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 북한’ 정치범 출신들의 운명이 궁금해진다

김정일 정권은 많은 사람들이 예상했던 것보다 더 오랫동안 생존하고 있다. 그렇다 해도 앞으로 북한에서 큰 변화가 발생할 것은 불가피하다.

물론 향후 북한이 갈 수 있는 길은 다양하다. 북한이 중국에 속한 위성국가로 변화할 수도 있고 군사독재가 될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가 희망하는 민주 통일한국의 등장도 가능성이 낮은 것은 결코 아니다. 앞으로 ‘민주북한’에서 발생할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 이러한 문제에 대해 지금 준비해야 하지만 요즘 한국사회와 정부는 이런 논쟁을 피하는 경향이 있다.

좌파는 아직 북한정권에 대한 환상을 완전히 버리지 못하고 북한정권에 대한 비판을 ‘보수적’으로만 생각하고, 우파는 통일 후에 발생할 사회문제에 대한 논쟁이 통일에 대한 거부감을 초래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앞으로 한국이 직면할 문제에 대해 객관적이고 냉정한 분석이 없으면 대책을 세우기는 더 어려울 것이다.

수용소 경험자들 40~70만 명 추산

필자는 민주북한의 중산층이 직면할 적응문제를 쓴 적이 있는데, 통일 후 실망과 불만에 빠질 수 있는 또 하나의 사회 계층이 있다. 이 사회계층은 김일성-김정일 시기의 정치범들이나 성분이 아주 나쁜 이른바 ‘반동분자’들이다.

김부자 정권은 세계 역사에서 전례를 찾기 어려울 정도로 국민에 대한 통제와 탄압을 실시하고 있다. 이 정책 때문에 극소수의 고급 간부를 제외한 모든 북한 사람들이 고생하지만 어떤 사람들은 이 정책으로 말미암아 특별히 어려운 고생에 빠져 있다. 그들은 정치범 수용소에 갇혔던 사람들과 ‘적대계층’으로 북한사회에서도 가장 밑바닥에 있는 사람들이다.

북한의 정치범 수용소에 갇힌 사람들은 대략 15만여 명으로 추산된다. 우리에게 잘 알려진 강철환씨나 김영순씨를 비롯한 수많은 탈북자들의 경험에서 보여주듯이 수용소에 갇혀 있다가 살아서 나간 사람들도 적지 않아 보인다. 그래서 정치범 수용소를 경험한 사람들은 현재 갇혀 있는 15만명보다 더 많을 수 있다. 확실한 데이터가 있을 수도 없지만 수용소 경험자들이 40~70만 명 정도로 생각된다. 물론 수용소에서 풀려났다고 해도 죽을 때까지 심한 차별을 당하는 것이 원칙이다.

필자가 우려하는 대목은 그 사람들이 북한정권 붕괴 이후에도 새로운 민주사회에 적응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점이다.

첫째, 감옥생활은 세계 어디에서나 건강을 증진하는 결코 아니지만 북한의 수용소는 인간의 육체적, 정신적 건강을 극도로 해친다. 수용소에서 살아남은 사람이라고 해도 대부분은 피폐해진 건강 때문에 경쟁이 심한 시장경제에 참여할 수 없을 것이다.

둘째, 수용소에서 오랫동안 갇혀있던 사람, 특히 수용소내 ‘학교’에서 공부한 사람들은 지식과 기술이 너무 뒤떨어질 수밖에 없다. 설사 건강을 유지한 채로 출옥한 경우에도 평생 동안 비숙련 노동자로 지내야 할 것이다. 물론 강철환씨처럼 능력과 의지가 있는 사람들은 불리한 배경에도 불구하고 자본주의, 민주주의 사회에 적응할 수 있겠지만 이는 예외적인 경우로 볼 수 있다.

‘민주북한’ 계급 성분도 연속될까?

물론 세계 어디에서나 독재정권이 무너지면 비슷한 문제들이 생긴다. 그러나 북한은 극심한 독재가 오랫동안 지속되었고 역사상 전례가 없을 정도로 참혹했다. 구공산권에서 정치범 수용소 출신으로 사회 적응을 경험한 사람들의 비율이 미미한 편이지만 북한의 경우에는 전체 인구의 3-5%에 달할 수 있다. 즉 극소수의 정치범 출신들은 잘 관리할 수 있겠지만 이렇게 많은 사람들에게 대규모 지원정책을 실시하려면 조직관리나 재정적인 면에서 심한 도전이 될 것이다.

김부자 독재체제의 특성이 봉건사회처럼 성분(신분)제도를 유지하는 것이다. 수십 년 전 ‘적대분자’라는 딱지를 받은 부모나 조부모가 있는 사람들은 대도시에 살 수도 없고 좋은 교육을 받을 수도 없다. 평생동안 무시와 차별 속에서 살아야 한다. 따라서 체제가 붕괴된 다음에도 그들은 정치범 출신들처럼 교육과 기술이 모자라 새로운 생활에 적응하기 어렵다.

물론 김부자 체제가 무너지면 그들의 절대적인 생활수준은 모든 북한주민들처럼 많이 향상될 것이다. 지금 옥수수밥을 먹고 있을 시골 주민들도 나중에는 불고기를 특별음식으로 보지 않게 될 것이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그들은 자신의 의견을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고 또 갑작스럽게 구속된다 해도 무서워 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인간은 사회적 지위도 소득과 소비수준만큼 중요시한다. 때문에 그들은 김일성, 김정일 독재시기 사회의 가장 밑바닥에 있다가 민주화 이후에도 그대로 밑바닥에 남아 있다는 사실에 분개할 것이다. 민주북한에서 간부 출신들이 불가피하게 영향력이 커지게 된 것에 그들은 더 불만과 분개심을 표출할 수 있다.

북한의 민주화 이후에도 간부 계층의 특권이 연속될 것은 거의 불가피해 보인다. 문제는 ‘적대계층’에 대한 공식 차별이 없다해도 자신이나 그 자식들의 현실에서의 차이는 연속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하나의 사례를 보자. 30년 전 간부의 특권을 비판한 죄로 수용소에서 사망한 어느 북한 사람의 아들은 고등학교마저 졸업하지 못하고 평생 광부로 일했다. 그의 아들은 머리가 매우 좋았지만 성분 때문에 함경북도에서 농사만 짓게 되었다. 그러나 그 아버지를 밀고했던 사람은 열심히 ‘김일성 만세’와 ‘남조선 혁명 만세’를 외치며 나중에 고급 간부가 되었다. 식량난 시기인 이른바 ‘고난의 행군’ 때도 그는 잘 살아서 자신의 아들을 김일성대로 입학시켰고 지금은 인기좋은 외화벌이 일꾼으로 일하도록 했다. 체제가 무너지면 영어를 할 줄 아는 김대 출신이 자연스럽게 재벌 경영자나 공무원 같은 엘리트층이 될 수 있고 함경북도에서 농사를 짓는 젊은이는 그냥 그대로 농사를 지을 것이다.

이것만 보면 1970년대에 저지른 범죄는 김부자의 독재 하에서만이 아니라 ‘민주북한’ 체제에서도 혜택을 받을 것이라는 사실을 쉽게 알 수 있다.

어려운 문제를 숨기지 말고 토론해야

물론 정치범 수용소 출신들이나 정치 숙청의 희생자들을 위한 포괄적인 배상 조치를 실시한다면 좋겠지만 통일 후 한국정부가 너무 심한 재정 압박을 당할 것은 불가피하다. 또 희생자들의 숫자가 너무 많아 충분한 배상을 제공할 수도 없을 것이다.

필자는 얼마전 이 칼럼을 통해 북한정권이 저지른 범죄의 규모가 너무나 커서 범죄행위를 자세히 조사할 수도 없고 범죄자를 처벌할 수도 없을 것이라고 주장한 적이 있다. 그와 똑같이 정치범 수용소 출신도 전례가 없는 규모여서 김부자의 테러정책으로 고생했던 사람들에게 보상을 하는 방법이 없을 것이다.

그렇다 해도 어느 정도로는 이 문제를 관리하는 방법은 있을 것이다. 예를 들면 피해자들을 공식적으로 등록하고 그들에게 어떤 특혜를 제공하는 방법도 있고, 교육과 숙련 부문에서도 그들을 도와 줄 수 있다. 또 정치범 출신들이나 숙청 희생자 출신들이 자신의 이익과 요구를 옹호하는 단체를 만들어 정부기관에 압력을 가할 수 있고, 대중들에게 자신의 쓰라린 경험을 알릴 수 있을 것이다.

중요한 점은 이와 같은 어려운 문제를 숨기지 말고 노골적으로 토론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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