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선영, 탈북자 인권유린 생생증언

탈북자들이 제3국에서 인신매매 등 온갖 인권유린과 착취를 당하고 있음에도 정작 한국 정부는 미온적 자세를 취해 인권에 눈을 돌리고 있다는 주장이 14일 나왔다.

자유선진당 박선영 의원은 15일 개최되는 `탈북과정에서의 인권침해 실상과 대책’ 세미나에 앞서 배포한 자료에서 탈북 브로커 등의 성적 유린 및 금품 갈취와 같은 인권 유린 실태를 담은 생생한 사례를 소개했다.

또 재외 한국대사관은 대사관 안에 들어온 탈북자까지 강제로 끌어내는 등 대사관측의 부적절한 행태에 대해서도 질타했다.

다음은 박 의원이 전한 탈북자들의 인권 유린사례.

◇”대사관은 탈북문제 개입않는다” = 2006년 7월 일부 탈북자들은 동남아 A국 공안당국에 체포되자 한국대사관 재외국민 담당영사에게 전화를 걸어 강제북송을 막아달라고 하소연했다. 하지만 이 영사는 “한국대사관의 공식입장은 탈북자 문제에 개입하지 않는다는 것”이라고 답변했다.

같은해 12월 7명의 탈북자들은 동남아 B국의 한국대사관에 진입하려다 보안요원들의 여권제시 요구로 저지당했다. 같은 날 오후 현지 활동가가 12세, 14세 탈북소녀만 대사관에 데리고 들어가는 바람에 두 소녀는 어머니와 헤어친 채 한국에 입국했다.

2006년 12월 탈북여성 2명은 동남아 C국 한국대사관의 담을 넘어 대사관에 진입했다. 하지만 보안요원은 밖으로 나가라고 요구했고, 잠시 후 소총으로 무장한 현지 공안요원 3명이 이들 탈북여성을 강제로 대사관 밖으로 끌어냈다.

박 의원은 “지난 10년간 되도록 북한을 자극하지 않겠다는 정부의 방침에 따라 탈북자 문제를 가능하면 묻어두겠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이런 끔직한 일이 벌어졌다”고 말했다.

◇”국정원도 쉬쉬” = 2006년 6월 동남아 D국의 탈북자 수용시설에서 영양실조로 고생하던 한 탈북남성이 사망한 사건이 발생했다. 그러자 대사관에서 파견된 국가정보원 직원이 사체를 해당국가 군대에 부탁해 처리하려 했고, 수용 탈북자들은 격렬하게 항의했다.

이에 이 국정원 직원은 사망사실을 은폐하고 의료.식사지원 부족문제를 함구할 것을 조건으로 3일장을 허락했고, 비밀을 지키지 않을 경우 정착금을 주지 않을 것이라고 협박했지만 결국 한 탈북자의 폭로로 문제가 공식화됐다.

국정원은 조사 과정에서 식당 담당이었던 탈북자 박모씨의 관리잘못을 지적했으나 해당 국정원 직원과의 3자 대면 끝에 진상을 밝혀졌고, 이 직원은 직위해제됐다는 게 박 의원의 주장이다.

◇”탈북여성은 성노리개” = 동남아 E국에서 한인 교계의 대부로 알려진 F목사는 2002년부터 G교회라는 보호시설에서 50~150명의 탈북자를 수용했다.

하지만 이 목사는 젊고 예쁜 탈북 여성들에게 한국에 빨리 보내준다는 것을 미끼로 성적 유린을 자행하다 최근 다른 나라로 옮겼다. 박 의원은 “외교통상부는 2005년 당시 사태를 파악했지만 탈북자들이 개별적으로 소송을 통해 해결할 일이라는 태도를 보였다”고 전했다.

2004년 80여명의 탈북자는 동남아 H국에서 한 한국인 사업가가 제공한 13평 정도의 3층짜리 건물에서 거주했다. 이곳에 머물렀던 탈북남성 김모씨는 “남자는 외부출입을 제한했으나 여자는 이 사업가를 따라 외출하는 경우가 허용됐다. 사장이 여자들을 농락하고 노리개로 삼았다”고 진술했다고 한다.

또 이 사업가는 김씨가 수용시설에 입소한 직후 한국으로 갈 때 돌려주겠다며 돈까지 회수해갔지만 물건 구매비용 등을 이유로 결국 절반만 되돌려줬다.

1999년 탈북해 중국에 머물던 I씨는 2006년 5월 헤어졌던 딸과 어렵게 연락이 닿았으나 이 딸은 이내 인신매매단에 붙잡혔다. 이 딸은 인신매매단의 성관계 요구를 거부하다 결국 성폭행을 당한 후 살해됐다. I씨 시신이 안치된 병원이라도 찾아가려 했으나 강제북송을 우려한 주변인의 만류로 시신 확인조차 못했다./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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