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 여야 원내대표가 지난 달 30일 민주당이 제안하는 ‘북한민생인권법’을 국회 법사위에 상정해 논의하기로 합의했다.
북한인권법안에 갑자기 민생이 들어간 것은 민주당의 요구 때문이다. 2005년 당시 한나라당 김문수 의원이 처음 발의한 지 6년이나 되었고, 황우여 원내대표 스스로 같은 법안을 발의한 때로부터도 3년이 지난 ‘북한인권법’을 국회 법사위에서 논의하는 대가로 민주당의 법안 내용 변경 요구를 수용한 것이라 생각된다.
그러나 이와 같은 합의는 용기도 끈기도 없는 거대여당이 ‘북한인권법’을 소수 야당이 마련한 함정 속으로 밀어 넣은 자승자박의 패착(敗着)이라는 비난을 면하기 어려울 것이다.
야당과 좌파는 ‘북한인권법’이 실효성이 없고 북한을 자극할 뿐이므로 반대한다고 하였다. 북한인권법이 실효성이 없을 것이란 주장은 부분적으로는 옳은 말이다.
왜냐하면 북한인권상황의 개선에는 강온 양면, 채찍과 당근의 상호 보완적인 수단이 병행되어야 하고, 북한인권문제의 당사자인 북한주민의 인권의식 제고를 위해 대북방송 등 북한주민에 대한 정보제공수단이 강구되어야 할 것이나, ‘북한인권법’에는 북한에 대한 인도적 지원, 북한인권단체 지원, 북한인권실태에 대한 조사· 연구·교육·홍보 등 온건한 정책실현 수단 일색이라 충분히 제 구실을 다할 수 있을지 염려스러운 면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반대론자들이 ‘북한인권법’의 내용을 보다 실효성 있는 것으로 강화할 노력은 하지 않으면서, 오히려 법안을 유명무실하게 만들려고 골몰하면서도 실효성이 없어 입법을 못하겠다고 주장하는 것은 위선적인 핑계에 지나지 않으며, 반대하는 실제 이유는 북한을 자극하는 일에는 절대 가담하지 않겠다는 것뿐일 것이다.
인권유린의 독재자를 화나게 하지 않고 불편하게 하지도 않고 신경 쓰이게 하지도 않고 자극하지도 않으면서 인권문제를 거론하고 비판하고 개선할 수 있다는 주장은 성립 자체가 불가능하다. 결국 반대론자들의 입장은 북한정권이 싫어하므로 동포의 인권문제를 일체 언급 않겠다는 것에 다름 아니다.
그런데 이와 같은 입장은 인권유린에 신음하고 있는 북한 주민보다 북한의 수령독재체제와 인권유린범죄자를 더 감싸고 두둔하는 반문명적 반인륜적 가치전도이므로, 국정을 담당한 여당으로서는 이와 같은 점을 끈질기게 설득하고 경고해야 한다. 야당의 버티기가 계속돼 법안 통과가 여의치 않을 경우 차선책을 결행하는 지략과 용기를 보였어야 마땅했다.
손에 흙 묻히지 않고 깨끗하고 고상하게 오가면서 과실을 수확하는 농사는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당은 ‘북한인권법’을 당당하게 제정하려는 노력을 지레 포기한 채 정체불명의 ‘북한민생인권법’을 국회 법사위에서 논의하기로 합의해 줌으로써 ‘북한인권법’이 제정되는 데 또 하나의 난관을 만들었고, 요행 제정이 된다 하더라도 별 의미가 없도록 하는 실수를 저지른 것이다.
‘북한민생인권법’이 구체적으로 어떤 법이 될 것인지는 아직 정확히 알 수 없다. 그러나 이런 법을 만들겠다고 하는 사람들의 그간의 주장과 법안 이름에 들어가 있는 ‘민생’이란 말을 놓고 보면 이 법이 대략 어떤 목적을 가지며 어떤 역할을 할 것인지 대강 짐작이 된다.
북한인권단체들은 과거 김대중 노무현 정부가 햇볕정책에만 안주해 인권문제를 외면하자 ‘안보 문제든 경제지원 문제든 인권과 결부시키는 헬싱키프로세스를 북한에도 적용해야 하고, 퍼주기식 경제지원은 북한인권개선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그러자 햇볕세력들은 이에 대한 대응논리로 인권 중에서도 생존권과 식량권이 가장 중요하므로 자유권 문제를 경제지원이나 식량제공의 조건으로 삼아서는 안 된다는 주장을 내세웠다. 이들은 북한정권에 모니터링을 너무 엄격하게 요구해서는 안 된다고도 말했다. 사실 이런 논리대로라면 우리 국민들의 가장 중요한 인권인 생존권을 가장 획기적으로 개선한 박정희에 대해서 인권유린의 대명사처럼 평가하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보면 ‘북한민생인권법’의 ‘민생’은 퍼주기식 경제지원 또는 조건 없는 식량지원의 다른 표현으로 보아 틀림이 없을 것이다. 그런데 이런 경제지원이나 식량원조가 북한의 기아문제나마 제대로 해결할 것인가? 한 마디로 언 발에 오줌 누기보다 하등 나을 것이 없는 하지하책에 불과하다고 생각한다.
북한의 기아문제, 식량문제, 경제문제는 효율성 없는 경제조직과 생산방식을 고수하며 계급에 따라 식량접근권을 차별하는 북한체제의 모순에서 오는 체제의 문제이다. 그러므로 억압체제를 해체하고 사회를 개혁 개방하지 않으면 해결되지 않는다. 이 문제를 놓고 체제의 변화에는 많은 시간이 소요되고 당장 죽어가는 사람은 살리고 봐야 하지 않겠느냐는 주장이 있다.
말은 맞다. 사람을 살릴 수만 있다면 식량이든 돈이든 최선을 다해 지원해야 한다. 그런데 북한정권이 식량이든 돈이든 외부세계가 지원한 물자를 필요한 북한주민들에게 제대로 전달했던가? 지원받은 물자로 열 명을 살리고 나머지는 백 명을 죽이는 체제의 유지비용으로 쓴다면 이런 지원은 사람을 살리는 지원인가, 아니면 죽이는 지원인가?
북한의 독재자는 어떤 상황, 어떤 조건하에서도 마음만 먹으면 식량이든 돈이든 다 가로챌 수 있고, 어떤 쇼나 연극이라도 연출할 수가 있다. 북한민주화네트워크에서 조사한 탈북자의 78%는 북한에 있을 때 원조식량을 구경도 하지 못했다고 답변했다고 한다. 모니터링 문제도 그렇다. 북한당국이 협조하지 않는 모니터링을 고집하지 말고 일단 대량의 식량을 제공하면 그것이 전용되더라도 결국은 북한 땅에서 소비되어 굶어 죽는 사람을 구할 것 아니냐는 가설도 위험하긴 마찬가지다.
노름꾼 아버지에게는 아무리 학비를 지원해 줘도 노름판에서 탕진할 뿐 아이를 학교에 보내지 않는다. 김정일에게 아무리 쌀과 돈을 줘봤자 북한주민에게 골고루 나눠주지 않는다는 게 우리의 경험이 내린 결론이다. 북한은 외부세계에서 식량이 지원되면 이를 군량미로 전용하거나 식량구입 비용을 줄여 군사비나 체제유지비용으로는 썼으나 핵심계급이 아닌 대부분의 주민들에게 식량공급을 늘린 일은 없었다.
대한변호사협회는 2년마다 북한인권백서를 출간하기 위하여 수백명의 탈북자들을 심층면담하고 있는데, 북한의 기아와 식량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가장 시급히 해결해야 할 과제가 무엇인가 묻는 질문에 대하여 대부분이 말을 할 수 있게 되면 굶지 않을 것이라고 답하였다.
이들은 주민이 당의 식량정책에 대하여 자유롭게 비판할 수 없다면 식량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리란 말을 하면서 자기들은 남한이나 외부세계가 북한당국에 무조건적인 식량지원을 하는 것을 반대한다고 하였다. 철저한 안전장치가 작동하지 않는 ‘북한민생인권법’의 시행이 어떤 결과를 우리에게 보여줄 것인지 시사하는 일례라 할 것이다.
게다가 ‘북한민생인권법’이 퍼주기식 햇볕정책의 재생부활판이 아니라면 야당과 좌파가 왜 이런 법을 입법하려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북한정권이 아닌 북한주민의 민생에 진정으로 도움을 줄 경제지원과 협력은 남북관계발전에 관한 법률, 남북교류협력에 관한 법률, 남북협력기금법 등 이미 마련되어 있는 관련법의 정당한 절차에 따라 시행하여도 아무런 문제가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북한민생인권법’이 ‘인도주의’와 ‘민생’이라는 미명하에 실질적으로는 이것저것 따지지 않고 북한당국에 물자를 제공하는 내용으로 입법된다면, 이는 경제지원과 식량원조 등을 인권개선과 연계시켜 북한주민들을 참상으로부터 구해보고자 애쓰고 있는 북한인권단체들의 노력을 헛수고로 만드는 것이 된다.
이는 미지근한 ‘북한인권법’을 더욱 유명무실하게 만들 것이며, 도발을 일삼고 인권문제를 외면한다면 외부의 지원을 받을 수 없을 것이란 정부의 정책기조를 뿌리째 훼손하며 북한 독재자로 하여금 멋대로 평화와 인권을 유린하여도 아무런 불이익이 받지 않는다는 점을 학습케 하여 도발과 인권유린을 조장하는 결과를 불러올 것이다.
이처럼 ‘북한민생인권법’은 불필요하며 유해하므로 입법되어서는 안 된다. 그러나 이미 법사위에서 논의하기로 여야 원내대표가 합의해 버렸으니 ‘북한인권법’의 입법을 추진하는 사람들에게는 또 하나의 난관만 추가된 셈이다.
야당은 자신들이 마련한 ‘북한민생인권법’의 통과를 ‘북한인권법’의 입법과 연계하거나 주요내용을 ‘북한인권법’에 통합하자고 하거나 먼저 처리해 달라고 한 후 ‘북한인권법’의 핵심내용을 수정하자고 요구하여 ‘북한인권법’을 무력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과정에서 ‘북한인권법’이 귀 떼고 꼬리 떼서 당나귀인지 오리인지 구별이 되지 않는 수준으로 변한다면, 또 그렇지는 않다 하더라도 사실상 서로 다른 목적을 가진 ‘북한인권법’과 ‘북한민생인권법’이 함께 성립되어 당나귀와 오리를 한 마차에 묶어 끌게 하는 꼴이 되도록 만든다면, 이런 ‘북한인권법’도 굳이 제정할 필요가 없게 될 것이다.
그런데 가장 심각한 상황은 국회 논의 과정을 지켜보는 국민들의 입에서 저런 ‘북한인권법’이라면 오히려 만들지 않는 게 낫겠다는 말이 나오는 경우이다. 이러한 상황이란 야당과 좌파의 생떼와 술수에 말려든 경박함과 어리석음 때문에 국민의 입법의지가 질식사하는 국면일 것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