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희는 국가를 혼란에서 구해낸 정치 지도자”














▲ 19일 박정희 대통령서거 30주년(26일)을 맞아 연세대학교 ‘연세-삼성 학술정보관’에서 ‘박정희와 그의 유산: 30년 후의 재검토’라는 주제의 국제학술회의가 열렸다. ⓒ데일리NK
박정희 전 대통령의 역할은 ‘정치적 민감성’과 ‘민족에 대한 비전’을 갖고 국가를 혼란으로부터 구해낸 정치 지도자라고 랜드연구소의 함재봉 박사가 주장했다.

함 박사는 19일 박정희 대통령서거 30주년(26일)을 맞아 연세대 ‘연세-삼성 학술정보관’에서 열린 ‘박정희와 그의 유산, 30년 후의 재검토’라는 주제의 국제학술회의에서 “박정희는 정치적 효능, 관료제와 경제적 효율성을 가장 우선시하는 정치적 결단을 내렸다”며 이같이 주장했다.

함 박사는 “현대사에서 가장 성공적인 국민 형성의 사례로 한국이 꼽힌다”며 “한국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정치적 민감성과 민족에 대한 비전을 갖고 국가를 혼란으로부터 구해내는 역할을 한 정치지도자의 존재였다”고 다시 한번 강조했다.

함 박사는 “국가형성의 성취에도 불구하고 이 유산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의심스럽고 모호한 것으로 간주하는 것은 당시 정권이 권위주의적이었고 독재의 특징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함 박사는 이어 “근대 국민 형성은 성공적이었지만 이를 달성하기 위한 ‘정치적으로 올바른 방법’은 없었다”면서도 “마키아벨리나 홉스, 푸코가 말했던 근대 권력의 억압성이 보편적이고 필연적이었다는 정치적 규칙을 현대 한국의 맥락에서 충실하고 효과적으로 수행 한 것”이라고 평가했다.

박명림 연세대 교수는 박정희와 김정일을 비교해가며 박정희에 대한 평가를 이어갔다.

박 교수는 “1950년대 북한이 앞서있던 상황에서 박정희가 사망한 1979년 시점에는 완전히 역전 되었다”면서 “이런 차이는 국내, 남북관계, 국제전략의 세 가지에서 차이가 난다”고 지적했다.

그는 “국내적으로는 권위주의체제였다는 점에서는 동일하나 이견과 반대의 존재 유무에서 결정적으로 갈렸으며, 남북관계에서도 박정희는 분단과 남북경쟁의 긍정성을 부정성보다 키우는데 성공했다”고 지적했다.

김형아 호주국립대 아시아·태평양 컬리지 호주·한국 리더십 포럼 소장은 “한국인의 자신감, 효율성 그리고 견인력은 박정희가 70년대 벌였던 ‘우리도 할 수 있다’라는 근로정신 캠페인에서 나온 산물”이라고 강조했다

김 소장은 “박정희의 새마을운동은 혁명으로써 한국이 한세대 내에 경제기적을 이룩하도록하였다”면서 “이 혁명은 국가발전과 함께 박정희시대의 군사문화가 반영된 정치적 억압을 그 특징으로 한다”고 설명했다.

반면 임혁백 고려대학교 교수는 “박정희 정부는 관료적 권위주의의 성격보다는 신가산제(neo-patrimonialism)의 여러 요소가 결합된 형태”라며 “권위주의적 산업화와 민주적 산업화는 선택의 문제일 뿐 역사적 필연은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김동노 연세대 교수는 박 전 대통령이 장기간 권력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독특한 통제전략 덕분이라고 주장했다.

김 교수는 “박정희는 민족주의적 이념 조작과 새마을 운동을 통한 전통적 통제질서의 복원을 통해 한국인들에게 민족의 일원이라는 점을 앞세웠다. 민족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가지고 태어났다고 믿게 교육해 국가의 강압적인 측면을 감추었다”고 분석했다.

류석춘·왕혜숙 연세대 교수는 “박정희 시대는 강한 국가와 강한사회가 시너지효과를 나타낸 대표적 사례”라고 강조했다.

두 교수는 “박정희 시대의 성취에는 국가의 능력뿐 아니라 국가의 전략을 수용하고 실행하면서도 일방적 독주는 견제했던 강한 사회의 역할이 중요했다”면서 “이제는 강한 사회를 뒷받침할 강한 국가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외에도 폴 허치크로프트(Paul Hutchcroft) 호주국립대 교수는 한국의 박정희, 인도네시아의 수하르토, 필리핀의 마르코스를 사례로 세명의 아시아의 독재자들의 유산을 비교해 검토했다.

20일까지 열리는 이번 토론회는 고 박정희 대통령의 업적을 실사구시적으로 재평가하는 좌우 학자들의 발표와 토론이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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