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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민정부 청와대 정책기획 수석비서관을 역임한 박세일 서울대 교수, 국민의 정부 대통령 자문 정책기획위원장을 지낸 최장집 고려대 교수, 최근 참여정부 청와대 정책실장을 지낸 이정우 경북대 교수.
김영삼-김대중-노무현 정부로 이어지는 역대 정권 ‘정책통’으로 손꼽히는 세 교수가 우리사회 양극화 극복방안을 두고 치열한 공방을 펼쳤다.
대화문화아카데미 창립 40주년을 기념해 29일 오후 올림피아 호텔에서 열린 ‘민주화, 우리사회 양극화’ 주제의(부제 다시 보는 양극화) 토론회에서 발제자로 나선 이들은 역대 정권의 이념 색깔만큼이나 뚜렷한 입장 차이를 보였다.
이 자리에는 고건 전 총리를 비롯해 정•관계, 학계, 사회단체 인사 100여 명이 참석해 토론회에 대한 높은 관심을 나타냈다. 이날 2시 30분에 시작된 토론회는 오후 늦도록 계속됐다.
첫 번째 발제에 나선 이정우 경북대 교수는 “한국의 양극화는 미국과 유사한 기술혁신, 정보화•세계화로 인한 일자리 소멸, 약한 노조와 같은 원인과 함께 1997년 외환 위기 이후 지속된 불황이 원인이 됐다”고 지적했다.
이정우 “노동배제 문화가 양극화 부추켜”
이 교수는 이어 “87년 이후 민주화가 진전됐지만, 사회 도처에 특권과 독점, 불공정과 부패, 부동산 투기로 인한 불로소득의 특정 계층 집중 등의 민주주의 미완성 상태가 여전하고, 노동배제적 문화가 양극화를 부추기고 있다”며” 분배에 대한 우리 사회의 적대적 분위기도 원인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박세일 서울대 교수는 “우리나라에서 양극화가 심화되고 있다는 주장은 사실로 보인다”면서도 “그 원인은 총체적인 국가능력 부족에서 찾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박 교수는 “신기술을 혁신하면서 심각한 양극화를 동반하지 않은 국가들이 보인 공통된 특징은 높은 성장률의 달성, 교육개혁의 성공, 교육-고용-복지로 이어지는 안전망(Safety Network)구축에 성공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보다 높은 성장률 달성과 지속적인 교육 혁신이 양극화를 막을 수 있는 현실적 대책임을 역설했다.
그는 우리 사회가 양극화 심해지는 근본적인 이유에 대해 “국가 운영 능력이 떨어져 있고, 이것을 바로 세울 역사의 주체가 없기 때문”이라며 “이는 정권 차원의 문제가 아닌 우리 사회가 가지는 근본적인 결함”이라고 말했다.
박교수는 “향후 10년~15년이 지나면 고령사회로 진입, 우리사회의 발전 동력이 현저히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선진화로 갈 수 있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그는 “지금 우리 사회가 처한 상황이 성장이냐 분배냐를 따질 때가 아니라 근본적으로 성장동력 자체가 떨어지고 시간은 없다”며 큰 우려를 나타냈다.
박세일 “양극화, 국가운영 능력에 달린 문제”
이 교수는 “우리사회 반 복지, 반 분배 분위기가 성장과 분배라는 동반성장을 가로막고 있다”면서 “참여정부는 실수나 시행착오는 있었으나 그런 방향으로 가려고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복지의 확대가 경제 성장에 기여하는 연구가 활성화 돼왔다”며 “분배 개선이 성장의 원천이 된다는 우리 사회의 합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영•미형 경제를 채택하고 있는 나라는 경제 발전과 함께 양극화가 심화돼왔다”면서 “북유럽의 덴마크, 노르웨이, 스웨덴은 오히려 양극화가 줄어들었다”며 분배 정책 중심 국가에 관심을 나타냈다.
이에 박교수는 “세계화 과정에서 경제도 발전하고 분배도 개선된 성공한 나라들이 많다”며 “이런 나라들은 높은 성장률과 거시경제 안정, 재산권, 법치, 개방형 문화, 사회 통합적, 정치적 안전이 큰 특징”이라고 말했다.
박 교수는 “기술혁신 속도가 아무리 빨라도 적응하는 국가가 빠르거나 능력이 있으면 분배 악화나 양극화를 가져오지 않을 우리 사회의 구성원들이 변화와 국가능력을 높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우리 사회는 문제의 중요성을 모르는 것도 아니고, 방법을 모르는 것도 아니다”면서 “문제를 풀 능력 있는 세력이 없다는 것이 문제다”고 말했다. 산업화와 민주화를 넘어 선진화를 이끌 세력이 우리 사회에 부재하다는 것.
최장집 “노동과 자본 대타협으로 성장 동력 찾아야”
최장집 고려대 교수는 “우리 사회의 가장 큰 위기는 외부에서 주어진 신 자유주의에 대응하고, 민주주의 가치와 규범에 부합하는 한국 사회에 가장 적합한 경제발전 모델을 갖지 못한 것”이라며 현재를 ‘신 자유주의적 정책 레짐(regime)’이라고 규정했다.
최 교수는 양극화 해소를 위해 ‘경제 민주주의 실현을 위한 노동 참여형 경제 발전 모델’을 제시했다. 경제체제가 노동이 참여하는 구조로 전화되는 것이 민주주의에 기반한 생산체제라는 것이다.
그는 “노동 친화적 정책, 노동자를 정치의 참여자로 인정하고, 생산체제에서 자본과 더불어서 생산의 파트너로 인정하면 얼마든지 성장 동력 마련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이를 위한 노동과 자본의 대타협을 주문했다.
한편, 박 교수는 “대한민국의 위기는 여•야나 정치의 문제가 아니다. 후대들에게 선진화된 국가를 넘어가느냐의 문제가 앞으로 10년에 달려 있다”며 “과거 19세기 말, 20세기 초와 같이 국가실패의 우를 다시 반복하지 않을까 우려하고 있다”고 말했다.
신주현 기자 shin@dailynk.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