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희 정부, 쿠바 비동맹회의서 北에 ‘판정승’

1970년대 말 비동맹국가들에 대한 북한의 외교공세에 대항하기 위해 한미가 공동 대응책을 마련했던 것으로 22일 밝혀졌다.


이날 공개된 외교문서에 따르면 북한은 당시 박동선 사건 등으로 한미 양국 관계가 악화됐다는 판단 아래 아프가니스탄, 마다가스카르와 같은 비동맹국가에 대해 외교 공세를 펼쳤고, 이에 대해 미국은 훈령을 통해 한국에 비동맹국 외교 강화 지원 방안을 제시했다.


훈령은 “북한이 비동맹국에 대한 외교공세로 남한측의 인권문제를 지적하며, 미군이 남한을 점령하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고 적시한 뒤 “이와 같은 외교공세에 동조해주는 대가로 (비동맹국에) 무기거래 등을 제시할 수도 있다고 보여진다”고 분석했다.


이어 “이 같은 외교공세는 아마도 남북한을 두 개의 독립된 국가로 인정하는 국제추세에 대한 북한의 우려-흡수통일에 방해되기-때문인 것으로 풀이된다”며 “북한은 이에 따라 남북한을 두 개의 국가로 인식하려는 움직임은 한반도의 분단을 지속시키려는 (한미의) 음모라고 주장하고 있으나 이는 사실과 다르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도 “제3국에 대한 북한의 외교 공세는 한반도의 평화를 저해한다고 생각하지만, 당장 어떤 조치를 취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특히 주한미군과 관련 “제3국에서 묻는다면 주한미군은 한국의 요청과 유엔 결의에 의해 주둔하고 있음을 분명히 해야한다”며 “북한측이 제3국을 통해 (미국과) 접촉을 시도하려 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는데, 이 또한 대응해서는 안된다는 것이 현재의 정책”이라고 대응책을 제시했다.


위의 훈령에 대해 한국측은 “두개의 한국 조작 모략 선전은 북한의 외교공세의 일환이기보다는 북한 동조세력의 이탈을 방지하기 위한 목적이 더 크다는 반응을 나타냈으며 미군 주둔은 유엔결의안보다 한미 상호방위조약과 한국 정부의 요청으로 결정되었다는 점”을 강조했다.  


이 외에도 남북한은 1979년 쿠바의 아바나에서 열린 비동맹운동(NAM) 정상회담에서도 치열한 외교전을 벌인 것으로 드러났다.



그러나 당시 북한이 NAM의 정식 회원국이었던 반면 한국은 회원국이 아니었다. 따라서 한국은 북한보다 한층 불리한 입장에서 비동맹 정상회의 최종 문서에 북한의 입장만 반영되는 것을 막기 위해 총력 외교전을 펼쳤다.



특히 쿠바는 당시 북한의 최대 동맹국으로 우리 외교 당국은 한시도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었다.

실제로 정상회의를 앞두고 쿠바가 작성해 회람한 공동성명 초안에는 “남한에 있는 모든 외국 군대의 철수, 유엔사령부 해체, 외국군 부대와 시설들을 해체해야 한다”는 문구가 포함되어 있었다.



또한 초안에는 “1972년 7·4 남북공동선언의 3대 원칙인 자주, 평화, 민족대단결 원칙에 기초해 한반도 민중들이 자주와 평화통일을 쟁취하고 외세의 개입으로부터 자유로워지고자 하는 노력에 경의를 표했다”는 조항도 들어가 있었다.



이에 우리 정부는 ▲한반도 문제는 당사자인 남북한이 직접 대화를 통해 해결할 문제로 제3자가 취급할 문제가 아니고 ▲북한만 참여하는 회의에서 한반도 문제 거론은 부당하고 북한의 입장을 편파적으로 옹호하는 것은 비동맹의 이념과 원칙에 위배된다는 기본 입장으로 회의에 참가하는 45개국과의 교섭에 착수했다.



외무부는 당시 비동맹 정상회의에서 한반도 문제가 의제에 상정되거나 토론되는 것 자체를 저지하는 것을 1차 목표로 35개 공관에 수시로 지침을 내려 보냈다.



만약 정상회의에서 한반도 문제가 토론되고 최종 선언에 포함될 경우 한반도 관련 조항이 ‘공평하고 균형적으로’ 들어가도록 하는 것이 2차 교섭 목표였고, 쿠바안이 그대로 반영될 경우 가능한 많은 참가국이 태도를 유보하도록 하는 것이 3차 목표였다.



공관에 내려 보낸 비망록에는 교섭 대상국을 설득할 논리가 담겨 있었다.


각국 주재 대사들은 아바나 정상회의에 앞서 6월 초 스리랑카에서 열린 비동맹 외무장관 회담에서도 한반도 문제가 의제에 포함되어 있지 않다는 점을 들어 주재국을 설득했다. 7·4 남북 공동성명이 유효하기 때문에 국제사회에서 한반도 문제를 토론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논리도 동원됐다.



이 같은 노력은 어느 정도 성과를 거뒀다. 말레이시아와 인도네시아 같은 아세안 국가들, 수단·카메룬 등 아프리카 국가들, 페루·아르헨티나 등 중남미 국가들 등 비동맹 회의에 참석하는 대부분의 국가가 한국의 입장을 지지한다는 보고가 속속 들어온 것이다.



‘두고 보자’ ‘어쩔 수 없다’며 사실상 북한의 손을 들어 준 나라는 스리랑카, 미얀마(당시 버마), 라이베리아, 이란, 네팔, 오만 등 손에 꼽을 정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