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화세력의 4대 重病과 치유 가능성

1. 위기의 민주화세력

신새벽 뒷골목에
네 이름을 쓴다 민주주의여
내 머리는 너를 잊은 지 오래
내 발길은 너를 잊은 지 너무도 너무도 오래
오직 한가닥 있어 타는 가슴 속 목마름의 기억이
네 이름을 남 몰래 쓴다 민주주의여

아직 동 트지 않은 뒷골목의 어딘가
발자욱소리 호르락소리 문 두드리는 소리
외마디 길고 긴 누군가의 비명소리
신음소리 통곡소리 탄식소리 그 속에내 가슴팍 속에
깊이깊이 새겨지는 네 이름 위에
네 이름의 외로운 눈부심 위에
살아오는 삶의 아픔 살아오는 저 푸르른 자유의 추억
되살아오는 끌려가던 벗들의 피묻은 얼굴
떨리는 손 떨리는 가슴
떨리는 치떨리는 노여움으로 나무판자에
백묵으로 서툰 솜씨로
쓴다.

숨죽여 흐느끼며
네 이름을 남 몰래 쓴다.
타는 목마름으로
타는 목마름으로
민주주의여 만세

김지하 시인이 1975년에 발표한 ‘타는 목마름으로’라는 시의 전문이다. 이 시는 한 시대를 풍미했다. 민주주의를 향한 처절하고도 강인한 열망의 結晶體가 되어 많은 이들의 영혼을 흔들어 놓았다. “한국에서 민주주의가 실현되는 것은 쓰레기 더미 위에서 장미꽃이 피는 것 보다 더 어렵다”는 ‘80년 5월’에 대한 서방 기자의 평가와 맞물려서는 급기야 젊은이들의 피를 역류시켰다. 노래로도 만들어져 80년대 대학가 선술집의 밤을 뜨겁게 달구었다.

올해는 ‘87년 6월’로 이룬 민주화가 스무 돌을 맞이하는 해다. 여기저기서 기념행사를 하느라 분주하다. 그러나 분위기는 뜨지 않는다. 적어도 민주화에 관한 한, ‘Again 1987!’과 같은 복고풍은 성공하지 못하고 있다. 무엇이 문제일까? 집권민주화세력의 국정실패로 인한 민심이반이 가장 큰 원인이다.

민주화와 개혁에 대한 국민적 피로(fatigue) 현상이 심화되어 민주화의 역동적 과정을 되돌아보며 카타르시스를 느낄 상황이 아니다. 더구나 포스트386세대인 요즘의 대학생들은 ‘타는 목마름으로 민주주의여 만세’와 같은 핫(hot)한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1987년 6월의 전대협 활동가들은 학생들의 우상이었지만, 2007년 6월의 한총련 활동가들은 김정일 옹호와 같은 시대착오적 퇴행성으로 인해 조롱의 대상으로 전락했다.

상황이 이러하다 보니 ‘민주진영 위기론’이 제기되고 있다. ‘민주화 20주년 이벤트’를 흥행시켜 상황을 반전시켜 보려는 시도가 별다른 효험을 발휘하지 못하자 연말 대선에서의 정권교체에 대한 두려움이 현실화되고 있는 것이다. 정대철 열린우리당 고문은 이대로 가면 내년 4월 총선에서 한나라당이 90%의 의석을 차지하여 여야로 분화되고 현재의 범여권은 소멸될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민주화세력의 운명은 어떻게 될 것인가? 처참한 소멸인가, 화려한 부활인가? 결과는 민주화세력이 자신의 문제점들을 얼마나 잘 치유, 극복하고 換骨奪胎할 수 있는 가에 달려있다. 그렇다면 민주화세력의 문제점은 무엇인가? 그들의 사상 이론적 문제점 및 정책실패에 대해서는 그간 수많은 분석이 이루어져 새삼 언급할 필요가 없을 정도다.

반면 그들의 행태 문화적 측면에 대한 분석은 상대적으로 소홀히 다루어져 왔다. 그러나 이 또한 사상 이론적 측면 못지않게 모순과 불합리로 가득 차 있는 집권민주화세력의 핵심 문제점이다. 오히려 사상 이론적 측면 이상으로 대중적 외면을 받게 한 요인이기도 하다. 다음에서 그것들을 분석해 본다.

2. 행태 문화적 측면에서 본 민주화세력의 4대 重病

1) 흑백논리

권위주의 시절 민주화운동의 논리 구성은 간명했다. 독재를 무너뜨리고 민주를 회복한다는 것만큼 명쾌한 논리는 없었다. 독재는 惡이고 민주는 善이었다. 심지어 독재의 편에 섰던 사람들도 민주회복이라는 대의명분을 부정하지 못했다. “등 따시고 배부른 것이 우선”이라는 논리와 “민주주의는 천천히 단계적으로 실현해 나갈 수밖에 없지 않느냐”는 현실론을 내세우는 것이 고작이었다.

이처럼 명분에서의 압도적 우세는 민주화세력을 흑백논리로 인도하였다. 민주 대 독재, 자주 대 예속, 통일 대 분단, 정의 대 불의 등 선악이분법에 기초한 논리전개가 일반화되었다. 민주화세력은 이 같은 논리에 입각해 대국민 선전을 하고 대정부 투쟁을 전개해 나갔다. 투쟁은 성공했고 민주화세력은 집권의 꿈을 이루었다.

그리고 10년이 지났다. 민주화세력이 휘두른 흑백논리의 방망이에 맞아 만신창이가 된 권위주의세력은 상당 부분 해체돼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YS의 집권은 그 상징이었다. 요컨대 권위주의 우파는 사라지고 민주주의 우파가 그 자리를 대신하게 되었다. 현재의 한나라당을 독재세력의 후예라고 비판하는 것은 가능하나, 한나라당 자체를 민주주의를 부정하는 독재세력이라고 몰아붙이는 것은 아무래도 논리비약이다.

집권민주화세력은 이 같은 현실의 변화를 자신의 논리에 반영시키는데 게을렀다. 상대편의 속성이 바뀌었음에도 민주화세력은 단순 얄팍한 흑백논리로 자신의 우세를 확보하려 하고 있다. 열린우리당은 스스로를 민주․개혁․평화․미래 세력이라고 부른다. 개혁 대 수구, 전쟁 대 평화, 과거 대 미래 등 권위주의 시절 반독재투쟁을 하던 때의 논리와 전혀 다를 바 없는 흑백논리를 傳家의 寶刀처럼 휘두르고 있는 것이다.

지난 5월 정동영 전 열린우리당 의장은 광주에서 이번 대선의 기본성격이 5.16세력과 5.18세력의 대결이라고 했다. 현재 범여권에서는 수구냉전세력인 한나라당의 집권만큼은 무슨 일이 있더라도 막아야 한다는 ‘反의 논리’가 횡행하고 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은 허공을 향한 주먹질일 뿐이다. 권위주의 세력의 소멸이라는 자신들이 쟁취한 최대의 성과를 스스로 부정하는 自家撞着의 행위다. 저항세력에서 집권세력으로 天地開闢의 자리이동이 일어났건만, 그들의 사고방식과 논리구조는 옛날 것에서 한 치도 進步하지 못했다. 아직도 세상을 흑과 백, 선과 악으로 양분하여 국민들에게 배타적 선택을 강요하고 있다. 집권민주화세력이 이러한 흑백논리를 고집하면 할수록, 시대의 흐름에 뒤떨어진 수구좌파라는 비판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이는 이미 지난 2~3년간의 정치과정을 통해 입증되었다.

2) 이중 잣대

흑백논리 못지않게 민주화세력을 논리적으로 파탄시킨 것이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이라는 이중 잣대다. 지난 5월 중국선박의 해상 뺑소니로 한국 화물선 골든로즈호의 선원 16명이 사망, 실종된 사건이 발생했을 때 민주화세력은 침묵으로 일관했다. 5년 전 여중생 2명이 미군 장갑차에 치여 사망했을 때 과실치사가 아니라 의도적 살인이라며 촛불시위 등 대대적인 규탄행동을 조직했던 것과 너무도 대조적이다. 한미FTA가 체결되면 마치 나라가 절단이라도 날 것처럼 난리법석을 피우던 세력들이 한미FTA 못지않게 우리경제에 변화를 몰고 올 한-EU FTA에 대해서는 쥐 죽은 듯이 조용하다.

민주화세력의 이중 잣대가 가장 극명하게 드러나는 분야는 북한문제다. DJ는 북한인권 문제가 나올 때마다 정치적 인권보다 경제적 생존권이 우선해야 한다며 인권문제를 이슈화하는 것에 반대한다. 그러나 정작 자신은 박정희의 先산업화 노선에 맞서 ‘빵보다 자유’를 외치며 격렬한 반대를 했었으며, 아직도 박정희 시대의 업적에 대해 인색한 평가를 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왜 북한에 先산업화-後민주화의 박정희식 모델을 적용하려고 하는지에 대해서는 아무런 설명이 없다. 이는 비단 DJ만의 문제가 아니다.

1980년 광주에 대해서는 그토록 분노했던 사람들이 그것보다 훨씬 극악무도한 수령 전체주의의 反인간적 만행에 대해서는 사실 확인이 힘들다는 변명을 앞세워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다. 남한의 권위주의에 대해서는 가급적 나쁘게 보고 북한의 전체주의에 대해서는 가급적 좋게 보려는 전형적인 외눈박이 행태라 아니할 수 없다.

과거사 문제에 대한 태도 역시 마찬가지다. 친일반민족의 역사를 청산하지 않으면 올바른 미래가 있을 수 없다며 숱한 과거사위원회를 설치하여 국민혈세를 낭비하는 사람들이 일부 민주화세력의 북한추종 및 체제전복이라는 反대한민국 활동도 조사대상에 포함시키자는 제안에 대해서는 민주세력 탄압, 공안정국 조성이라며 길길이 날뛴다. 자신은 발가벗을 자신이 없으면서 남에게만 강요하는 전형적인 이중 잣대다.

3) 자아분열증

권위주의 시절의 민주화세력은 경제적 곤궁을 벗 삼아 살았다. 민주화운동과 일신의 영달 추구는 도저히 양립될 수 없는 것들이었다. 그러던 것이 김영삼 정권 시절부터 민주화세력이 정권에 참여하기 시작하면서 사정이 달라졌다. 권력의 단맛을 보기 시작하면서 과거의 청빈했던 모습은 사라지고 모럴 해저드 현상이 여기저기서 나타났다.

김대중 정권을 거쳐 노무현 정권에 들어서서는 우리 사회 대부분의 영역에서 권력이동이 이루어졌다. 민주화세력은 행정부, 입법부뿐만 아니라 방송, 인터넷언론, 문화예술계, 학계, 시민운동, 노동조합 등 거의 대부분의 영역에서 주인행세를 하게 되었다. 이제 그들은 부와 권력을 거머쥔 新특권층이 되었다. 국무총리 시절의 이해찬 골프 파동은 그 상징적 사건이다. 뒷골목의 허름한 선술집에서 “새 날이 올 때까지 흔들리지 말자”는 맹세를 나누던 민주화 운동가가 골프장에서 업자들로부터 음험한 이권청탁을 받는 권력자로 변신한 것이다.

수년 전 386정치인들의 광주 룸살롱 사건이나 2년 전 김근태 의원이 보건복지부 장관 시절 “열린우리당 젊은 의원 중에 골프가 생활이 된 사람이 너무 많다”고 한 것은 그들의 도덕적 타락이 특정인의 문제가 아님을 말해주고 있다. 민주화세력 역시 권력과 부 앞에서는 일반인들과 별 차이 없는 속물근성의 소유자였던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이렇게 혁명적으로 달라진 자신들의 경제적 처지에도 불구하고 생각은 여전히 과거에 머물고 있다는 점이다. 마르크스는 “존재가 의식을 규정한다”고 했지만, 한국의 민주화세력은 그 예외다. 그들은 지금 물적 기반과 정신세계 간의 불일치로 인한 자아분열 현상을 나타내고 있다. 정동영, 권영길, 강만길. 이들은 모두 자녀를 미국에 유학 보낸 인사들이다. 기회만 있으면 미국을 비판하고 양극화의 비극적 현실을 탓하는 이들이 정작 자기 자식들에게는 아무런 거리낌 없이 미국의 엘리트교육을 권유하고 있는 것이다.

‘생활은 부르주아, 정치는 프롤레타리아’로 하는 이러한 자아분열 현상은 이미 일반화되었다. 강남 사교육 시장, 특히 논술학원은 운동권 출신들이 장악한지 오래다. 학계, 문화계, 시민단체 인사들 중 상당수는 각종 프로젝트 수주, 사외이사, 자문역 등으로 윤택한 생활을 향유하면서 입으로는 서민을 떠든다. 이런 현상을 설명하기 위해 좌파상업주의, 오렌지 좌파라는 신조어가 만들어졌다. 이처럼 집권민주화세력은 경제적 곤궁 속에서 민주와 정의를 외치던 가치집단에서 이권을 즐기면서도 진보연하는 이중인격, 자아분열증 환자로 변질되었다.

4) 아마추어리즘

‘의도하지 않은 결과(unintended consequences)’라는 말이 있다. 아마추어들이 국가를 운영할 때 흔히 나타나는 현상이다. 노무현 정권은 역대 정부 중 분배를 가장 강조했지만, 소득불평등은 오히려 심화되었다. 수도권을 규제하고 지방을 우대하는 인위적 균형발전 정책을 구사했건만, 수도권과 지방의 격차는 더욱 확대되었다. ‘귀족학교’는 안 된다며 고교평준화 정책을 고집하고 있지만, 사교육 번창으로 교육을 통한 부의 대물림 현상은 극치를 달리고 있다.

외교안보 분야에서도 동일한 오류를 범하고 있다. 대미자주의 명분으로 전시작전통제권 환수에 나섰으나, 그렇게 되면 미국의 무기를 더 많이 수입해야 하며, 한미연합사 체제에서 자동으로 제공되던 모든 것들을 일일이 협상하여 얻어내야 하는 등 대미 군사의존도는 오히려 높아진다. 더불어 한미동맹의 약화는 한국이 바라지 않는 일본의 군사대국화에 유리한 환경을 조성해 준다.

이 같은 오류는 실용보다는 선험적 관념을 중시하는 태도에서 비롯된 것이다. 민주화세력은 오랜 기간 저항과 투쟁에 열중한 나머지 국정운영에 필요한 체계적 학습과 훈련의 기회를 갖지 못했다. 그래서 기존권위의 파괴에는 능하나, 건설과 창조에는 취약한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결과로서 자신의 능력을 입증 받으려는 프로의 자세는 찾아보기 힘들고 의도의 순수성과 선함을 앞세워 자신의 정당성을 입증 받고자 한다. 이렇듯 세상의 복잡다단함에 대한 사려 깊은 고찰 없이 의욕을 앞세운 정책추진을 하다 보니 ‘의도하지 않은 결과’라는 아마추어적 오류를 양산하고 있는 것이다.

3. 4대 중병의 치유 가능성

1970년대와 1980년대에 민주화세력은 헌신, 열정, 용기, 진취 등 긍정적 언어의 대명사였다. 특히 이론적 무장과 도덕적 청결 등에서 산업화세력을 압도했다. 그러나 집권세력으로 국가경영의 책임을 맡고 있는 오늘날, 민주화세력은 자신들의 옛 강점을 계승, 발전시키는데 실패했다. 그들은 현재 논리와 도덕 양 측면 모두에서 파탄상태에 처해 있다. 그 행태 문화적 측면에서의 결과가 위에서 지적한 4대 중병이다.

그렇다면 민주화세력은 4대 중병의 질곡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을까? 논리적으로는 충분히 가능하나 현실적으로는 쉽지 않을 전망이다. 무엇보다 민주화세력은 자신들만이 사회정의의 담지자라는 독선에서 벗어나야 한다. 한국사회는 이미 민주화의 결과 다원주의 사회로 이행하였다. 5.16, 12.12와 같은 군사쿠데타가 재발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이런 사회에서의 정치적 선택이란 개인들의 취향과 선호에 따라 좋고 싫은 것을 고르는 행위이지 절대적으로 옳고 절대적으로 그른 것을 판별해 내는 勸善懲惡의 행위가 아니다.

한국정치의 새로운 과제로 등장한 공존과 상생에 기초한 선의의 경쟁은 바로 이러한 인식의 기초 위에서만 꽃필 수 있다. 상대편을 타도와 척결의 대상이 아니라 경쟁과 보완의 대상으로 인정해야 한다. 그러나 민주화세력의 정치문화는 아직도 1980년대 버전이다. 특히 反한나라당 연합을 주장하는 대목에서는 북한의 김정일과 전혀 차이를 발견할 수 없다.

노 대통령은 지난 2일 참평포럼 강연에서 “약자에 대한 지원을 반대하는 게 보수고, 힘없는 사람의 연대․참여를 중시하는 것이 진보”라며 예의 흑백논리에 기초한 이념관을 다시 한 번 드러내었다. 2004년 5월 연세대 강연에서 같은 논리를 제시하여 엄청난 국민적 반발을 불러 일으켰음에도 지난 3년의 세월을 虛送한 것이다.

4대 중병 중 핵심 고리에 해당하는 것은 흑백논리다. ‘우리가 절대 선 혹은 정의’라는 독점적이고 배타적인 인식이 깨지지 않는 한, 자신이 휘두르는 이중 잣대의 모순성을 인지할 수 없으며, 존재와 의식의 분열현상 또한 자각하기 힘들다. ‘의도하지 않은 결과’를 양산해 내는 자신의 무능을 부끄러워하기도 힘들다. 왜? 자신이 기본적으로 옳으니까 약간의 실수나 오류는 대수롭지 않게 여겨지기 때문이다.

안타깝게도 흑백논리는 올 대선국면에서도 어김없이 적용될 전망이다. 이를 근원적으로 대체할 논리를 개발하려는 의지도, 능력도 현 집권세력에게 읽혀지지 않는다. 그러나 이는 결과적으로 自繩自縛의 결과를 초래할 뿐이다. 1980년대의 흘러간 옛 노래를 부르면 부를수록 자신들의 퇴행적 모습이 부각될 뿐이다.

만의 하나 차떼기나 병역기피 의혹과 같은 한나라당의 대형 악재가 발생한다면 모를까, 그 같은 구도설정과 논리전개로는 자력에 입각한 승리를 기대하기 힘들다. 이유는 간단하다. 민심이 아무리 표변하는 것이라지만, 이제 우리 국민들은 그런 정치선동에 또 다시 현혹될 정도로 어리석지 않다. 그러기에는 지난 10년의 경험이 너무나 쓰라리다. 그런 점에서 집권민주화세력은 예정된 죽음의 길로 향하고 있다.

신지호 자유주의연대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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