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인숙씨의 母情과 노수희의 客氣

북한으로 돌아간 탈북자 박인숙 씨가 평양에서 대한민국을 비난하고 김정은과 북한체제를 찬양하는 기자회견을 가졌다. 평양 기자회견에서 박씨는 “남조선 정보부원 놈들의 유인전술에 걸려 남조선으로 끌려갔다”고 주장했다.


1시간 넘게 진행된 기자회견에서 박 씨는 거짓을 섞어가며 대한민국을 비난했지만, 한국에서 받은 혜택은 속이지 못했다. “썩고 병든 남조선에서 탈북자들이 하는 일은 오물 청소, 그릇닦기 시중들기 등 비천하고 어려운 일”이라고 떠들었지만, 박 씨의 외모는 너무나도 건강하고 젊어 보였다.


북한사람으로 치면 50세 중반쯤이나 되어 보이는 그녀의 얼굴은 썩고 병든 사회에서 천하고 힘든 일을 한 사람 같지 않다. 북한의 어느 고위 간부집 어머니로 보이는 풍채는 북한의 보통 부자들도 보여주기 어려운 건강함이 묻어난다.


박 씨는 이따금 메모지를 보면서 열심히 한국에서 살고 있는 탈북자들을 비난했지만 그의 속 마음은 그리 편치 않았을 것이다. 남쪽 땅에서 살면서 느꼈던 풍요로움과 편안함, 그리고 자유를 보장해줬던 한국 정부와 국민들에 대한 미안함을 어찌 떨칠 수 있겠는가.


여러 탈북자들의 증언에 의하면 박 씨는 몇 년전부터 북한당국에 의해 추방 조치된 아들에 대한 죄책감에 시달렸다. 또 한국에 와서도 그토록 보고 싶어했던 아버지를 만나지도 못한 상실감에  이복 형제들로부터 환영받지 못하는 마음 고생도 더해졌다.  


박 씨는 목숨을 걸고 북한을 탈출했으며, 중국에서 체포되어 차라리 죽는게 낳다는 북송을 당하기도 했다. 그런 그녀가 스스로 북한으로 돌아간 것은 오직 아들 때문이다. 자신의 행동으로 자식에게 고통이 주어진다는 것을 느끼는 순간, 어미의 삶은 지옥으로 변하게 된다는 것이 동서고금의 이치다. 그 지옥 안에서는 이성이나 합리적 판단 설 자리가 없다. 결국, 모성 본능만 남게 된다.


한국 국민들은 이런 모성 본능을 ‘상식’으로 받아 들인다. 그 무엇으로도 침해할 수 없는 순수함 그자체로 말이다. 그러나, 북한정권은 다르다. 사용가치가 있다면, 모성 본능 역시 최고 지도자와 체제 찬양의 도구로 얼마든지 활용할 수 있다. 


아마도 박 씨에게 아들 문제가 없었다면, 그녀는 한국 국민들이 배려해준 국민임대주택에서 비교적 편안한 여생을 보낼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지난 4월 “아들이 국가안전보위부에 잡혀갔다. 돌아오지 않으면 아들이 죽는다”는 사돈의 전화를 받는 순간, 안락한 노후 따위는 미련거리가 아니었다.


탄광으로 추방됐다가 보위부 감옥에 갇힌 아들을 둔 어머니가 무슨 일인들 마다 할까. 북한 당국은 사돈의 입을 빌려 박 씨를 협박한 것이다. 


지금도 북한 주민들은 필사의 노력으로 탈북을 시도한다. 김정은 정권 출범 이후 국경단속이 심해지면서 북한 사람 1명을 도강(渡江)시키는 비용이 한국돈 4백만원 정도 필요하다.


이 돈을 북한까지 보내는 데 필요한 브로커 경비를 절반 정도로 잡는다면, 실제 북한 내부에서 지불되는 탈북비용은 200만원 이상이다. 한국 원화와 북한 원화의 환율을 거칠게 비교하면 ‘1:3’ 정도라고 할 수 있으니 북한 돈으로는 600만원이 넘는다. 지금 노동자 최고 월급이 북한돈 5천원이 넘지 않으니, 일반 노동자들이 600만원을 모으려면 최소한 100년치 월급이 필요하다. 북한 사람이 뇌물을 주고 탈북을 하려면 100년치 월급을 모아야 한다. 최근에 한국에 입국한 가족이 있는 사람들이 탈북하는 비율이 높은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이런 상황에서도 북한 사람들은 죽기 살기로 탈북한다. 자유와 인권, 미래 인생을 위해서다. 때문에 북한 당국이 박 씨의 ‘사상총화’를 북한 주민들에게 반복적으로 선전한다 하더라도 이를 곧이 곧대로 믿을 사람은 거의 없다.


비전향 장기수 리인모가 북한으로 돌아갔을 때 많은 사람들이 “남조선 감옥은 얼마나 대접이 좋길래 그 곳에서 수십년간 살 수 있었냐?”는 등의 궁금증이 증폭됐던 것과 같은 이치다.


박 씨가 만약 30~40대의 젊은 여성이었다면 북한의 선전선동에 장단을 맞추는 척 하다가 몇 년 후 아들 손을 붙잡고 우리 앞에 다시 설 수도 있을 것이다.


양강도 혜산의 우산공장 지배인을 하다 남한에 왔던 김남수 씨는 북한으로 돌아가 탈북방지 정치강연 등에 동원되다가 아들을 데리고 다시 한국으로 돌아왔다. 북한에 있는 아내를 데려오려고 입북했다가 체포되어 대남비방 기자회견까지 열었던 유태준 씨도 결국에는 모진 고통을 이겨내고 남쪽으로 살아왔다. 그러나 박 씨에게도 이런 시간과 기회가 주어질것인가. 안타까운 마음만 앞선다. 


북한은 ‘천륜’이라고 하는 부모 자식간 정(情) 마저 비열한 체제 선전 수단으로 삼고 있다.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김정은 체제란 바로 이런 짓을 일삼는 체제다. 김정은 정권은 박 씨의 아들만 볼모로 잡은 것이 아니다. 한창 자라고 있는 수백만의 북한 아이들, 다시 말해 우리민족의 다음세대 절반을 볼모로 잡고 있다.


불법 방북길에 올랐다가 판문점으로 돌아온다는 노수희 씨는 북한에 체류하는 동안 한번이라도 가족들의 신변위협을 느껴본 적이 있을까? 이것이 남과 북, 대한민국과 김정은 체제의 차이다. 

소셜공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