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숙, 북한 밤하늘 바라보며 무슨 생각 했을까?

남한에 와서부터 밤하늘을 쳐다 볼 일이 많지 않다. 부모님 생신이나 기일, 명절 때가 돼야 고향 생각에 기분이 적적해져 이따금씩 밤 하늘을 쳐다본다. 그러나, 아파트 복도에서 목을 빼고 고향 하늘 방향을 찾아보는 노력은 언제나 수포로 돌아간다. 휘황찬란한 조명들 속에 가려진 북두칠성과 북극성을 확인하는 것은 모래사장에서 바늘을 찾는 느낌이다. 


‘이런, 남조선은 정전(停電)도 없나?’


밤하늘에서 고향길을 찾는 일을 아직까지 성공하지 못하고 있다. 북한에서는 밤길을 떠날 때마다 동서남북 방향을 잡기 위해 하늘부터 쳐다봤다. 북한에서 밤하늘의 별들은 남한의 가로등 만큼이나 밝게 느껴졌다. 인공조명의 간섭이 없으니 그야말로 ‘별이 쏟아지는 것 처럼’ 느껴진다. 그 별들이 긴긴 밤길의 나침반이 되어준다. 두만강을 건너 중국 땅을 향할 때도 밤하늘 별들의 도움을 받았다.


북한에서는 내일 날씨를 예측하기 위해서라도 밤하늘을 꼭 봐야 한다. 조선중앙방송에서 매일 밤 일기예보를 보내주지만, 열악한 전력(電力) 사정 탓에 그 시간에 텔레비젼이나 라디오를 켤 수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밤하늘을 통한 일기 예측은 무척 간단하다. 별들이 얼마만큼 선명하게 보이느냐에 따라 맑음, 흐림, 비옴 등이 예상되는 것이다. 맞건 틀리건 간에 그 방법밖에 없다. 북한 주민들에게 밤하늘 보기는 일상적인 생활 패턴이 되어 버렸다.


11일자 노동신문이 재입북한 탈북자 박정숙 씨의 사연이라며 소개한 글에는 이런 대목이 나온다. 재입북 첫날밤에 북한의 밤하늘을 쳐다본 박 씨의 소감은 아래와 같다.


“그날 밤 그(박정숙)는 별들이 총총한 하늘을 하염없이 바라보았다. 참으로 오랜간 만에 보는 별이었다. 그는 남조선의 서울에 있을 때 별을 보지 못했다. 그곳 공기가 너무 나빠 별을 보이지 않는 것이다. 언제인가 제주도에 갔을 때 동행한 사람들이 ‘아, 별이다’하며 환호성을 지르던 때가 눈앞에 삼삼히 어려왔다”


물론 이 글을 박 씨가 직접 썼을 가능성은 ‘0%’에 가깝다. 아마도 남한에 대한 ‘비방 의무’에 내몰린 박 씨가 궁여지책으로 꺼내든 ‘남조선 공기’ 문제를 노동신문의 어느 선전원이 덥썩 물었을 것이다.


이 글을 봤을 북한 사람들은 과연 어떤 생각을 하게 될까? 북한 사람들은 바보가 아니다. 북한사람들은 원하는 정보를 충분히 접하지 못하기 때문인지 때때로 다른나라 사람들보다 더 논리적으로 의문을 제기하기도 한다. 정보의 공백을 논리로 채우는 것이다.


‘밤하늘 별이 안보일 정도로 공기가 나쁘다?→공해가 심하구나!→도대체 얼마나 많은 공장이 돌아가기에 별이 안보일 정도로 공해가 심할까?→남조선은 그렇게 많은 공장을 돌릴 정도로 전기가 풍부한가?→남조선 경제가 크게 발전했다던데 그말이 사실인가보다!’


노동당 선전선동부의 통제에 따라 글을 쓰는데 익숙한 노동신문 선전원들에게는 이러한 반대급부가 눈에 들어올리 없다. 이런 경우의 수를 상부에 보고해봐야 면박만 돌아 올 것이다. 


박 씨가 북한 땅에서 밤하늘을 쳐다보며 어떤 생각을 했는지는 아무도 알 수 없다. 그러나 한가지는 분명하다. 일개 노동신문 선전원 따위가 박 씨의 머리속에 선명하게 박힌 서울 야경을 오직 상상력 하나만으로 온전히 묘사하는 것은 불가능이라는 것이다.


대한민국 수도 서울의 불야성(不夜城)은  위대한 수령님도, 위대한 장군님도, 그들의 순결한 혁명전통을 이어 받았다는 김정은도 직접 목격해보지 못한 ‘희대의 장면’이다. 그런 탓에 지금도 노동신문에서는 이처럼 황당한 선동글이 대놓고 실리고 있는 것이다. 문자 그대로 남과 북의 명암(明暗)이 이렇게 엇갈리고 있다.

소셜공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