용인하면서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를 진행하는 것 이외의 선택이 없다고 밀어붙이고 있다. 그러나 ‘북한핵을 절대로 용인하지 않겠다’는 당선자의 말이 공염불이 되는 순간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의 의미도 사라진다.
박근혜 당선자는 지금 처한 상황의 의미를 명확하게 이해하여야 한다. 이것은 딜레마처럼 보이지만 딜레마가 아니다.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는 ‘북핵 폐기’를 목표 중의 하나로 갖는 수단이다. 그러나 주변의 햇볕정책의 아류를 따르게 되면 수단을 살리기 위해 목표를 포기하는 잘못을 범할 수밖에 없다. 특히 북한 핵실험을 ‘북한내부 결속용’이라고 호도하는 인물들을 멀리해야 한다.
지금 한국은 1968년 1.21사태 이후 박정희 전 대통령이 예비군 창설로 북한의 도발에 대응했던 것처럼, 북한이 예상하지 못하는 방식으로 북한의 핵위협을 뼈아프게 응징해야 한다. 또한 국민에게 북한의 핵실험으로 인해 한국정부가 할 수도 없고 해서도 안 되는 일들을 분명하게 확인시켜야 한다.
또한 북핵 실험을 기화로 한국 내의 종북은 물론 친북세력의 입지를 약화시켜 한국 내 이념갈등의 원인을 제거해야 한다. 그래야만 김정은이 의외로 빠르게 원하고 있는 <대하 드라마 한반도>의 대단원을 자유민주주의 통일로 끝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