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북구상’ 다시 만들어라

한나라당 박근혜 의원이 ‘포린 어페어즈’에 기고한 대북정책 구상에 대해 말하기 전에 국내정치 이야기부터 먼저 해야할 것 같다.


한 국가의 외교는 대체로 그 나라 국내정치의 연장이다. 국내정치 수준이 낮으면 외교능력도 낮다. 국내 정치수준이 낮은데 외교를 잘하는 경우는 드물다.


외교력은 경제력 군사력(하드 파워)이 기본이다. 위성TV, 인터넷, SNS 등 지구촌의 통신 수단이 발전할수록, 국가간 이동 인구가 늘어나 상호작용 접촉면이 많아질수록, 문화분야의 스마트 파워가 중요해진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한 국가의 외교력의 핵심은 대통령의 정치능력이다. 그래서 결국은 정치력이 외교력을 좌우하게 된다. 


그 나라의 정치 수준은 ‘정치인들의 수준-언론의 수준-국민 수준’이 상호작용하면서 대체로 비례한다. 그럼, 지금 대한민국의 정치 수준은 어떤가? 그 답을 얻으려 굳이 골머리 싸맬 것도 없이 최근 ‘안철수 현상’을 보면 된다. ‘안철수 현상’은 곧 대한민국의 현재 정치수준이다. ‘안철수 현상’이 발생한 근본원인은 기성 정당들이 정치를 못하기 때문이다. 언론 수준도 우리의 경제력에 비하면 많이 낮은 편이다. 


한국의 정당에서 ‘정치’가 실종된 지는 꽤 됐다. 정당들을 보면 대한민국의 국가적 가치, 국가적 목표, 국제사회에서의 대한민국의 역할, 국민과 함께 국가의 미래 희망 만들기 등등에는 관심도 없고, 오로지 대통령 선거 싸움, 총선 싸움, 당파 싸움에 집중한다. 정치는 없고 ‘권력 쟁투’만 있는 것이다.


더욱이 개별 국회의원들은 자신이 지역구에서 재선되는 것이 중요하지, 국민들이 잘 사는지, 대한민국이 잘 되는지는 그 다음 문제다. 정치인들이 대한민국과 자신이 운명공동체라는 책임의식이 전혀 없다. 이것이 대한민국 정치의 현재 수준이다. ‘안철수 현상’은 정당들의 정치 실종에서 빚어진 ‘초대형 정치 설사’ 현상이다.


국내 정치수준이 이러하니 대북정책인들 잘 될리 없다. 대북정책은 포괄적으로 ‘외교 영역’에 속한다. 하지만 국내정치 수준이 낮으니 대북 인식의 수준도 낮고, 대북 인식의 수준이 낮으니 대북정책을 제대로 전개하기도 어렵다. 


손자병법에서 ‘지피지기 백전불태(知彼知己 百戰不殆 나를 알고 상대를 알면 백번 싸워도 위태롭지 않다)’고 했는데, 우리의 정치 현실은 자신도 모르고 상대도 모르니 ‘부(不)지피부(不)지기 백전백태’일 수밖에 없는 형편이다.


시간이 좀 지났지만, 박근혜 의원의 대북정책 구상을 담은 포린 어페어즈 기고문을 보면, 북한문제를 보는 인식의 수준이 드러나 있는데, 꼭 국내정치 수준의 연장을 보는 것 같다. 


박 의원의 포린 어페어즈 기고문에 대한 평가가 일부 언론에 나오기도 했지만 분석이 제대로 된 것 같진 않다. 중앙일보 9월 2일자에 ‘실망스러운 박근혜의 포린 어페어즈 기고문’이라는 칼럼이 나왔는데, 분석 내용이 더 실망스럽다. 반드시 짚어야 할 것은 못짚고 변죽만 울린 인상비평 수준이었다.


박근혜 대북구상의 키워드는 신뢰외교(Trustpolitik)와 균형정책(Alignment Policy)이다. 


“북한은 국제규범을 반드시 지켜야 한다. 평화를 파괴하는 행동에 대해서는 확실한 대가를 치러야 한다. 안보와 남북 교류협력 사이의 균형, 남북대화와 국제공조 사이의 균형이 중요하다. 북한의 군사도발에는 단호하게 대응하고, 협상은 개방적으로 접근해야 한다. 북한 핵문제는 국제사회와 협조체제 강화하여, 신뢰할 만한 억지(抑止), 끊임없는 설득, 효율적인 협상 전략으로 북한이 핵무기 없이도 생존할 수 있고 경제적으로 더 나아질 수 있다는 점을 깨닫게 만들어야 한다” 등이 주요 내용이다.


그리고 “햇볕정책은 지나친 희망에 기대 근본적인 변화를 일으키지 못했고, 이명박 정부는 압력 일변도로 북한을 의미있는 방향으로 변화시키지 못했다”고 평가했다.


박 의원의 대북구상이 나오자 “현실적인 대안 제시가 부족했다” “Alignment라는 표현이 말이 되느냐?” “국내에서 발표하지 않고 외국 전문지에 먼저 기고했느냐?’ 등의 비판이 있었다.


박근혜 대북구상에 대한 비판이 거세지자 박 의원은 당 연찬회에도 참석하지 않고 기자 간담회를 열어 “북에 유연할 때는 더 유연하고, 단호할 때는 더 단호해야 한다”면서 자신의 대북구상을 적극적으로 설명하는 모습이었다.


결론부터 말한다면, 박 의원의 포린 어페어즈 대북구상은 이제 절반쯤 완성된 것 같다. 박 의원의 대북구상에는 ‘수단’은 있는데, ‘목적’이 선명하지 못하다. 신뢰와 균형은 대북정책을 수행하는 방법(수단)이지, 그 자체가 목적이 될 수 없다. 그래서 박의원의 대북구상은 대한민국의 국가목표, 한반도의 미래 목표가 실종되고 수행 방법론만 있는, 점수를 잘 줘 보아야 50점 짜리다. 박의원의 대북구상의 문제점은 크게 세 가지다.


첫째, 절충주의·봉합주의 한계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햇볕정책과 이명박 정부 대북정책에서 드러난 문제점을 보완·절충한 형태다. ‘신뢰 외교’와 관련해서는, 김대중 정부 햇볕정책 초기에도 그 기조는 ‘북한 도발 불용·남북간 신뢰구축’이었다. 그러나 김정일은 남한이 보내는 신뢰를 자신의 정권유지에 맞게 이용할 뿐이었다. 


북한에 개혁개방 정권이 들어서지 않는 한 남북간에 ‘진정한 신뢰’는 가능하지 않고, ‘신뢰의 얼굴을 한 전략게임’이 존재할 뿐인데, 김대중 정부가 이를 간과한 것이다. 박의원 대북구상에 대해 “현실적인 대안 제시가 부족하다”는 비판이 나온 것은 이 대목 때문이다.


둘째, 대북정책의 목표가 없다.


대한민국 대북정책의 최종 목표는 무엇인가? 그것은 시간이 얼마나 걸리든, 또 어떠한 절차와 과정을 거치게 되든, 한반도의 평화통일과 미래 비전이다. 박 의원의 ‘새로운 한반도’에는 한반도의 미래 비전과 통일 비전이 없다. 통일 한반도의 미래와 동아시아의 평화·공동번영, 세계 민주주의 공동체에 대한 비전이 읽히지 않는다.


박 의원의 ‘새로운 한반도’는 김대중·노무현 정부와 유사한 ‘남북 평화공존 희구정책’이다. ‘남북 평화공존 희구정책’은 현실에서 ‘한반도 현상유지 정책’으로 귀결될 것이며, 결국 김정일은 정권 생존을 위해 어쩔 수 없이 ‘도발 모드-평화 모드’ 전술을 되풀이하게 될 것이다. 


김정일이 지금까지 그렇게 해왔듯이 “당신들이 한반도 현상유지를 원한다면 평화유지 비용을 내라”는 압박 전술을 되풀이 하는 수밖에 없는 것이다. 따라서 박 의원의 ‘새로운 한반도’에는 ‘새로운 것’이 없는 셈이다.


셋째, 2400만 북한 주민들에 대한 언급이 전혀 없다.


한반도에는 전체 7천만 주민이 살고 있다. 대북정책을 구상하면서 앞으로 우리와 함께 손을 잡고 미래를 개척할 2400만 형제들에 대한 언급이 없다는 것이 근본적으로 말이 되는 것인가?
 
현재 유엔에서 다루고 있는 북한 아젠다는 ①북한 핵문제(안보리) ②북한인권문제(인권위)이다. 이 두 가지는 세계적 범위에서 객관화된 양대 북한 아젠다이다.  박 의원은 다른 나라도 아닌 대한민국의 대북정책을 언급하면서 2400만 북한주민들의 인권참상과 3대 세습의 문제점에 대해 일절 언급하지 않았다. 
  
박 의원의 대북구상은 핵문제를 제외하면 대한민국이 그 많은 예산과 시간과 인력을 들여가며 왜 대북정책을 수행해야 하는지를 설명하지 못하고 있다.


대한민국 대북정책의 목적은 ①휴전선 이북에 사는 2400만 주민들  앞에 놓인 문제들을 해결하고 ②동아시아 평화와 공동번영을 이룩하며 ③세계 평화공동체를 형성하는 데 적극적으로 기여하는 것이다.


그 해결 과제로는 ①북핵문제 ②개혁개방 문제 ③인권문제 ④한반도평화통일 문제가 있다. 하지만 박 의원은 해결과제로서 ‘핵 문제’를 주로 언급했을 뿐이며, 한반도 평화통일도 아닌 ‘평화유지의 방법론’을 언급하는 데 그치고 있다. 따라서 대한민국 미래비전으로서의 대북구상으로는 매우 실망스럽다. 


만약 박 의원이 차기 대통령 선거에서 가장 유력한 주자가 아니라면, 이 정도 수준의 대북구상을 포린 어페어즈가 게재해주었을 이유가 없었을 것이고, 필자 역시 시큰둥하게 넘어가면 그만일 것이다. 하지만 대한민국 정치에서 박 의원이 갖는 중량감을 감안하면 그의 대북구상은 매우 중요하다. 따라서 박 의원은 대북구상에 대한 비판과 자기 성찰을 계속 해가야 할 것이다.


물론 대북구상이 잘 되어 있다 해도 대외적으로 발표할 때는 할 수 없는 말이 있다. 박의원의 기고문을 읽어보면 행간에 그런 고심도 보인다. 하지만 백보를 양보한다 해도 이 정도로는 어렵다.


별다른 수가 없다. 박의원은 ①대한민국 대북정책의 철학과 목표 ②해결과제 ③과제 해결의 방법론 순으로 대북구상을 다시 짜야 한다. 아직 시간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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