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對北 포퓰리즘도 총대 매나?

▲ 컬럼비아대에서 연설중인 박근혜 대표 (출처:연합)

제 1야당 대표로 미국을 방문한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가 현지에서 쏟아낸 발언이 국내에서 큰 화제가 되었다. 이번 발언은 많은 국내 언론에서 이례적으로 평가할 만큼 매우 파격적인 내용이었다.

일부에서는 초당적 북핵외교로 평가한 반면, 한편에서는 노무현 정부의 대북 추종주의에 길을 닦아준 셈이라며 평가절하했다. 여당 대변인은 이번 발언을 환영하고 나섰고 일부 한나라당 의원들의 혼란스럽다는 반응을 보인 것이 대표적이다.

박 대표는 방미(訪美)중 18일 컬럼비아대 강연회에서 “북핵문제 해결을 위해 북한에 가서 직접 김정일 위원장을 만나고 싶다”며 방북 의사를 강력하게 피력했다. 박 대표는 이번 방미길에서 미국 정∙관계 인사들과 만나면서 느꼈던 점을 직접 김 위원장에게 솔직하게 전달해주고 싶다며 그 이유를 설명했다.

박 대표는 이 자리에서 2002년 김정일 위원장과 면담한 사실을 상기시키고 “북핵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나, 한국 제1야당이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모든 초당적 노력을 아끼지 않겠다”고 밝혔다.

박 대표 ‘김정일 인식’ 문제 없나?

박 대표가 김 위원장을 만나서 전달하고자 하는 내용은 어렵지 않게 파악된다. 무엇보다 미국의 외교적 해결의지를 강조해 김정일 위원장의 우려를 해소해보겠다는 것으로 보인다. 박 대표는 17일 미국내 보수성향 싱크탱크인 헤리티지재단 주최 오찬연설회에서 “북미간의 상호불신이 문제해결을 더욱 어렵게 하고 있다”며 “6자회담이 교착상태에 빠진 것은 북미간 불신이 하나의 이유”라고 강조하기도 했다.

이러한 박 대표의 ‘대북 역할론’은 그가 미국 방문기간 중에 쏟아냈던 파격적인 발언과 행보가 무엇을 의미하고 있는지에 대해 많은 점을 시사해주었다.

박 대표는 2002년 김위원장을 만난 뒤로 그가 ‘외부의 합리적 제안을 수용할 수 있는 의지를 가진 인물’이라는 사고의 전환을 가져왔고, 이러한 인식을 핵문제까지도 연장시키는 것이 가능하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박 대표는 지난해 3월 당 대표가 된 직후에도 “북핵문제 해결을 위해 평양과 워싱턴 방문 의사를 가지고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북한 핵 보유 선언 이후 실현 가능성과 실효성이 의심되는 ‘대북 메신저 역할론’을 굳이 피력한 것은 그동안 국내에서 한나라당에 쏟아졌던 ‘수구 이미지’를 탈피하기 위한 전략의 하나로 보인다.

박 대표는 헤리티지재단 연설에서 “미국 정부의 전향적인 자세변화를 기대한다”고 말하고 “먼저 미국이 북한에 대담한 제안을 내놓으라”고 요구했다. 미국이 좀더 적극적으로 나설 것을 요구한 것이다. 그러나 이 주장은 그동안 북한의 조건없는 복귀를 주장해온 미국의 입장과는 정면으로 배치되는 것으로 6자회담에서 미국의 입지를 축소시킬 수 있는 매우 민감한 내용이다.

박 대표 미국 발언, 국내정치 연장

한나라당 혁신위원장을 맡고 있는 홍준표 의원은 지난 3월 초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한나라당이 집권하기 위해서는 ‘대북 대결정책 이미지’를 과감히 탈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 대표도 대표 취임 당시 한나라당의 대북정책이 경직되었다는 자조 섞인 비판을 내놓은 적이 있다.

결국 이번 방미 중 발언은 김정일 위원장에 대한 호의와 국내정치의 연장이 결합되어 만들어낸 결과물로 해석된다.

박 대표의 이러한 행보에 비판도 만만치 않다. 노대통령에 이은 제2의 자주외교가 국내에서 인기를 얻게 할지는 모르지만, 결과적으로 북한에 회담 연기 명분을 제공하고 몸값만 높여준 형태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중국과 한국 정부에 이어 한국 야당 지도자까지 나서 미국의 양보를 촉구하면서 미국이 곤혹스런 입장에 처할 수 있다는 것이다. <뉴욕 타임스>는 20일 “미국 정부는 북한 핵문제 해결을 위한 대화가 교착되고 있는 상태에서 북한에 더 많은 인센티브를 제공하자는 한국과 중국의 제안에 대해 점점 더 좌절감을 느끼고 있다”고 보도했다.

박 대표가 밝힌 발언을 세밀히 살펴보면 구체적인 보상안 제시, 양자회담 수용, 대북 특사 파견 등 미국에 많은 양보를 요구하는 내용이다. 박 대표의 발언 내용은 그동안 북한이 요구해온 동결 즉시 보상, 양자접근을 옹호하는 분위기를 강하게 시사하기도 한다.

대북 포퓰리즘에 편승하나?

박 대표의 이러한 제안은 몇 가지 위험성을 내포한 것으로 일부 전문가들은 지적하고 있다.

먼저 북한이 ‘적대시 정책 철회’라는 추상적인 조건을 내세우며 회담을 파행으로 몰고가는 상황에서 미국이 구체적인 인센티브를 새롭게 제공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 하다는 것이다. 선 보상 논의는 미국이 제네바합의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내세운 검증 가능한 핵 폐기의 경우에만 지원한다는 원칙을 훼손시키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는 지적이다. 또한 양자협의나 특사파견 주장은 북한 핵문제에 대한 주변국의 책임있는 통제와 관여라는 다자주의 원칙을 부정하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성신여대 김영호 교수는 <데일리엔케이>와의 인터뷰에서 “북한이 요구하는 분위기 개선 요구나 적대시 정책 철회는 너무 포괄적인 내용으로 미국이 받아들이기 힘들다”면서 “내부의 문제를 외부의 탓으로 돌리려는 의도로 보인다”고 말했다. 북한의 지연 전술에 원칙적인 대응을 하기보다 계속해서 당근을 내 줄 경우 북한의 요구와 태도는 더욱 황당한 수준으로 갈 것이 분명하다는 것이다.

박 대표의 북핵 특사 파견 가능성은 현재는 가능성이 매우 낮다. 미국이 인정하지 않는 중재자 역할을 북한이 반길 가능성도 없다. 우리 정부도 북한의 변화가 없는 한 대북 특사는 고려하지 않는 분위기다.

이번 박 대표의 대북 유화 제스처는 새로운 ‘대북 포퓰리즘’으로 해석될 가능성이 높다. 동시에 노무현 정부의 대북 추종주의를 바로 잡아야 할 야당이 오히려 여기에 편승하고 있다는 비판에 직면할 것으로 보인다.

신주현 기자 shin@dailyn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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