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통일의 관문이 열리는 것같다”

“사회주의 계열이라는 이유로 인정을 못 받다가 지금이라도 이렇게 훈장 추서를 받으니 민족 통일의 관문이 열리는 것 같고 모든 것이 평등하게 이루어진다는 생각이 든다”

국가보훈처가 3일 광복 60주년을 기념해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한 고(故) 김철수(金綴洙:1893∼1986) 선생의 손자 김소중(70)씨는 이날 할아버지의 훈장 추서 소식에 이렇게 소감을 밝혔다.

김씨는 “그동안 국가보훈처 등 관계 기관을 찾아 1948년 대한민국 정부 수립 후 사회주의활동을 한 것이 아니면 사회주의자로 보는 것은 문제가 있지 않느냐고 따지기도 했다”며 그동안의 서운함을 내비쳤다.

김씨는 “일제강점기에 사회주의 활동은 한 것은 항일운동을 위한 하나의 방편으로 볼 수 있다”며 “정부수립 전 어떤 활동을 했는지는 큰 상관이 없는 것이다”고 강조했다.

그는 그러나 “사회주의사상을 이유로 조부님에 대한 예우를 안 해 준 것에 대해서는 별로 불만은 없으며 통일이 되거나 언제든지 자연스럽게 해결될 것으로 생각해 왔다”고 말했다.

그는 이에 따라 “유공자 대우를 받으려고 연연해하지 말고 죽거든 조그만 비석에 이름 석자만 파고 책을 쓰지도 마라는 조부님의 뜻을 받들어왔다”고 소개했다.

김씨는 그러나 “중국과 소련에서 항일운동을 할 당시에 이른바 ‘ML당’을 창당한 주역이라는 주장에 대해서는 근거가 없는 일”이라며 “ML당은 본 당에서 불순조직 일부가 만든 것으로 조부님은 생전에도 이 부분에 대해 매우 분노하셨다”고 전했다.

김철수 선생은 1926년 6ㆍ10만세 사건을 계기로 제2차 조선공산당 검거사건으로 간부진이 검거되자 같은 해 9월 제3차 조선공산당(일명 ML당)을 결성하고 책임비서가 된 것으로 알려져왔다.

김철수 선생은 이에 앞서 1916년 장덕수, 김효석 등과 함께 ‘단지동맹(斷指同盟)’을 결성해 독립운동을 시작, 1920년 중국 상하이(上海)로 건너가 고려공산당에 가입해 활동하다가 1923년 상해에서 국민대표회의 생계위원 및 비서로 활동했다.

1925년 12월에는 조선공산당에 입당해 이듬해 책임비서로 취임했으며 1929년 중국 지린(吉林)성에서 당 재건을 위해 활동하던 중 체포돼 징역 10년을 받고 옥고를 치렀고, 1946년 여운형의 사회노동당 임시중앙위원에 선임되었으나 이듬해 7월 여운형이 암살당하자 낙향했다./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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