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 북한’ 만들기와 北 중산층의 운명은?

한국의 통일이 언제 있을지는 알 수 없다. 최근에 중국의 대북 진출이 본격화하는 상황에서 ‘통일한국’이 이루어질 때까지 수십년을 더 기다려야 하지 않겠느냐고 궁금해 하는 것도 일리가 있다.

그러나 지금의 북한이 진부한 정치, 경제체제를 오랫동안 유지하지 못할 것임은 분명하다. 그래서 이제 ‘통일 미래’에 대해 생각할 때가 되었다. 물론 한국의 학계와 정계에서도 이러한 생각을 하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한국에서 통일을 다룬 책 대부분은 구체적인 분석 대신에 어떤 감정적인 꿈과 같은 통일, 아니면 경제적인 악몽과 같은 통일을 묘사하고 있다.

최근 북한의 민주화가 통일을 초래하지 않을 수도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필자는 그 의견에 동의하기 어렵다. 북한에 비해 너무나 잘 사는 남한의 모범에 커다란 매력이 있기 때문에 북한 민주화 이후에도 오래 동안 분단 국가로 남아 있지 않게 될 것이다. 따라서 통일은 북한사회의 전면적인 ‘남한화’를 의미할 것이다. 이러한 ‘남한화’ 과정에서 많은 사람들과 각 계층이 여러 가지 도전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필자는 그러한 상황에서 가장 어려운 상태에 빠질 사회 계층은 북한의 중산층이라고 생각한다.

북한 간부계층의 미래에 대해서는 걱정할 필요가 없다. 필자는 통일 후 간부들에게는 일반사면을 실시하면 좋을 것이라고 제시한 바 있다. 그러나 일반사면이 없을 경우에도 간부 출신들은 통일 이후에도 잘 살 것이 거의 확실하다. 통일 후에 생길 현대 자본주의 경제에 필요한 지식과 기능이 지금 간부계층에 압도적으로 집중되어 있기 때문이다.

봉건사회처럼 신분(성분)을 중심으로 하는 특권구조를 엄격하게 지키고 있는 북한사회에서 컴퓨터를 할 줄 아는 자, 영어 도서를 읽을 수 있는 자, 국제경제의 기본 원칙을 이해하고 있는 자들은 거의 모두 간부들이나 간부 집 자식들이다. 그래서 ‘민주 북한’에서도 중요한 자리에 앉을 사람은 간부로 있는 사람들일 것이다.

일부 악명 높은 간부(특히 보위부 출신)들이 벌을 받을 수는 있겠지만 나머지 대부분은 그대로 특권을 누리게 될 가능성이 높다. 그들의 생활 수준도 높아질 것이다. 지금 노동당 간부로 ‘갱생’ 지프차를 타는 사람들은 통일 후 ‘민주북한’의 공무원이나 대기업 경영자로서 ‘에쿠스’나 ‘그랜저’로 갈아 타게 된다면 그들에게는 좋은 소식이 될 것이다.

노동자, 농민도 더 잘 살 것

노동자와 농민들도 상황은 비슷하다. 지금 근로자로 있는 사람들은 통일 후에도 현대 자본주의 경제에 대한 지식과 교육이 너무 부족하기 때문에 사회적으로 진출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지금처럼 숙련이 필요없는 일을 계속할 것 같다.

그러나 그들도 물질적 사정은 많이 좋아질 것이다. 지금 저녁식사에 옥수수밥을 먹고 있을 근로자들은 쌀밥과 고기를 매일마다 먹고 여가 시간에는 컬러 TV를 보고 냉장고와 같은 소비재를 사용하게 될 것이다. 또 몇 년 뒤에는 지금은 꿈도 꾸지 못할 중고차를 구입하는 근로자도 생길 것이다. 더 중요한 사실은 지금 간부들 앞에서는 입을 열기조차 무서운 진짜 노동조합을 만들어 자신의 이익을 적극적으로 보호할 수 있게 될 것이다.

농민들도 대부분 지금처럼 농사를 계속 짓게 되겠지만 생산성 증대로 실질 소득은 폭발적으로 늘어날 것이다. 그래서 농민과 비숙련 근로자들의 미래에 대해서도 별로 걱정할 필요가 없다.

장마당에 나가 있는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아마 장사꾼들 만큼 북한의 자본주의화를 통해 많은 이익을 얻을 사람도 없을 것이다. 그들은 이미 쌓아놓은 경험과 자본을 잘만 이용하면 소규모 사업가에서 대규모 사업가로 변신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실패도 있겠지만 필자는 향후 20년 이내에 통일이 된다면 지금 장마당에서 중국 양말이나 일본 중고 자전거를 파는 장사꾼들 중에는 나중에 북한에서 재벌이 나올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동유럽 민주화, 중산층이 결정적 역할

필자가 걱정하는 대상은 지금 북한의 중산층이다. 엄밀하게 말하면 구공산권 국가에서 자본주의식 중산층이 없었지만 중산층에 해당하는 여러 계층은 있었다. 의사나 기술자, 학교 교원이나 연구소 연구원 등은 북한식 중산층으로 볼 수 있다.

소련을 비롯한 구공산권 국가의 역사를 보면 공산주의를 반대한 세력은 중산층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공산주의 체제의 붕괴를 초래한 것은 반공 민주화 운동의 대중화였다. 공산권 붕괴 직전에는 이 운동이 노동자, 농민은 물론 일부 간부들까지 지지를 받게 되는데, 당시 민주화 운동은 곧 중산층의 운동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물론 폴란드가 좀 예외였기는 하다. 그러나 대부분의 노동자, 농민들은 비록 공산주의 체제에 대한 환상을 오래 전부터 버리긴 했지만 체제에 적극적으로 도전하지는 않았다.

체제 담당자였던 간부들은 마지막 순간까지 ‘공산주의 위업 결사웅위’ 운운했지만, 막상 체제가 무너지기 시작하자 본능적인 기회주의 때문에 반공 민주세력 측으로 많이 넘어갔다. 그러나 1980년대 말 체제붕괴 이전까지 공산권의 민주화를 위해 제일 많이 투쟁한 사람은 중산층이었다.

구소련 지식인들은 이미 1960년대 말부터 공산주의에 완전히 실망했고 체제변화를 희망했다. 한국에도 잘 알려져 있는 교포가수 빅토르 최의 노래는 1970-80년대의 시대정신을 잘 형상화 했다. “변화! 우린 변화가 필요하다. 우리의 심장은 변화를 요구한다. 우리의 눈은 변화를 요구한다. 우리 웃음과 울음 속에서도, 우리 핏줄에서도, 우리는 변화를 희망한다!”고 그는 노래했다.

그가 노래한 ‘변화’는 공산주의에서 탈피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구소련이나 동유럽 국가에서 외국방송을 듣고 외국 책을 읽고 금서를 복사하고 해마다 심해지는 사회, 경제, 정치 문제를 토론하는 계층은 곧 중산층이었다.

북한에서도 이같은 민주화 운동은 주로 중산층에서 생길 가능성이 높다. 북한의 고위 간부들은 체제를 끝까지 보호할 가능성이 높다. 노동자, 농민들은 교육수준이 높지 않고 단체활동의 경험도 없기 때문에 체제 위기가 분명해 노출되기 전까지는 노골적으로 김부자의 독재를 반대하지 않을 것 같다.

그러나 지식인들은 그렇지 않다. 그들은 남한을 비롯해서 외부세계에 대한 지식이 있고, 그 지식을 분석하는 능력도 있고, 북한당국의 체제선전도 별로 믿지 않는다.

북한 중산층의 운명은?

만약 중산층 지식인들이 마침내 동유럽처럼 꿈을 실현하게 된다면 그들의 운명은 어떻게 될까?

이들의 운명을 걱정하는 근거가 있다. 중산층은 북한 민주화를 위한 운동의 핵심이 될 수 있는 계층일 뿐 아니라 민주화에 의해 초래된 현대식 자본주의 경제에 적응하기 가장 어려운 계층이기 때문이다.

물론 민주화 운동 참가자들 중 일부 사람들은 정치인이 되거나 행정 공무원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또 어떤 사람들은 자신의 전문직을 그만두고 사업과 같은 신식 경제활동을 시작할 것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지식인들은 그대로 전문적인 생활을 계속하는 것이 자연스러울 것이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북한식 교육과 경험은 오히려 그들에게 크나큰 방해물이 될 것이다.

예를 들어 북한 의사의 경우를 보자. 필자는 한국의 친구나 동료들에게 “통일 이후에는 북한 의사들에게 치료받으러 가면 어떠냐?”는 질문을 여러번 해봤는데, 그때마다 그들의 표정을 보면 대답이 쉽게 나왔다. 북한을 잘 아는 사람들은 보다 더 부정적인 반응이었다.

유감스럽지만 필자는 북한 의사들의 입장을 잘 이해하고 있다. 평양의 봉화진료소나 남산병원 같은 특권층 전용병원에 근무한 극소수를 제외하면, 지금 대부분의 북한 의사들은, 비록 아주 어려운 상황에서 생명을 구하려고 최선을 다하고 있겠지만, 1950년대 소련식 의학교육 수준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평생동안 현대 의료기기나 약품에 대해 들어본 적도 없는 사람들이다.

그들의 교육과 지식은 현대의학 수준에 비해 30-40년 뒤떨어져 있다. 또 남한은 의사가 인기직종이어서 재능 있는 사람들이 의대에 가지만, 북한 의사들은 일반 기업소와 같은 대우를 받는 보통 직업이니까 평균 재능을 가진 사람들이 입학한다.

기술자들도 비슷하다. 물론 북한에서도 핵무기나 미사일을 개발하는 고급 기술자들의 수준은 한국 기술자들의 수준을 능가한다고 생각된다. 그러나 대부분의 북한 기술자들은 옛날 소련 기계를 작동하는 수준에 머물러 있다. 평생동안 컴퓨터 한번 써보지 못한 기술자가 대부분이다. 이러한 조건에서 ‘민주 북한’에 진출할 한국 대기업이 현대식 기술도 모르고 컴퓨터를 켤 줄도 모르는 기술자를 왜 고용하겠는가?

교원이나 교수들도 문제가 많다. 자연과학 분야는 그나마 괜찮겠지만 인문사회 분야는 문제다. 김일성 가계(家係)나 북한 선전당국이 날조한 ‘만주 항일 유격대의 영웅적 투쟁’에 대한 ‘지식’을 가진 국사교원이 이름만 들어본 영조나 송시열을 제대로 가르칠 수나 있을까?

또 이광수나 이태준을 ‘반동 작가’로만 알고 대학 시절에 맨날 ‘불멸의 혁명역사’ 같은 소설을 외웠던 사람이 과연 문학수업을 할 수 있을까? 결국 북한식 인문교육 60-80%는 시간 낭비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북 중산층, 북한민주화에 큰 역할할 것

지금 북한 지식인들은 북한의 민주화, 현대화를 위한 투쟁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할 사람들이다. 북한 땅에도 사람다운 생활을 요구하는 열망은 지금 평양의 어느 대학 교수나 함흥 어느 공장 기술자 같은 사람들에게 가장 많을 것이다. 그러나 민주화를 이룩한 후 그들이 전문적인 생활을 계속하지 못해 사회적으로 뒤떨어진다면 그들이 갖게 될 실망과 격분은 어떠할까.

그들의 문제를 쉽게 해결하기는 어렵다. 누구나 만족스러운 완벽한 해결이 없을 수도 있다. 그래서 이 문제를 지금부터 생각해야 한다.

통일 후 북한의 전문직들을 무조건 그대로 인정하면 안 된다. 이러한 결정은 단기적으로는 인기 있는 조치가 될지 모르지만 길게 볼 때 오히려 북한 주민들의 사회적 권리와 경제적 전망을 파괴하는 것이다. 만약 전문직을 그대로 인정해 버린다면 북한 교원들의 교육을 받는 어린이들은 계속 현대사회에 적응하기 어렵고 2등 국민으로 살아가야 한다. 북한 의사의 진료를 받은 사람들은 현대 의학의 수혜를 입지 못한다.

또 이러한 정책은 남한 지역에서도 북한 출신 전문직들에 대한 불신을 초래할 것이다. 남한 주민들 가운데서 북한 출신 전문가를 믿지 말아야 하는 인식이 형성되면 나라의 정신적인 통일로 가는 길에 큰 장애물이 될 것이다.

물론 북한 지식인들을 재교육해야 한다. 하지만 결코 간단한 일이 아니다. 극복해야 할 문제가 너무 많다. 예를 들어 무역과 국제교류를 강조하는 남한에서는 영어와 한자 능력이 필요한 반면에 북한의 지식인들은 외국어나 한문을 거의 모른다. 또 청년 시절에 외국어를 잘 배우지 못한 사람은 30세가 넘어 처음부터 외국어 공부를 시작하면 희망이 별로 없다. 영어와 한자를 모르면 한국의 기술 자료, 참고 자료, 안내서 등을 이해하기 어렵다.

또 다른 예를 들어, 어느 북한 의사가 영어도 모르고 한자도 모르고 컴퓨터를 영화에서만 본 40세대 아주머니라고 가정해보자. 가족이 있는 그녀는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입시 시험준비를 위해 최선을 다한 남한 의과대학 졸업생들과 경쟁이 되지 않을 것은 분명하다.

기술자도 2-3년 동안 한국식 기술을 배울 수는 있을 것이다. 그러나 전문적으로 익혀야 하는데 그동안 먹고 사는 비용은 어떻게 할 것인가? 물론 국가가 장학금을 비롯한 여러 방법으로 도와주면 좋겠지만 통일한국은 심한 재정 부족에 직면할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대규모 재교육 프로그램을 전개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이 프로그램 외에 다른 방법을 찾기 어려운 만큼 재교육이 최우선이라고 보아야 한다.

또 하나의 가능한 방법은 임시 자격증 제도다. 즉 북한 의사나 교원에게 10-15년 동안 북한 지역에서만 일할 수 있도록 임시 자격증을 제공하는 것이다. 그동안 어떤 사람들은 표준 남한식 시험을 위해 준비할 수 있고, 또 어떤 사람들은 새 사회에 적응하면서 다른 분야에서 경제활동을 하기 위해 필요한 것을 배울 수도 있다.

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남한거주 탈북자들의 사례에 비춰볼 때 남한 회사가 임시 자격증을 인정하지 않을 수 있고, 또 완벽한 남한식 자격증을 소유한 북한 사람이라도 고용하지 않는 경향이 있을 수도 있다. 따라서 이 위험한 경향성을 막기 위해 미국의 경우처럼 소수자의 권리를 보장하는 ‘어퍼머티브 액션'(affirmative action) 정책과 같은 조치를 취할 필요가 있다. 즉 대기업이라면 일정 수의 북한출신 전문직을 임명해야 하는 정책을 의무화시키는 것이다.

지금 남한 탈북자 정착경험 매우 소중

이렇게 볼 때 현재 남한거주 탈북자들의 다양한 경험은 더욱 중요하다. 중산층 출신 탈북자들의 남한적응 경험은 앞으로 통일 이후 북한 지식인들의 재교육, 재고용 프로그램을 위해 좋은 뒷받침이 될 수 있다.

유감스럽지만 요즘 탈북자 중 대졸이라고 해도 자신의 교육수준에 맞는 전문 직업을 가진 사람이 그리 많지 않다. 한국 회사는 탈북 전문가들을 고용하지 않은 경향이 있는데, 정부도 이러한 ‘反탈북자 문화’를 심각한 문제로 삼지 않는 것 같다.

그러나 지금 탈북자 재교육 과정에서 얻는 경험은 후일 불가피한 대규모 재교육 프로그램의 효과를 많이 향상시키고 비용을 절감할 수 있다.

민주화 이후 북한 중산층의 새로운 사회 적응 문제는 완벽한 해결책이 없을 것이다. 그러나 북한의 민주화에 큰 역할을 하게 될 사회계층에 대해서는 민주주의 승리 이후에 실망을 느끼지 않도록 미리 조치를 준비해야 한다. 이것이 지금 우리가 관심을 가져야 할 대목이다.

안드레이 란코프/ 국민대 초빙교수, 역사학 박사

<필자 약력>
-구소련 레닌그라드 출생(1963)
-레닌그라드 국립대 입학
-김일성종합대 유학(조선어문학과 1986년 졸업)
-레닌그라드대 박사(한국사)
-호주국립대학교 한국사 교수(1996)
-저서 : <북한현대정치사>(1995) <스탈린에서 김일성으로>(From Stalin to Kim Il Sung 2002) <북한의 위기>(Crisis in North Korea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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